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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n 14. 2017

오래 보아야 더 예쁜 제주

<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3



피로가 불러온 단잠 덕에 깊이 잠들었다. 


햇살과 새소리는, 이곳이 제주임을 '눈뜨지 않아도' 알게 해주었다. 이른 아침햇살과 새소리에 비록 일찍 잠에서 깨었지만 싫지 않은 신호였다.


아침은 간단히 우유과 사과로 때우고, 일찍 집을 나섰다.

한달살이 때 실패했던 더마파크의 '기마공연'을 보고, 해산물 요리를 먹고, 바다에 가서 모래놀이를 할 계획이다. 




더마파크로 향하는 한림의 길은 나에겐 더없이 익숙한 길이다. 

한달살이 할 때, 제주의 서부를 선택하면서, 다른 지역에 가려고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작정을 했기에,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이곳을 수도 없이 오갔다. 


제주는 좁고도 넓은 땅이다. 제주의 끝과 끝을 이동해도 2시간만 횡단하면 되니까. 그래서 제주는 4박 5일 정도 돌면 볼 건 다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제주는 실은 정말 넓다. 제주의 중심인 한라산을 관통해서 가도 동서로는 2시간, 남북으로는 1시간은 걸려야 횡단할 수 있다.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의 제주 여행길도 이러했다. 한림에 숙소를 잡고 표선 해비치해변을 다녀오거나, 성산에 묵으면서 송악산(대정)이나 산방산(안덕)을 다녀오곤 했다. 이동하는 길 조차도 힐링이기에. 제주의 멋진 풍광은 우리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을 하면서부터 얘기가 달라졌다. 오래 앉아 있는 것부터가 힘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 막막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카시트에 앉아 우느라 바쁜 아이를 달래느라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숙소 주변을 오래 보고,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오래 보아야 더 예쁜 제주를 만날 수 있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주를 간략하게 나눈 지도. 지인에게 제주를 안내할 때 항상 이 지도를 놓고 이야기한다.


이번에도 같은 곳에 숙소를 잡으면서 주로 애월과 한림에서 보낼 예정이다. 과거를 추억할 것이고, 나름의 힐링도 하면서. 운전도 숙소까지의 길도 설었던 어제와는 다르게, 본래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처럼 나는 자유로히 도로를 달렸다. 내일 갈 예정인 한림공원도 지나고, 오후에 갈 협재해변도 지나 더마파크에 도착했다.




더마파크의 기마공연은 1일 3회 공연한다. 겸이는 아직도 36개월 이하라 입장료는 없지만, 승마체험도 못하기에 공연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가 되는 동산에서 말을 탄 기수가 늠름하게 등장한다. 고구려의 건국설화인 '주몽 설화'를 모티브로 구성했는데, 장엄한 북소리와 함께 시작하니 어른인 나도 덩달아 가슴이 쿵광거렸다. 주인공 소개에 이어, 주몽의 탄생, 그리고 형제들 간의 왕권 다툼, 평화로운 축제 등 여러 가지 테마로 공연을 이어갔다.


수많은 말들이 달리는 장면은 꽤 볼만하다.
왕권을 다투는 형제들의 기싸움


겸이 역시 흥분의 도가니다. 말을 타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말을 처음 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멋진 분장을 한 기수들이 말을 탄 채로 창과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며 달리니 남자아이의 취향에 제대로 명중한 것이다. 공연을 보러 가면서 "오늘은 말들의 대결을 볼 거야"라는 말만으로도 한껏 기대를 했었는데, 그 기대에 충분히 미치고도 남음이 있는 장면들이 연이어 연출되었다.


이겨라! 이겨라! 주몽왕! 이겨라!


나에게는 자연물을 그대로 무대 삼아 공연을 하는 것이 중국의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야외 뮤지컬 <인상 유삼저(印象刘三姐)>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규모와 퀄리티에 있어서 확연히 차이가 났지만, 특별한 무대장치를 필요로 하는 실내공연과 달리, 본래 자리하고 있는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신선했던 나로서는 그날의 공연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약 한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나니, 간단하게 먹은 아침밥 탓에 배가 고파졌다. 

우리의 목적지는 피어22

딱새우와 옥수수, 감자, 소시지 그리고 추가로 원하는 해산물을 선택하면, 통째로 쪄내서 주는 곳이다. TV에서 방송된 후로 많은 관광객들이 있다 하더니 듣던 대로 예약줄이 길었다. 


외관은 아직 '금능 어촌계식당'이라는 다소 허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해녀의 물질과 관련된 것들로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웨이팅을 위해 인원수를 이야기하고 나서, 미리 주문을 할 수 있다. 기본 주문이 성인 2 명부터인데 아마도 쪄내야 하는 음식이기에 기본 양이 확보되어야 하는 듯하다. 남은 음식은 싸갈 수 있게 해준다기에 성인 2인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랑 둘 뿐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으니, 에이프런과 망치, 도마 그리고 게살포크를 세팅해준다. 미리 주문을 해두었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태왁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녀석들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다. '태왁'이란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할 때 바다에 띄워 놓고 채취한 해물을 담는 어구(漁具)인데, 물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이것을 두드려 장단을 맞춘다니 하니 그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사진 찍느라 바쁜 나에게 직원은 태왁에 대한 설명과 함께 먹는 방법을 이야기해주었다. 


꽤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


가시발새우. 일명, 딱새우는 껍질이 딱딱해서 맨손으로 벗기기가 어려워 대가리를 뗀 후 껍질을 망치로 두드려 준다. 해물뚝배기에 단골로 들어가 있던 딱새우가 먹기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도 망치도 두드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에 임했다. 물론 아이 혼자 힘으로 벗겨질리는 없겠지만.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 꽤 진지하다.


사실 엄마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설명 들은 대로 하다가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여간 손재주가 없다. 평소 까먹기 귀찮으면 안 먹어 버리는 성미를 알기에 남편 손이 항상 바빴고, 그것만 받아먹다 보니 이럴 수밖에. 아이에게 하나 까서 먹이고 낑낑대는 나의 모습을 사장님께서 보셨나 보다.


"좀 도와드릴까요?"

"네. 좀 어렵네요. 하하"


사장님은 '이러다가 엄마는 한 입도 못 먹겠다'며, 능숙한 솜씨로 금세 몇 마리를 손질해 주신다. 그 말에 괜히 나 자신이 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번엔 엄마 아빠랑 아이넷이 와서는 부모들은 거의 입에도 못 대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면서 안쓰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신다.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까는 족족 아이가 입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본래 새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리고 비록 아침식사를 비루하게 먹었다지만, 그런다손 쳐도 게 눈 감추듯 먹는 모습에 사장님도 나도 감탄을 했다.


"남을까 봐 걱정하셨는데,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되겠는데요."


사장님도 나도 뿌듯한 마음이 들어 기분 좋게 웃었다. 사장님은 우리의 재미를 위해 두어 마리만 빼놓고 다 까주고 가셨다. 옆 테이블에서도 '최고다', '정말 맛있다' 등등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나 역시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곳을 꼽으라면 난 이곳을 추천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 대가리도 속을 파먹으면 고소하지만, 배부르다고 하니 집에 가져가서 라면 끓일 때 넣으라며 따로 포장해주셨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니, 하늘이 참 푸르르다.




이제 다음 코스는 금능 으뜸원해변이다. 오늘은 모래놀이를 하기로 했기에 래쉬가드와 모래놀이 장난감까지 이미 챙겨 나왔다. 하지만, 바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는 그만 잠들어버렸다. 잠깐 차를 세워 커피 한잔을 사서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고는 나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날씨도 맑지만, 바람도 많은 날씨라 여기저기서 카이트서핑(kite surfing)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의 에너제틱한, 그리고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다 보니 어느새 아이가 깨어났다. 


평화로운 금능으뜸원해변


옷을 갈아입히고 바다로 갔더니 아이는 언제 잠들었었냐는 듯 물과 바다에 온몸을 던졌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닷바람이 춥다 하기에 점퍼를 입혔더니 혼자서도 잘 논다. 이곳저곳에서 소라게를 비롯한 바다생물을 채취하느라 애나 어른이나 모두 바쁜 모습이었다. 겸이도 처음에는 '게가 나를 물면 어떡해요'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라게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더없이 맑은 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 금능으뜸원.


소라게야. 내가 니 친구 잡아왔어.


아이도 손쉽게 바다생물들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물을 자랑하는 으뜸원해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다. 아이는 연이어 소라게를 잡아 컵에 넣으면서 "소라게야. 내가 니 친구 잡아왔어."라며 속 모르는 자랑을 한다. 



요즘 최고로 핫한 미역주스^^


열심히 모래놀이와 생물채취를 하고 있는데, 카이트 서핑하는 사람이 바람을 타고 우리 있는 곳까지 오게 된 모양이다. 신기한 모습에 나도 겸이도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참의 놀이 끝에 집에서 챙겨 온 사과와 과자를 꺼냈더니, "엄마! 우리 소풍 온 거 같아요."라며 너무 기뻐한다. 가끔은 사소한 먹거리라도 챙겨서 밖에서 먹어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하늘의 비행체가 신기하기만 한 녀석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해졌다. 어느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있는 곳을 외딴섬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의 기지는 외딴섬으로 변해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어서야 했다. 내가 이곳 으뜸원 해변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 빠진 바다가 '아이와 함께 놀기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때의 일몰이 정말 황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몰시간과 간조기가 들어맞아야 그 황홀한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전엔 단순히 저녁 즈음 간조기라면 그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몇 번을 방문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6월이라 해가 아직 길어서 황혼 녘의 태양이 물들인 황금 뻘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최고의 바다다. 


놀이를 마치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세상에! 햇빛에 노출된 아이의 피부가 벌겋게 익어있었다. 얼굴에만 썬블럭을 바르고 몸은 미처 생각 못한 것이다. 다행히 한여름의 햇빛에 의한 손상이 아니었기에 며칠이 지나고 금세 회복이 되었지만, 여기서 또 한 번 꼼꼼치 못한 엄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미안해. 엄마가 많이 부족해.




바다에서 놀다보니 허기가 졌다. 이제 겸이의 첫 번째 연상녀, Rain을 만나러 갈 차례. 그녀는 우리가 한달살이 할 때, 협재 바다에서 모래놀이를 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Rain은 겸이보다 한 살 많고, 2년 전 제주가 좋아 무작정 왔다고 했다. 그 후 금악 쪽에 카페를 차렸는데, 이제 그곳을 가려고 한다.


카페 오드리.

두 달 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아직 가오픈 상태여서 간판도 없었는데, 이제 아주 멋진 곳으로 변신해 있었다. 아빠 손으로 직접 가꾼 것인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다. 외양간마저도 멋스러운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화장실이 특히 예쁘다. 이런 멋진 카페를 만날 때마다 나의 카페 꿈은 조금씩 접어진다. 


소품 하나하나 쥔장의 손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오드리 헵번'을 모토로 꾸며진 이 집은 바닐라 라떼가 맛있다. 가까운 곳에 패러글라이딩 비행장이 있어서, 그들에게도 쉽게 보이게끔 옥상간판도 있는데 그마저도 멋지다. 그래서인지 비행을 마친 사람들이 종종 들르는 듯했다. 그 사이에 메뉴도 많이 늘어났다. 내가 주문한 것은 사과 프라페리코타치즈샐러드. 아이에게는 컵케이크와 바나나스무디를 챙겨주셔서, 우리 모두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다.



겸이와 Rain은 약간의 기싸움을 하면서도 재밌게 놀았다. 둘은 '다이노코어의 다이노 마스터'라며 다양한 피자를 만들어 배달했다. 그 덕에 내가 조금 편안히 쉴 수 있었지만, 반대로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피자 배달 왔습니다. 남의 가게에서 이 무슨 민폐인고.


집에 돌아와서 모래놀이 장난감을 씻으며 바닷물에 재워진 아이의 몸도 씻었다. 아주 오랫동안.


오늘,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일은 한림공원에 수국을 보러 가야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계획이었던 그 수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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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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