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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n 18. 2017

네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이 바다가 외로웠을 거야.

<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4



눈을 뜬 아이가 '씨익'하고 웃는다.


낮 동안에 무슨 일엔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요즈음 아이의 잠꼬대가 심상치 않다. 발버둥 치고, 싫다고 하고, 울고. 이 어린 녀석이 마음에 무슨 한이 그리 많아서 매일 밤 수차례 잠꼬대를 하며 우는지 엄마는 어리둥절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런 녀석이 이곳 제주에 와서는 좋은 꿈을 꾸는 건지, 좋은 환경 때문인지 곤히 잘도 잔다. 일어나서는 오늘처럼 웃기까지 한다. 어린이집에 안 가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나 역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과 함께 웃는 얼굴을 보니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 든다.


"마당에 나가볼까?"


오늘도 새소리와 이슬 젖은 초록들이 우리를 반긴다. 개미도 있고, 방아깨비도 있고, 제주 돌도 있다. 맨발로 잔디도 밟아본다. 까슬하면서도 폭신한 감촉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여기는 제주다.


이제는 제법 사진도 찍을 줄 알아서 붓기가 안 가라앉은 엄마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조금 더 뒤로, 뒤로, 뒤로. 그러다 아이가 그만 발을 헛디뎌 데크 아래로 넘어졌다. 서러운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면, 어지간히 아파서는 우는 아이가 아닌데 세상이 떠나가라 운다. 그 덕에 고요한 아침은 비상사태가 되었다. 발을 들여다보니 뒤꿈치가 도려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쓰림'이 느껴진다.


요맘때 아이가 다치는 건, 무조건 부모잘못.


"미안해. 엄마가 잘 봐줬어야 했는데. 떨어질 것 같았는데. 아이고."

이 말을 들은 아이는 발이 아플 때마다, '엄마가 잘 봐줬어야 하는데'라며 내게 들은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데, 그때마다 내 가슴이 콕콕 찔린다.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한림공원에 가야 한다. 아침은 근처 식당에서 사 먹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이 식당은 지난번 한달살이 때 우연히 인사를 하게 된 어떤 엄마로부터 추천받은 곳이다. 우리 숙소와도 가깝고, 특별하지는 않지만 집밥처럼 괜찮다는 것이다. 그 당시 들렀을 때는 재료가 떨어져서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라니 맛도 좋을 것 같고 아침식사도 가능할 것 같아서 이 참에 들렀다.


 오늘의 메뉴는 분명 간장불고기라고.  ('봉평메밀막국수'는 이 집의 상호가 아님.)


식당 밖에는 메인 메뉴가 표시되어 있었다. 오늘의 점심메뉴 <간장불고기>. 아이와 먹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곳은 특별한 여름 한정 메뉴 이외에는 별도의 주문이 필요 없고 그냥 성인 인원수대로 알아서 주문된다. 1인 7천 원. 가게 안을 둘러보니 이제 막 식사 준비가 마쳐진 모양이다. 테이블마다 각종 쌈채소와 장류가 놓여있었고, 그중 한 곳을 안내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위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다른 테이블로 안내를 한다. 그곳으로 옮겨 앉아서 집밥처럼 나오는 찬과 찌개를 받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간장불고기가 나오지 않기에 물어봤다. 그랬더니 잠깐의 당황하는 기색 끝에 돌아오는 대답이 "그건 점심메뉴라서 안 나와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뉴가 하나 빠졌으니 점심보다 싸겠지'하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메뉴가 하나 빠진 식사를 해도 같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속은 기분이 들었다. 점심메뉴와 다르다고 말해준 적도 없거니와, 달라도 괜찮은지를 물어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불고기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오픈된 주방에서는 이미 산처럼 쌓인 양념된 불고기가 내 눈 앞에 보였으니까. 게다가 처음에 쌈채소가 있는 테이블로 안내를 하다가 다른 테이블로 옮겨 안내한 것도 '한눈에 호갱 관광객'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차피 그들에겐 단골 운전기사 손님이나 동네 손님이 중요하지 나 같은 뜨내기손님은 큰 문제가 안 되는 '동네식당'이기 때문이다.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마저도 명치에 얹혀있는 것처럼 거북했다. 누군가에게 뻔히 기만당한 것을 알면서도 따져 들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고, 그것이 제주사람이라는 사실이 실망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을 안고 차에 올랐다. 사실 차분히 생각하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 아니고서는 1회성 손님에게 그 정도의 잇속을 차리는 것은 비단 제주사람뿐이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게 제주인 것이 마음이 상해서, 그것을 따져 드는 순간, 제주 땅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내 눈과 귀로 확인하게 될 것 같아서 이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저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일방적 배신감'은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




불쾌한 기분을 달고 한림길을 달렸다. 풍경과 바람을 느껴야 하는데 머릿속이 영 복잡하다. 이윽고 다다른 한림공원엔 이미 많은 관광버스와 렌터카로 가득 차 있다. 이미 한 번 와보았던 곳이라 대단한 기대감은 없으나, 단 한 가지. '수국'을 볼 일이 설레어왔다. 파스텔 수국이 구름처럼 뭉개뭉개 피어있겠지.


유모차를 대여하고 입장하는데, '수국동산 개장'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어 기대감을 더해주었다.

한창 튤립이 왕성할 때, 이곳을 왔었다. 그때는 기대도 없이 왔기에, 다른 곳보다 비싼 입장료에 투덜대고 들어갔다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라며 나온 기억이 있다. 수국이 만연한 공원도 꽤 볼만 하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오지만, 익숙한 풍경.


아이는 아열대식물원에 있는 각종 파충류와 양서류에 신이 났다. 그래 마음껏 보거라. 엄마는 이따가 수국을 보면 너와 같은 기분이 들 거야.

이어서, 협재·쌍용굴로 향했다. 굴은 전에 가봤을 때, 길지는 않지만 출입구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유모차를 가지고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미 그곳 계단을 낑낑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 냉장고처럼 정말 시원해요."

"엄마, 동굴이 슬픈가 봐요. 눈물을 흘려요. 혹시 엄마 아빠가 죽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이는 동굴에마저도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동굴 출구에는 햇빛이 비쳐들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동굴을 나오니 사람 모양을 한 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자연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일본의 신도처럼, 우리네 마음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 것일까.  


사람모양을 한 돌이 마냥 신기하다.


잠시 매점에 들러 물을 마시고 있는데, 공작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신기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고, 한 사람이 매점 직원에게 원래 밖으로 다니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드디어 수국동산이다. 얼마나 근사할까. 5일 뒤면 수국 축제라니 지금도 만발해 있겠지.

수국동산 개장! 기대가 부푼다.


그런데!

수국이 아직이다. 동산만 개장했을 뿐, 수국은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항상 계획 없이 출발하는 제주여행인데, 유일하게 계획을 세운 곳이었다. 수국으로 유명한 종달리 수국길, 휴애리 모두 숙소와는 떨어져 있기에 이 곳 한림공원을 선택했는데. 그곳으로 갔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6월 중순이니 이제는 만개해 있으려나.


일단은 있는 그대로를 만끽해보자. 수줍은 얼굴을 드러낸 꽃들에게 다가가 본다. 뭉게구름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여쁘고나. 


몽글몽글한 꽃봉오리가 수놓은 반짓고리 같다.


아이도 수국이 신기한지 다가가더니 한참을 들여다보고 향기도 맡아본다.


아직은 깻잎밭같은 수국동산


지금은 이 아이들도 만개해 있겠지?


<수국을 보며>



수국을 보며  

- 이해인 -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수국을 그리는 시도 다시 한번 읽어 보게 된다.

수녀님도 수국을 보며 구름을 떠올리셨구나. 꽃봉오리 하나하나가 '서로를 향해 내미는 손'과 같음을, 전체로 보았을 땐 '큼직한 원'과 같음을. 그분도 그렇게 생각하셨더랬다. 시인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은 이미지를 그렸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래, 이거면 됐지, 뭐.'


그렇게 우리는 수국과 이별했다.                                  



수국동산의 옆에는 석·분재원이 있다. 다양한 분재작품과 희귀한 자연석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재미있는 작품들도 많았다.


'웃는 옆 얼굴'이라하니, 저도 따라 웃어본다.


자연석이라니 정말 신기하다.


구멍을 통해 의자에 앉은 피사물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더 가다 보면 '재암민속촌'이 나오는데, 제주의 전통 초가, 해녀, 흑돼지 등 옛 제주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들로 꾸며져 있다.


많이 컸다. 도움없이도 얼굴을 빼꼼할 수 있으니.


새끼말이 마음에 든다고 떠날 줄을 모른다.


하루방 뒤에도 쏙 숨어보고. "겸이 어디있지?"


아기들 좀 돌봐주어야 한다고 곁에 앉더니 일어나질 않는다.

지난번과 차이가 없어 솔직히 말해 나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만지고 놀 만한 것들이 제법 있어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재미있어한다. 나로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초가 위에 올라앉은 공작새를 본 것.


초가 위에 공작새


마침 아이도 공작이 그려진 안내도를 보더니, 새를 보러 가자한다.


여기 가고 싶어요.


사실 공원을 돌고 있는 도중, 이런 안전안내문자를 받았다.

'[제주도청] AI 관련 5월 27일 이후 5일시장에서 닭, 오리, 오골계 등 구입한 분은 방역기관에 신고 바랍니다.'


서울대공원이 오랜 기간 조류독감으로 공원을 폐쇄하다 다시 개장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심각한 단계인가 보다.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가까이 보지 않는다는 전제로 사파리 조류원으로 향했다.


익히 알던 화려한 공작 외에 백공작도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꼬리를 활짝 펼쳤다. 뜻밖의 우아함이 느껴졌다. 아이는 공작을 보더니 "엄마, 공작이 내가 와서 좋다고 날개를 활짝 폈어요!"란다.

그래, 엄마가 알고 있기로 수컷이 암컷을 유인할 때 화려한 꼬리를 펼친다고 하니 정말로 겸이가 마음에 들어서 일수도 있겠다.

 

"내가 와서 좋다고 날개를 활짝 펼쳤어요!"


이어서 산야초원을 찾아 걷는데 '해녀휴식'이라는 작품이 나왔다. 아이는 '해녀이모'라면서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엄마, 그런데 왜 저 이모는 쭈쭈를 내놓고 있어요?"라는 원초적인 질문도 던지면서.


 


하지만, 산야초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는 잠이 들어버렸다. 혼자서 감상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출구 가까이에 있는 연못정원은 마치 비밀 우림처럼 고요하다. 동물과 공룡모양으로 가꿔놓은 작품들을 아이가 보았다면 더 좋아했겠지만.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출구로 나오는 길에 뱀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것.


뱀도 돌아다니는 야생공원.





계획대로라면 1시쯤이면 공원 관람을 마쳐야 했는데, 1시간이나 오버되었다. 점심은 아이가 잠이 들었으니 가까운 카페를 찾아 브런치를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자왈'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버섯크림파니니가 맛있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


마침 가게 안에 손님도 없는 데다 벤치형 의자가 있어 아이를 뉘이고 한숨 돌려본다. 샌드위치도 살짝 당겼지만, 남들의 의견을 따라보는 걸로 하고, 자몽에이드와 함께 주문했다.


톡톡톡 도마를 치는 소리, 촤아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 고소한 우유 향기와 다르륵 자몽이 갈리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배고픈 나의 육신 곳곳을 자극한다. 


버섯크림파니니

머잖아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설명대로 크림파스타 소스에 파니니를 찍어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고민하던 나에게 빵과 파스타 소스를 모두 맛보여 줄 수 있는 메뉴였다. 첫입에 '와아~'를 외치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깨어있었다면 아이도 꽤 좋아했을 것 같다. 그 덕에 내가 이렇게 사진도 찍고 모처럼 우아하게 먹을 수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왈' 메뉴. 카페 이름처럼 곁에 숲이 있다.





다 먹었을 때까지도 아이는 깊이 잤다. 조용한 데다 시원하기까지 하니 내가 잠들었어도 깊은 잠을 잤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를 안고 나와 카시트에 앉혔지만 여전히 잔다.

어디로 갈까. 오늘도 모래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늦은 것 같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많이 아쉽다. 아직은 해가 있으니 바다로 가자.


어제 갔던 금능 으뜸원해변으로 갔다. 어제보다 늦은 시간이기는 했어도, 구름 탓에 화창한 바다는 아니다. 오늘도 바다를 정면으로 차를 세우고 보닛에 올라앉아 바다를 감상했다.


구름 낀 으뜸원해변. 이미 물이 많이 들어왔다.


어제 미리 와서 놀길 참 잘했다. 오늘 왔으면, 구름 낀 바다를 봐야 했으니. 볕이 없어 놀기 좋을지 몰라도, 기분은 어제에 비해 별로였을 것 같다. 다시 차에 올라 아이 옆에 앉아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충분히 잤을 것 같아 슬그머니 손을 잡고 말을 걸어본다.

"겸아, 바다에 왔어."

아이는 쉽게 눈을 떴고, 아주 좋아했다. 제 눈에도 바로 앞이 바다였으니.

모래놀이 용구를 챙기고, 아랫도리만 갈아입힌 후 해변으로 내려갔다. 언제 잤냐는 듯 모래놀이에 몰두하는 아이.


오늘의 모래놀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물이 차오른다.


만조시간에 다다르니 물만 금세 차오르는 것이 아니다. 태양도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아이가 모래놀이를 시작할 쯤만 해도 하옜던 모래빛이 이제 슬슬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어제처럼 '지금이 간조기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석양이 그려내는 바다는 여전히 멋지다.




으뜸원 해변의 낙조


아쉽지만, 이곳에서는 더 놀 수가 없다. 해도 뉘엿하고 무엇보다 해변이 좁아졌다. 기억하기론 바로 옆 협재해변은 만조기에도 해변이 꽤 널찍하다. 그래서 거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주차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협재국수'로 향했다. 그런데, 재료 소진으로 방금 마감했다고. 한달살이 때 먹어보기론 나름 괜찮은 맛이었는데 아쉽다. 바로 옆 중식 레스토랑이 있어서 짜장면은 괜찮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점심도 굶고 잤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을고.


아이는 거의 한 그릇을 비워냈다. 솔직히 맛은 그리 훌륭한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잘 먹으니 일단 엄마는 좋다.

배도 든든하겠다 다시 바다로 가보자. 어둡지는 않지만, 이제는 살짝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둘 다 외투를 걸쳐 입고 해변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고, 이미 불꽃놀이를 시작한 이들도 있고, 작은 술판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다.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이 어쩐지 든든하다. 많이 컸구나. 우리 겸이.



이제는 바다를 관조할 줄도 안다.


밤은 우리에게 금세 찾아왔다. 폭죽 소리는 더 커지고, 커플들은 귀여운 조명을 들고 사진 촬영도 한다. 연이어 터지는 폭죽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겸이에게 한마디 건넸다.


"겸아. 우리도 폭죽놀이할까?"


우리도 폭죽놀이할까?


부산 바다만 해도 안전과 쓰레기 방지를 위해 폭죽놀이를 금지하는데, 제주는 아직 그런 규정은 없나 보다. 부산의 바다와 제주의 바다가 그 분위기가 다르듯, 제주에 오는 사람들도 제주바다의 분위기를 적절히 지켜주기에 제주 밤바다의 폭죽은 요란하지 않고 오히려 맑고 깨끗하다.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는 폭죽은 아직은 아이에게 위험하기에 한달살이 때 아빠와 함께 해본 스파클링으로 선택했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불을 붙였더니 아이의 입이 함박만 해진다.


바다야. 고마워.


제주 밤바다.



네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이 바다가 외로웠을거야.


아이의 웃음과 스파클링이 내뿜는 불빛, 그리고 밤의 바닷가 마을을 번갈아보며, 난 행복과 우수(憂愁)를 느꼈다.


겸아. 네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이 바다가 외로웠을 거야.




늦은 밤 운전도 이제 무섭지 않다. 한 달 살기 때 이미 익숙해진 길이기에. 사실 제주는 가로등이 없는 길이 많다. 늦은 밤에는 상향등을 켜고 가도,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느림보 운전자를 만든다. 하지만, 이 길에 익숙한 이들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추월해 오기에 더 무서운 제주의 밤 운전. 하지만, 이제 나도 이 길만큼은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갈 수 있다.

 

숙소에 도착하자, 쥔장님과 아이들이 케이크를 들고 내려왔다. 선물 들어온 있는데 같이 먹으려고 가져오셨다며. 본래는 쥔장님 가족과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대접한다 한 것이 아무래도 편치 않으셨는지 저녁 일정이 있으시다고 하기에 우리도 저녁을 먹고 들어온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료나 과일이라도 사 올 것을. 아무튼 아이는 형아에게 공룡 그려라 고래 그려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아이 키우는 것과 제주의 생활, 제주와 뭍의 학교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며 밤이 깊어지도록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내일은 이 곳을 떠나는 날.

다행히(?) 밤 비행기라 낮시간이 비교적 여유롭다. 서둘러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으니 아침에는 밥도 먹고, 짐도 싸고 청소도 하고 나갈 수 있겠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정말 좋은 곳.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

하지만, 이렇게 신세를 지고 나니 다시는 '선뜻' 이곳으로 쉬러 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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