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

내가 좋아하던 것 다시 바라보기

by Serene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속도가 빨랐다. 그만큼 책을 좋아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하다가, 숙제를 하다가, 중간에 엄마가 10분씩 쉬는 시간을 주면 항상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특히 소설을 좋아했고, 내 책꽂이에는 장르를 불문한 여러 소설들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책 읽는 시간은 항상 금방 지나갔다. 한 권의 책이 한 번도 내게 부담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는 소설과 멀어지게 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편의 논문을 읽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이 일이자 생활이 되면서, 사실 학문적 글을 제외한 '책'들은 어느 순간 사치가 되어버렸다. 논문을 한 개라도 더 '읽을' 시간에 이 책을 '읽는'게 맞나.. 이런 고민이 머리를 때리곤 한다. 문제는 바로 두 행위가 모두 '읽는다'라서 인 것 같다. 대상이 다른데도, 나는 어떤 행위인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모양이다.


그러다 가끔 휴가를 갈 때면, 소설 (휴가지에서는 특히 추리소설이 최고다)을 3-4권씩 챙겨간다.

마음먹고 일에서, 공부에서, 멀어지고자 한 시간에 여전히 나의 휴양은 독서인 것이다.


코로나 직전 휴가 차 동생이 있는 뉴욕을 갔을 땐 아무 책도 챙겨가지 못했었는데, 마침 동생이 읽고 있는 소설책이 있어 이틀 만에 끝내버렸다.

동생이 제일 싫어하는 짓이다. 역시나 한마디 들었다. '누나는 저래서 얄밉다니깐. 어릴 때부터 읽는 게 너무 빨라서, 내가 뒤쳐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내가 책을 좋아하고, 읽는 행위도 좋아하고, 읽는 속도도 빨라서 공부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읽는 속도가 아직도 느려 터진 내 동생도 공부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 자식은 요즘에 나보다 논문을 더 많이 읽는 것 같다. 나의 추론은 일반화되기엔 어려운 모양이다.


나이를 먹고 40이 코앞이 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분명 문과 감성의 센티한 아이였는데, 공부를 길게 하고 분석적 시각이 내제화 되면서 냉정하고 분명한 이과 쟁이로 살고 있다. 나의 후배들은 로봇이냐고 나를 놀리기 일쑤고, 실제로 나는 감성적 반응, 태도, 응답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나는, 여전히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사색을 좋아하고, 책 한 권과 내 연애를 비유하는 문과 갬성을 가슴팍에 숨겨놓고 살고 있는 모양이다.


이래서 요즘 유행하는 MBTI가 안 맞는 거다. 다들 보이는 모습과 자기만 아는 모습이 다르니까.

그렇지만 다르면 또 어떻고 같으면 어떤가. 나만 알면 되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내가 위로와 평화를 주는 게 무엇인지.


강의가 모두 끝나고 그나마 조금 한가로운 방학 기간엔- 물론 이렇게 글을 쓰면서소 마무리해야 하는 논문들의 목록이 눈앞을 스치지만-서점을 가야겠다. 오래간만에 읽지 못했던 신간들을 살펴보고, 눈길을 끄는 소설들을 집어와야겠다. 같은 '읽기'여도 다른 '읽기'가 된다는 걸 나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배우게 해야겠다. 또, 논문을 '쓰는'것와 이렇게 나의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보낼 수 있는 서로 다른 시간이라는 걸 마음으로 깨닫고 싶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빨랐지만, 뒤를 먼저 보는 그런 책 읽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빨리 읽는 만큼 그 책의 내용과 여운을 얼마나 길게 가져갔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그런 속도를 생각해봐야겠다. 읽고, 그걸 마음에 담고, 음미하고, 또 두고두고 기억하는 속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