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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n 09. 2017

여행으로 크는 아이

<여행으로 크는 아이 1>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2



자는 아이를 들쳐업고 나왔다.


그리고, 아이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잠에서 깨어났다. 비행기표를 손에 쥔 채, 출발층으로 올라가는데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며 "아빠, 비행기에서 만나요"라고 말한다. 지금 사실대로 말해주면 분명 울고불고 난리가 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일단 비행기에 올라서 상황을 설명해주자.


좌석에 앉으니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겸아, 음...아빠는 회사에 가셔야 해서 엄마랑 둘이만 제주집 갈 거야. 가서 이모도 만나고, 형아랑 누나도 보고, rain누나도 만나고 그러는 거 어때? 며칠 지나고 우리가 다시 겸이네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괜찮아?"

아이는 괜찮다면서도 눈에 벌써 눈물이 차오른다. 아빠와의 통화에서도 무슨 오랜 생이별을 하는 아이처럼 서럽게 흐느끼며 엄마 아빠를 미안하게 만든다.


얼마전 일이 떠올랐다. 동네에서 아이의 하원버스를 기다리는데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하시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이고, 중국에서 한국 애기들 버스사고 난 거 들었쑤? 그 뭐냐, 어디 놀러 가다가 그랬다는데. 애들을 그런델 왜 데리고 가나 몰러. 애들이 뭐 안다구. 그 어린것들이 무슨 죄야. 부모들이 지들 좋자고 데리고 가서는 애들을 그 모냥으로 만들고. 에휴, 요새 부모들이란 것들은 지들 생각만 혀."

얼마 전 발생한 중국 산동성의 국제유치원 버스 사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물론, 할머니들의 대화로 미루어 상황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신 듯했다. 중국으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고 여기시고 하시는 말씀인데, 어찌 됐든 '어린애들이 여행 가서 뭘 안다고 데리고 가서 그런 변을 당하느냐'가 말씀의 포인트였다. 그때는 '역시 옛날 분들이라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넘겼다.

하지만, 아이의 그렁한 눈물을 보는 이 순간, 그 날 그 할머니들의 대화가 떠오르면서 어쩌면 나도 나 좋자고 이런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통해 몸소 보고 느끼며 성장한 아이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믿고 있다. 우리 아이가 그것을 증명해주는 순간이 삶에 너무도 많다.


이를테면,

"엄마아빠, 밤햇님이 뭔 줄 알아요?"

"밤햇님은 달님이야."

"아니에요. 밤햇님은 반딧불이지."

반딧불이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맛있어서 기분이 따뜻해지네.", "바람이 나를 간질간질하고 날아가요." 같은 말들도 나는 여행을 통한 성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제주다.


렌터카도 꼬여서 시간이 붕 떠버렸다. 공항에서 지체하는 것보다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익숙한 길, 익숙한 풍경. 30분도 채 안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향 같은 '한달숙소'에 도착했다. 대문이며 밭이며 모두 예전 그대로다. 쥔장님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묵던 방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쥔장님의 감성이 묻어난 멋지고 근사한 집이었다.


마당이 있어 참 좋다.  매일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


겸이는 집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여기저기 탐색하느라 바쁘더니, 낮은 프레임의 침대 매트리스 위에 뒹구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훌쩍 키가 큰 겸이 이야기와 쥔장님 아이들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달라요. 확실히 달라. 큰 아이 초등학교 때, 작은 아이 서너 살 때 왔는데 둘의 감성이 완전히 달라요. 큰 아이는 현실적이고 조심스러운 반면, 둘째는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생각하는 그림을 쓱쓱 그려내요."


아이의 그림은 나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을 놀랄 만큼 잘 그렸고, 도에서 상도 받았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다고. 비록 나는 이분들처럼 완전한 이주는 못했지만, 틈나는 대로 아이에게 여행이라는 기회를 주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 곳곳에 우리가 갖지 못한 감성을 선사하겠노라고.


지난 일본 여행에서 만난 어르신 한 분도 이런 말을 했다. 많이 데리고 다니라고. 유산을 물려주지 말고, 여행이란 선물로 아이를 성장시키라고.




쥔장님이 올라가고 오래지 않아 다시 노크소리가 났다. 직접 만든 파인애플 에이드를 들고 오셨다. 겸이와 함께 안뜰로 나가 오붓하게 마셨다. 새소리와 푸릇한 초록들이 우리를 반기는 가운데.


마당에서 즐기는 파인 에이드


이제 겸이 낮잠시간이다. 어젯밤 나도 비행기 시간에 대느라 제대로 못 잔 탓에 눈알이 뻐근했다. 우리 둘은 시원한 침대에 누워 제주바람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렌터카를 인수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늘 한번 먹어보자 했다가, 주차할 곳이 없어서 또는 브레이크타임이어서 못 먹었던 수제버거를 먹기로 했다.

요리하는 목수.

애월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보면 나오는데, 주차난에 조금 더 마당이 널찍한 옆옆으로 이사를 했다. 1인용 목수버거를 주문했는데, 소스가 맵다며 따로 담아주신다 했다. 그런 친절함에 감사할 무렵, 소스가 덮인 버거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따로 주신다더니 소스는 따로 있나 보다고 생각하며 한 입 베어 무는데 어른 입에도 매콤하다. 그래서 확인했더니 대뜸 누구한테 주문했는지부터 묻는다. 이럴 때는 주문의 확인과 사과가 우선이다. 아무튼 상황을 보니 주문 내용이 주방에 전달이 안된 모양이다. 아이만 아니면 그냥 먹었을 텐데 같이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패티가 성인여자 주먹만하다.

새로 나온 버거는 허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다 보니 솔직히 비주얼만으로는 손이 가질 않았다. 게다가 작은 종지에 소스가 아닌 케찹만 덩그러니 나왔다. 혹시 이게 소스인지 물었더니 아이 먹일 게 아니냐며, 소스가 필요하면 가져다준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과잉 요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화법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물론 주문을 받은 사람과 서빙을 해준 사람은 각각 다른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미스 아니던가. 내가 저지른 실수가 아니더라도 손님에게는 그 가게 실수라고 받아들여진다. 사소한 경험이 그 가게의 이미지로 굳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재주문해서 나온 버거의 비주얼

그렇다면 맛은? 소스가 이 집 버거의 특징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매콤한 미트볼 소스의 맛이 꽤 좋았다. 소스가 덮여 나왔을 때 패티의 맛은 정말 맛있다. 특별한 재료 없이, 토마토, 양상추, 양파, 치즈, 그리고 패티만으로 그런 맛을 내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콤하고 좋았다. 하지만, 소스에 찍어먹을 때의 맛은 패티 본연의 맛을 느끼기엔 좋았지만, 그 자체가 육즙이 풍부하며 보드라운 그런 육질은 아니었기에 추천하진 않는다. 결론적으로, 아이 생각하지 말고 소스를 덮은 채로 먹으면 괜찮은 버거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어서, 곽지과물로 향했다.

한달살이 할 때 자주 갔던 곳.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용천수가 새어 나오고, 얕은 천연수영장이 조성된 그곳으로. 저녁 무렵이라 물가에 들어가서 놀지는 못했지만, 마음껏 모래 위를 달리고, 미끄럼틀을 탔다.


놀이터가 보이자 정신없이 달려간다.


맨발의 겸이는 이리저리 잘도 뛰어다녔다. 노천탕도 들어가 구경해보고, 돼지등에도 올라가 보고, 돌맹이들을 아이삼아 엄마아빠놀이도 하면서, 쉼 없이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미끄럼틀을 내려올 때의 아이의 기분을 상상해 보았는가.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으로 치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노닥거릴 때 느껴지는 '정신적 풍요로움'같은 것과 비교가 될는지.


바다 미끄럼틀


돌맹이 아빠가 되어, 미끄럼틀을 태워주고 있는 중.


돌맹이들 운동도 시켜주는 멋진 아빠다.


뉘엇해진 저녁햇살 속 곽지바다




오늘 한 것이라곤 맛집버거를 먹은 것과 해수욕장에 다녀온 것뿐이지만, 우리 모자는 오늘 행복했다.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여행을 오면서 짧은 일정 속에 최대한 많은 코스를 넣어 내실 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아이와 함께라면, '꽉 찬' 하루 일정보다 '알찬' 하루 일정을 더 추천한다. 앞으로 우리에겐 3일의 시간이 더 있고, 그 시간에 못 다한 것들은 다음의 과제로 남겨두면 된다. 그 과제를 다시 하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이곳, 제주를 찾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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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크는 아이1>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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