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의사

by teaterrace




가슴을 수술했다.

크거나 혹은 작게 하는 성형, 은 아니고 가슴속 혹을 제거했다.

수술이라는 표현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가슴에 칼 댄 여자가 되었다.




5년 전, 미혼시절.

잠자리에 들었다가 우연히 가슴에 손을 얹게 되었는데, 유두와 흉부 중앙 사이 강낭콩만 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왜 그날따라 거기에 손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유방암인가...


아주 조금의 이상증세만 있어도 엄마에게 그 증상을 호소하며 엄살을 부리는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병원을 예약하고 혼자서 병원을 찾았더랬다.


다행히 양성이며, '데리고(?) 살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난 아이를 낳았고, 수유도 했으니 분명 가슴 조직에도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손으로 만졌을 때, 전보다 분명 커져있음이 느껴졌다.


'살이 찌면, 혹도 커지려나... 아니면 젖을 먹여서 영향을 주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다시 병원을 찾았다. 전보다 크기가 커졌으며, 조직검사를 한 후 제거에 관하여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읭? 조직검사?

자궁경부암 검사를 할 때, 자궁에서 작은 조직을 떼내어하던 그런 검사? 그럼 가슴속 혹은 어떻게 조직검사를 하나? 혹시... 칼?


그렇다. 칼이었다. 피부를 4㎜ 정도 절개를 한 후, 만년필처럼 생긴 기구로 약간의 조직을 떼내는 것이다. 무섭다. 덜덜 떨며, 수술대 위에 누웠다. 주사가 따끔할 것이며, 기구가 드나들 때 뻐끈한 느낌이 들 거라고 했다.


수술부위를 소독하고, 소독포를 덮고 나니 의사가 들어왔다. 피부를 꼬집는 정도의 따끔함 후엔 청소기 소음 정도의 바람소리가 났고,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지금!"이라고 하면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면 "딱!"하는 총성이 나며 조직을 채취하는 것 같았다. 약물이 튈 수 있다고 보호안경을 씌어 놓은 덕에 눈을 뜨고 있을 수 있었지만, 소리만으로도 공포스러워서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는 정말로 잠깐으로 끝이 났다. 순간이 무서웠던 것이지, 사실 거의 통증이 없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날개뼈 부위가 약간 뻐근한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양성이지만, 앞으로 자라서 암이 될 가능성이 있는 종양이기에 '맘모톰'이란 방법으로 떼내는 게 좋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7 피부를 절개하고, 맘모톰을 넣어 종양을 조금씩 파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직검사할 때 정도의 통증만 있을 거라고.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수술을 받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병원으로 향하는데 아이의 모습이 괜히 눈에 밟힌다. 정말 간단한 것이라는데, 그래도 혹시... 다시 못 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던 날. '못 참겠으면 무통주사를 맞으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정말 가볍게 병원으로 갔는데, 천 명 중 한 명 꼴로 무통주사가 효과가 없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유도 주사의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혹시 그날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갔다가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나를 두렵게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의사와 마주했다. 수술에 관해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하는데, 언제쯤 운동이 가능한지, 언제쯤 머리를 할 수 있는 지를 물어봤다. 대수로운 수술이 아니라는 의사 앞에서 너무 진지한 모습은 우스워 보일 것 같아서였다.


수술대 위에 누웠다. 독실한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천정에 새겨있는 문구가 나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켜주었다.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Isaiah‬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래. 신이 있다면 지켜주겠지. 애엄마를 이대로 보내겠어?


이윽고 의사가 들어왔다.


"겁먹지 마세요. 아프지 않아요."

자상한 말투의 의사는 이렇게 나를 안심시키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기도를 할 건데, 혹시 불편하지 않으세요?"


두려울 때는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붙잡고 기도를 하고 싶어 진다.


"네. 괜찮아요."

내 말이 끝나자 의사는 내 곁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듯 기도를 마쳤다.


정말 신기하게도 의사의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심이 되고, 신뢰도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의사들의 별의별 행태를 볼 때마다 저런 부도덕한 자들에게 내 생명을 어떻게 의지할지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내 눈앞의 의사는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의사인 자신도 인간이기에 혹시 모를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신을 붙잡고 부탁했을 것이며, 진심으로 나의 수술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잘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으로 전달되었다.


"주사, 따끔합니다."


이 말과 함께 나의 수술은 시작되었다. 도깨비방망이 블렌더처럼 생긴 기구가 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감각만 있을 뿐 통증은 없는데도 무서운 기구에 나도 모르게 천정만 직시하고 있었다. 천정에는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라는 문구가 나를 다시 한번 안심시켰다. 간사하게도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서, 신이 절실해진다.


"잘 끝났습니다. 초음파에서도 아주 깨끗하게 제거되었습니다. 괜찮으셨죠?"


긴장의 시간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지혈과 함께 하루 동안 수술의 추이를 지켜보고, 다시 한번 초음파 검사를 통해 수술 결과를 살펴본다고 한다. 2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반듯한 자세로 천정을 보고 누워있어야 한다. 괜히 화장실도 가고 싶어 진다. 입원실에서 기다리며, 잠도 자고 식사도 했다. 당일입원이라는 것은 꽤 할만한 것 같다.


다행히 초음파 검사에서도 깨끗한 상태를 확인하고 퇴원했다. 통증이 있으면 아스피린을 제외한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다.


양가에서 걱정의 전화가 계속 왔다. 좀 아픈 척을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씩씩한 목소리가 나온다.




수술 후유증은 없냐고?


당연히 있다.

우선은 3일 후에나 샤워가 가능하다. 한여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씻지 않는 것인데.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버틸 수 있다.


그리고 2주간 격한 운동, 심지어는 아이 안아주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해방이 된 것 같기도 하면서, 아직도 자다가 깨면 엄마 쭈쭈를 만지는 아이를 떼내는 일이 가능할까 걱정도 된다.


엄마랑 잘 수 없다고 며칠 전부터 이야기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아이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빠가 품에 안고는 함께 자자고 하는데, 마치 포획된 아기곰마냥 버둥거리며 엄마와의 격리를 격하게 거부했다.



"엄마,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돼요?"

라며 서럽게 운다. 엄마와의 강제격리의 당황스러움이 처음이라 아이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대사마저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 곁에 누웠다.


이 밖에도 날개뼈 부분이 뻐근하거나, 가슴 근육 부근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통제를 먹기에는 애매한 정도.


좋은 점은 수술을 핑계로 가사에서 적당히 손을 뗄 수 있다는 것.




처음엔 별게 다 몸에 생긴다고 여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술을 받았고 내 주변에도 안 받은 이들보다 받은 이가 더 많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왕이면, 안 생기면 가장 좋지만, 생겨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정기검진은 반드시 받을 것. 나야 운 좋은 케이스이지만, 정기검진 한 번 거른 사이에 유방암이 된 사람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병이든 통증이 나타나면 이미 많이 늦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가슴 수술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