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울 자격
엄마, 나는 저거 갖고 싶지만 꾸우욱 참을거야.
장난감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나칠 때면 주먹을 꼬옥 쥐고 두눈을 질끈 감는 시늉을 하며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다. 전에는 "엄마, 나 이거 필요해요."라고 말하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대사를 바꾸었다. 그럴때마다 남편과 나는 이런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에 신음소리를 내며 안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마음이 녹아 사주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엄마, 선생님이 소리지르고 뛰어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뛰어다녀요."라며 규칙과 지시를 지키지 않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또한 "엄마아빠 이야기하는 동안 내가 기다렸어요"라며 자신이 잘 참은 것에 대한 칭찬도 바라는 아이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이런 아이를 보며, 대체로 순한 편이며 큰 소리 내며 훈육하지 않아도 아이가 바르고 영리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단,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아주 사소한 일에 이상하리만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TV채널을 돌리는데 자신이 원하는 채널이 나왔을 때 "이거요!"라는 외침이 있어 올리던 채널을 다시 내리려고 하는 찰나, "으아앙! 이거 말고! 이거 말고! 아까 그거 본다고 했잖아!"하고 울며 두 팔로 나를 내리친다. 또 어떨 때는 "아빠가 먼저 치카치카 하러 간다!"라고 하면, 지는 게 싫어 울며 달려가서는 제 아빠를 손톱으로 할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제 아빠도 "아빠를 할퀴면 안되는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할퀴면 안 돼. 말로 할 수 있잖아."라며 다소 짜증섞인 목소리를 내며 알려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을 되물어도 화를 낸다. 어휘는 풍부하나 아직 발음은 부정확한 부분이 있기도 한데다, 아이가 보는 TV프로에 등장하는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 알 리 없는 엄마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러차례 이를 되묻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아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요즘은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싫어하는데, 등원시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삿대질이나 문을 쾅 닫는 등의 행동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시무룩한 표정이 주를 이룬다. 아이의 말로는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고,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도 아이는 어울려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며 사회성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신다. 하지만, 우리네 어릴 적을 돌아봤을 때 이렇게 일찍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유치원이나 학교에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었기에 그저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가장 크겠거니 생각해서 크게 문제시 하지는 않는다. 뿐만아니라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고지용씨의 아들 '승재'를 보고 우리 아이같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또래에 비해 어휘력이나 표현력이 월등히 높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데에서 또래놀이에 아직 흥미를 얻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학교에서 자신이 분노조절장애라며 교사에게 소화기를 들고 덤비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 이 일로 교사들 전체가 무력감을 느꼈으며, 동시에 분노조절장애라는 것에 대한 재인식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학생은 정말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이는 아니고, 그것을 '교사에게 덤빌 수 있는 합리화된 무기'로 쓰는 듯 보였다.
혹시 우리 아이도 분노를 조절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분노라는 것의 정체도 모르고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 월령의 아이들은 다분히 그럴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인 것일까.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져 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동심리발달에 관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상담소를 찾는 우리의 마음에는 한편으로는 분노조절장애라는 평가가 나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아이의 언어발달에 대해 부모로서 어떻게 조력을 해주면 이를 더 풍부화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다.
아직 40개월이 안된 아이의 경우는 보통 놀이평가로 진행하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나의 말을 듣고 그림과 인터뷰로 평가를 시도했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 후 양육방식과 현재 문제상황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평가결과와 비교하며 찬찬히 들려주는데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워졌다.
아이가 많이 억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우리아이가요? 우리는 아이에게 호된 훈육을 한 적도 없고, 소리지르며 혼낸 경험도 손에 꼽을 만큼 일 거에요. 게다가 엄마가 복직한 후로는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시는데 첫 손주다보니 얼마나 아이에게 지극정성인지, 우리는 아이의 분노표출이나 폭력(할퀴기, 때리기 등)도 허용적인 양육분위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뒤이어 아이의 평가결과를 듣고나서는 우리는 더이상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온갖 종류의 죄책감만이 우리를 옥죄고 있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어요. 나무를 그려보게 하고, 어떤 나무인지 이야기하고 나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물어보았지요. 밤나무라고 하더라구요. 밤을 따면 안되는데 어른들이 따가서 속상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무는 나중에 죽겠지"라고 답했어요."
우리 아파트 앞편에는 밤나무동산이 있는데 거기에 크게 '이곳의 밤들은 공공의 재산이니 따가지 마시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아이가 궁금해하기에 그것을 알려주었다. 그 후 할머니와 다시 그곳에 간 아이는 밤을 따는 어른들에게 "밤 따지 말라고 써있는데요"라고 알려주었다는 일화를 전해주었다. 아이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줄곧 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나무가 나중에 죽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가.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열매를 맺을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죽는다고 표현을 하더라구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아직 38개월인 아이가 '처량하다,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쓰는 것도 예사롭지는 않지요. 조심스럽지만 약간 무기력한 모습도 보이는 듯 합니다."
웃기를 좋아하고,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떠들고 즉각적으로 노래를 개사해서 부를 정도로 순발력도 뛰어나고 흥이 많으며, 쉼없이 뛰어다니고 땀을 쏟는 우리 아이가 무기력하다니.
뒤이어 아이가 귀신이야기도 한참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잘못인데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신비아파트'라는 프로그램을 아이가 보고 싶어해서 한 번 보여주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재미 있어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보여주었던 게 화근인 듯 했다. 그후 우리에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귀신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여기에 와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언젠가 평소 자던 방과 놀이방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하고 문을 닫으라며 공포스러워 하는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시청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상담사는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 'FANTASY'인데 아이가 그 경험을 계기로 환상이라는 것에 재미를 느껴 이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문제는 판타지의 소재로 귀신이야기를 하며 억압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인데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귀신이야기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하자'며 아이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
'억압'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큰 소리로 혼내지 않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차분히 알려주면 아이는 그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행동을 했는데 왜 억압이 되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 말에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큰 소리로 혼을 내며 알려주건 상냥한 말투로 알려주건 메세지는 동일하거든요. 문제는 '공감'이에요. 이 아이에게는 '공감'이 절실히 필요해요. 공감만 해주면 이 아이는 영리해서 부모가 알려주려는 메세지를 금세 눈치챌 수 있거든요."
남편과 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남편은 본래 태생이 성을 잘 내지 않는 편이고, 나는 엄격한 부모님의 훈육이 싫어서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친절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며 아이를 키웠다. 하지만, 우리 부부 모두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무례한 행동'에는 완곡하지만 제제를 해왔다. 그 제제가 때로는 적절했을 수도 있고 때로는 과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당연한 훈육을 했다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체면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부드러운 방식으로 코칭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매사 제약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불안 또는 걱정을 내재한 단어의 사용 빈도도 높았다.
"그렇게 하면 위험해. 다칠 수 있어. 엄마는 걱정 돼."
비록 혼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걱정이 많은 부모 밑에서 이를 모델링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안과 걱정이 많은 아이로 자라온 것이다. 부모의 부드러운 억압과 부모가 키워준 불안감으로,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억제하여 부모의 눈에는 한없이 순하고 기특하며 또래에 비해 철든 아이로 비춰졌던 것이다. 물론 아이의 기질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눈치가 빠르고 감정이 풍부하고 사소한 것에도 쉽게 토라지는 아이였기 때문에 생활전반에 걸친 '부드러운 제약'조차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드럽더라도 말로 제약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아이가 모델링하도록 두면 될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초기 어린이집 상담에서 한 원장님이 내게 한 말을 떠올렸다. 그때는 아이가 30개월 쯤 되었을 때이다.
"엄마 혹시 선생님이세요? 아이가 행동 하나하나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있잖아요. 저 개월수때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서 만지는 게 당연한데 하나하나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있네요. 이 아이가 나중에는 스스로 무슨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아이들이 많이 저렇더라구요. 남에게 피해주는 거 싫어서 그러는데 그건 말로 할 필요가 없어요. 부모가 행동으로 보이면 아이들은 그대로 배워요."
그 때 그 원장님의 말만 귀담아 들었더라면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고민은 덜 하지 않았을까. 그말을 듣고도 나는 '부모가 본을 보이면 아이는 배운다'는 다소 일반적인 교훈이라는 생각만 갖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 아이의 경우, 걱정이 많고 남에게 피해주는 것이 싫은 엄마 아빠의 부드러운 제약이 아니라 본이 되는 행동이면 되는 것이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인사해야지~"라고 부드럽게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아빠가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인사해야지~"라는 코칭이 없어도 '이웃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동시에 이를 모델링을 하며 아이는 배우고 성장해 가는 것이었다.
상담사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엄마,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장난감으로 손을 치고 갔어요. 그리고 미안하다고도 안해요'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실 거 같으세요?"
"'아팠겠다. 근데 그 친구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거야'라고 말할 거 같아요."
"그렇죠? 일반적으로 그래요. 근데 이 말에는 공감이 많이 부족해요. 이 아이는 그 친구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요? 다만, 공감이 필요한 거에요. 특히 부모의 공감. '아파겠다. 속상했지? 친구가 사과도 안해서. 그 때 기분이 어땠어?'하고 물어봐 주기만 해도 아이는 부모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구나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 친구가 일부로 그러지 않았다는 가르침은 굳이 필요가 없어요. 그 말은 엄마 아빠가 내 말은 믿어주지 않고 친구 편만 든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 뿐이지요."
우리 부부는 동시에 "하아~!"하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 한숨은 육아의 길이 참 어렵다는 표현이기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공감의 부족'에 대한 깨달음이 더 컸다. 아이와 스킨쉽도 많고 대화도 많이 하고, 시간을 내서 좋은 것을 먹여주고 보여주는 나름 괜찮은 부모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의젓한 아이의 모습이 그 증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것이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깨달음 말이다.
상담을 하면서 순간순간 울컥하는 일이 많았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보다 남편은 그 충격이 더 큰 듯 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대체로 5살까지는 보듬어주고 6살부터 적절한 훈육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고, 남편은 아무래도 남에게 피해주는 것이 싫은 일반적인 아빠들처럼 아이를 양육하다보니 어떤 부분에는 나보다 제약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비록 부드러운 말투였다해도.
부모가 상담하는 동안, 아이는 놀이치료 선생님과 함께 노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과도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상담소를 나오면서 우리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해서, 그간 억제되어 살아온 아이의 현재 기분을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저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괜스레 장남감을 사준다고 하거나 사고 싶은 책 다 골라도 된다는 우리의 양육방식의 급 변경은 분명 아이도 이상하게 여겼을 것 같다. 당장은 어느 선까지 제한을 풀어야 하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진행하다 보면 어느정도 데드라인이 생길 거라며 우선은 부모의 태도를 바꾸는 것에 중점을 두자고 했다.
사실 분노도 분노지만, 이렇게 아이가 계속 제약을 받다보면 아이의 자존감도 낮아질 수 있다는 말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대학 때 배운 교육학이 이렇게 절실하게 마음에 다가올 줄이야.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성격발달단계를 보면, 출생부터 생후 1년 6개월 사이에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통해 부모에 대한 신뢰감을 쌓아가는데 이 단계가 결핍이 되면 불신감을 경험하게 되며, 이는 다음 단계의 셩격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3세까지 규율과 자율,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기통제에 대한 자신감과 자율성을 기른다. 부모의 과도한 규제를 받거나 자기통제에 실패하게 될 때 아이는 회의심과 수치심을 갖게 된다. 자신감 발달과 가장 관련이 깊은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 아이의 단계에서는 아직 기초적이지만 주도적행동을 하는데 이런 행동이 적절한 비율로 성공을 하면 주도성을 확립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주도성이 위축되거나 죄의식을 갖게 된다.
'엄마의 허락이 없이 아이가 스스로 판단을 하고 행동할 수 있겠느냐'라는 어린이집 원장의 말처럼 자기판단력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귀착되면, 자존감은 높아지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감기에 걸린 것 조차도 '엄마가 물 속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런거에요. 다 내 잘못이에요.'라는 아이의 자기원망은 아이가 죄의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이 스스로 '나는 혼자서 할 수 없으며, 나는 잘못하고 있다'라는 생각의 표현이기에 자존감과 분리하여 생각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상담내용을 정리하고 양육의 방향을 정했다.
"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보통의 아이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많이 써야 하는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어. 어쩌면 남들에게 피해주는 부모가 되기 싫은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 양육관이었던것 같아. 말로는 자유롭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서도 우리의 방식은 아이를 소리없이 옥죄고 눈치보게 하면서 스스로 철들게 만들었네. 아이가 행복해야 했는데 부모가 행복했었어. 우리가 많이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 매사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이런 대화들 속에서도 우리는 가끔씩 울컥했다.
"그리고, 부모가 당당해져야 할 것 같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델링된다고 했잖아. 부모가 매사에 당당하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자신감, 자존감을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를테면, 평소 출근할 때는 동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적당한 톤으로 이야기하지만, 조금 늦으면 눈치껏 조용히 자리에 앉거나 눈치보며 인사하거든. 그런데 다른 선생님을 보니까 늦어도 평소처럼 기죽지 않고 당당히 인사를 하더라고. 사실 생각해보면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날 조금 늦었을 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미안해하며 자신을 낮춰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어쩌면 과잉된 자기 반성인지도 몰라. 이런 모든 행동들이 당당함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 평소에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라면 사소한 일에 그렇게 눈치를 보지 않을테니까."
괜히 미운 네 살이라고 하는 게 아닌 것이 이맘때 아이들은 떼도 부리고 성질도 부리고 그러는 것이 어쩌면 일반적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 아이는 남자 아이치고 참 얌전하고, 또래에 비해 온순하고 의젓하고 말도 잘 하고 잘 알아듣는 아이이다. 문제의식이 없이 이대로 키워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이는 자신의 엄마 아빠처럼 잘 참고, 남에게 피해 안주는 반듯한 인간으로 성장하겠지만, 참아서 곪은 상처는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또한 본인만 참으면 된다는 방식을 택해 속이 썩은 달걀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껍질이 쉽게 부서지고, 그 속 또한 곪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곁에 둘 수 없는 그런 달걀말이다. 내적 화농 상태는 겉으로 눈에 띌만큼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남들은(부모조차도) 모른채 살아간다. 이런 악순환을 그대로 전수하여 우리 아이마저도 '겉은 멀쩡하게 적당히 문제없는 삶'을 살도록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우리의 양육방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문제상황에서도 건강하게 해결하고 극복하는 것 같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