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terrace Jul 06. 2017

비가 내려도, 제주니까 괜찮아.

<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5




예보대로 마당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비에 젖은 마당의 초록들


출근을 해야 하는 날 아침, 빗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빗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방에서 좀 더 눈 감고 버텨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나는 대체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여유롭게 비를 즐길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당히 기분을 눌러주고, 비에 젖은 흙냄새를 맡는 것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여기는 시한부 제주.

제주예찬론자는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제주'가 좋고, 맑은 날은 '맑은 제주'가 좋다. 


게다가 문만 열면 밟을 수 있는 마당도 있다. 비에 젖은 초록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제 보았던 방아깨비가 비를 피해 우리집 창문으로 피신을 해왔다. 사실, 어제는 사마귀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보니 방아깨비였다.


"겸아. 방아깨비는 이렇게 뒷다리를 포개어 잡으면 방아를 찧는다."


라고 말하곤 두 두리를 잡았는데, 방아깨비는 시범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다리 하나가 다쳐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처음 보는 곤충에 조심스러워하면서 손을 뻗쳤다. 하지만, 힘없는 방아깨비는 아이의 무절제한 힘 조절 능력에 다리 하나마저 잃고 말았다. 방아깨비보다 더 놀란 아이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인다.  


앗! 방앗깨비 다리가 떨어져 당황하는 아이




아이를 달래고, 아침을 준비했다. 지난번 냉장고에 얼려둔 가시발새우(일명, 딱새우)의 대가리를 넣고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물에 새우 대가리들을 잔뜩 넣고 팔팔 끓인 후 라면을 넣고 아이 것은 덜어 내고 나서 스프를 넣었다. 이윽고 완성된 새우맛 라면^^


국물맛이 시원한 새우맛 라면


식사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한 후, 마지막 청소를 했다. 아쉽지만 이 집을, 그리고 제주를 떠나는 날. 아이는 집에게 잘 있으라고 작별인사를 한다.

"내일 또 만나"라면서.



제주 집 2호 현관에서 작별인사 중


윗집 이모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올랐다. 한달살이와는 다르게 마음이 가뿐하다. 겸이에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니, 잊지도 않았는지 비 오는 날은 도서관 간다고 했으니 도서관엘 가자고 한다. 도서관 가서 책을 좀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며 쉬다가 비행기에 오를 계획을 했다.




집 근처 애월도서관.


애월도서관 유아실


와 본 적이 있다고 제법 익숙하다. 익숙하게 신을 벗고, 익숙하게 책을 고른다.



시간 남짓 책을 읽고 나서 아이를 설득해서 도서관을 나왔다. 아직도 보슬비가 내린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며 동시에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이기도 하다. 얼른 밥을 먹이고 재워야 한다.





근처 두부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더 이상 잠을 참기 힘들어하기에 점심 먹이기는 포기하고, 혼자 먹을 곳을 검색했다. 차 마시러 가려던 곳 근처로. 혹시나 또 브레이크 타임에 걸릴까 싶어 전화를 했더니 미리 주문만 해주면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또 알게 된 팁 하나! 

제주는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이 많고, 마감시간도 이른 편이다. 그마저도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곳도 제법 많다. 하기에, 반드시 가기 전에 브레이크 타임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임박했다면 전화로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고 미리 주문이 가능한지 물어보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대부분 브레이크 타임이 재료 준비와 주방 스텝들의 휴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미리 주문만 가능하다면(그리고 도착시간이 브레이크 타임과 맞아떨어진다는 전제하에) 받아주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어른들끼리야 가서 안되면 다른 곳으로 선회하면 되지만, 아이를 데리고는 되도록이면 허탕치지 않아야 한다.  


아이는 막 잠에 들었다. 어제처럼 아이를 식당 안으로 옮겨 식사를 하기에는 적당한 의자도 없고, 막 잠이 들어서 깰 염려도 적다고 판단해서 나만 얼른 식사를 하고 오기로 했다.


아주 곤히 잠의 세계로 간 아이


도착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고, 음식을 받자마자 아침도 매운 면을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잠시 후회를 했다. 첫맛은 생각보다 간이 싱거워서 별로였는데 먹을수록 국물이 땅기는 맛이랄까.


 


총평을 하자면, 기름지지 않은 깔끔한 해물 짬뽕 맛. 먹을수록 맛있는 국물이었지만, 비싼 짬뽕을 먹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물이 깔끔한 해산물짬뽕파스타.


후식으로 티라미수케잌을 먹고 나와 차 안을 들여다보는데, 아이가 눈을 뜨고 넋을 놓고 있다.






세상에. 아이가 잠에서 깨어있었던 것이다.


갓 잠이 든 상태여서 절대 깰 리 없다고 믿고, 창문을 조금씩 내려두고, 얼른 먹고 나오려던 나는, 울다가 지쳐서 더 이상 악도 못 내는 목소리와 낯선 곳에 세워진 차 안에서 겁에 질린 망연해진 눈을 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더없이 서럽게 우는데 소리도 못 내고 꺽꺽 댄다.


"겸아. 엄마가 잘못했어. 너무 미안해."


부모님에게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할 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이었다.


얼마나 놀랬을까. 뉴스에서 폭염에 차 안에 아이를 두고 볼 일을 보러 다녀온 부모들을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던 나였다. 하지만, 비가 와서 날도 덥지 않고, 게다가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잠깐은 괜찮다'라는 마음이었던 게 화근이다. 생각해보면, 뉴스에 나온 그 부모들도 아마 '잠깐은 괜찮다'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누구든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


가게 입구에 묶어둔 개가 짖는 소리에 깼으리라. 그렇게 눈을 떴는데, 모르는 곳인 데다 차 안에 혼자 앉아 있다. 카시트에 몸이 묶여서 움직일 수도 없다. 무서운 개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린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만 해도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나는 정말 나쁜 엄마다. 외국이었다면, 쇠고랑 차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겠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혹시나 이런 공포스러운 경험이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더' 무서운 걱정이 나를 휘감았다.


한참 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괜찮다며, 되려 나를 달래주었다. 




예정했던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배가 고플 아이에게 크레이프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먹이기 위해.


카페 인디고.


한달살이 할 때 가끔 가서 한산한 바다를 보던 곳. 이런 멋진 곳이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것이 좋으면서도 사람들이 찾지 않아 의아했던 곳.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주차장을 꽉 메운 차량들만 봐도 내부에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긴 실내만큼 멋진 실외 벤치석이 있다. 주차장보다 입지가 높아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데다 시야가 펑 뚫려있어 전망이 참 좋다. 걱정은 실외에 있다가 비를 맞게 되는 일. 다행히 주문과 동시에 실내에 자리가 났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시름 다 잊혀지는 기분이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직도 빨간 아이의 눈을 보고 있자니 애처롭기 그지없다. 배가 고픈 아이는 언제 케이크가 나오냐며 재촉했고, 밀린 주문 사이로 케이크만 우선 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개인적으로 인디고는 밀크티가 맛있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애플밀크티는 재료가 소진되었다고 하기에 기본 밀크티를 주문했고, 크레이프 케이크의 신세계를 맛본 곳도 역시 이곳 인디고이기에 망고 크레이프 케이크도 주문했다.



망고 크레이프 케이크. 폭신한 식감과 첫입을 맞추고 나면,  바로 달콤 사르르 녹는다.




아이가 잘 먹을때의 행복감이란.




작지만, 분위기 있는 정원도 있다.


이제 슬슬 자리를 떠야 할 시간.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야말로 아들과의 커플사진.





커플옷, 커플사진


생각해보니 한달살이 때도 똑같은 비옷을 입고 왔었더랬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기 위해 어떤 이는 차를 세우기도 하고, 창문을 내려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우연치 않게 비 오는 날 똑같은 비옷을 입고 온 우리를 쥔장님도 기억을 하셨다. 그리곤 그날처럼 아이손에 캬라멜을 쥐어 주셨다. 단아한 여자 쥔장님이 있고, 점잖은 남자 쥔장님, 그리고 이날에서야 알게 된 대여섯 살 되었을 꼬마 쥔장님이 있는 <인디고>는 <달자>만큼이나 내가 아끼는 카페다.







공항 가는 길은 험난했다. 제주를 떠날 적마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이번만큼은 여유 있게 가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오늘도 또 촉박하다. 퇴근시간에 제주시 한복판을 빠져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카시트 반납에 렌터카도 반납해야 하는데 간신히 렌터카를 반납하고 나니 방금 떠난 셔틀을 20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렌터카 직원은 우리의 상황을 듣더니 개인차량을 불러서 공항까지 우리를 날라다 주었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엄마라서 안타깝게 여겼던 것. 아이는 며칠 사이에 정든 차라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싫다며 또다시 훌쩍거린다.


여기에서 한차례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짐을 맡기는데, 우리의 비행기 시간이 내가 알고 있던 시간보다 더 빨랐던 것. 다행스럽게도 내가 탈 항공편의 카운터가 마감하기 직전이었다. 출발하는 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항공사 직원은 우리들을 데리고 보안검색대를 논스톱으로 통과시켜주고, 천천히 따라오라며 길을 안내해주었다. 게이트 도착과 동시에 탑승이 시작되었다. 렌터카 직원이 태워다 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출발하는 날과 마찬가지로 비행기를 놓쳤을 것이다.


제주는 우리에게 끔찍한 기억을 선사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비행기에 오른 아이는 이제 제법 능숙하게 벨트를 맨다. 창문 밖, 구름 위 제주하늘은 표현하기 어려운 빛깔로 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여행은 그 끝을 맺어간다.




안녕. 나의 제주. 또 만나자.






+++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이 바다가 외로웠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