15화. 그리움도, 일상도— 여기, 지금, 이대로
아침부터 심상치 않게 눈이 내렸다. 눈 없는 축제를 걱정하던 이들의 마음을 아는 듯, 거짓말처럼 끝도 없이 눈이 쏟아졌다. 역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짐을 끌고 갈 생각을 하니 잠깐은 그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비행기 잘 뜨겠지?”
한별도 염려가 되는지 그렇게 물었다.
그제.
삿포로는 말 그대로 눈 폭탄을 맞았다. 우리는 ‘머무는’ 입장이니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근처에서 움직였지만, 그날 입국한 여행객들은 아수라장을 겪었다고 했다. 활주로가 눈으로 덮여 착륙에 실패한 항공기는 신치토세 상공을 맴돌다 끝내 나리타로 회항했고, 기차도 멈춰 섰다. 삿포로 숙소를 확보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졌고, 아들 둘과 함께 여행 온 동료 교사는 졸지에 부랑자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들은 스스키노의 24시간 식당에서 끼니를 떼우고, PC방에서 그 밤을 버텼다고 했다. 한별과 그런 일을 겪었다고 상상하니 끔찍했다.
그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아, 오늘 눈도 마냥 반갑진 않았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앞에 나오니 빨간 우체통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건너편 홋카이도 대학도 하얗게 잠겨 고요했다.
“엄마, 같이 끌자.”
한별이 캐리어 한쪽을 쥐었다. 울퉁불퉁한 눈길 위로 캐리어가 퉁탕거리며 따라왔다.
삿포로역 플랫폼. 앞줄에 서있던 터라 다행히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막상 이 도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분주하고 꽉 찬 도시로 느껴졌던 삿포로가 괜스레 애틋해졌다. 애틋함이란, 참 묘하다. 마음속에 스며든 풍경들은 어느새 다시 찾고 싶은, 그리운 장소가 되어 있다. 그렇게 익숙해진 순간, 이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출국수속은 입국보다 수월했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X-ray 검사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장시간 기다릴 일은 없었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메이저 항공사를 이용했기에 기내식이 나왔다. 코로나 이후 당연했던 풍경이 사라졌고, 여전히 많은 항공사는 기내식 조차 선택사항이 되어버렸지만— 이 비빔밥 한 그릇에 담긴 정겨운 맛이, 이상하게도 고마웠다.
한별은 기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한식으로.
“엄마, 너무 반가워. 이 불고기 비빔밥.”
편식이 심한 한별이지만 이 도시락만은 싹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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