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미치와 마쓰야마
도고 온천에서의 아침. 정갈한 조식을 비우고 짐을 꾸리기 전,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근 도고 공원 주변을 산책했다. 밤새 차갑게 가라앉은 맑은 봄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 내린다. 온천장의 고즈넉한 아침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다시 렌터카의 시동을 걸고 마쓰야마성(松山城)으로 향했다.
10년 전, 왁자지껄한 일행들과 함께 가파른 리프트에 올라탔던 그 성이다. 다시 마주한 마쓰야마성의 거대한 천수각은 변함없이 웅장한 자태로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발아래 펼쳐진 마쓰야마의 전경을 내려다본다. 10년 전, 분초를 다투며 비즈니스의 최전선을 달리던 50대의 내 모습이 불현듯 겹쳐 지나간다.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고성(古城)의 깊은 주름과 흩날리는 봄꽃의 여백이, 예순을 넘겨 학도(學徒)의 길을 걷는 지금에야 비로소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전의 여유로운 도심 산책과 가벼운 쇼핑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오찬 장소로 향했다. 에히메현에 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명물, 도미밥(다이메시)을 내는 현지 식당이다.
투명하고 찰진 도미 회를 특제 간장 소스와 달걀노른자에 비벼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는 우와지마식 도미밥.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는 순간, 소스의 짭조름한 단맛과 신선한 도미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가장 좋은 식자재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절묘한 양념의 배합으로 가치를 끌어올리는 솜씨. 오랫동안 하이엔드 식자재를 발굴해 온 상인(商人)의 혀끝에도 흠잡을 데 없는, 깊고 묵직한 내공이 느껴지는 한 그릇이었다.
마쓰야마 공항에 도착해 정들었던 렌터카의 열쇠를 반납했다.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본다.
비 내리는 히로시마의 도모노우라에서 시작해, 다도해의 절경을 품은 시마나미 해도를 건너, 벚꽃 흩날리는 마쓰야마에 닿았던 2박 3일. 시간의 더딤을 배우고 자연의 순리를 읽어냈던 이 짧고도 짙은 봄날의 궤적이, 또 하나의 소중한 페이지가 되어 여행 수첩 깊숙한 곳에 접혀 들어간다.
[턱시도의 여행수첩 : 에히메의 자부심, 도미밥(鯛めし)]
일본 내 도미 어획량 1위를 자랑하는 에히메현은 도미 요리의 천국입니다. 그중에서도 도미밥은 지역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마쓰야마를 중심으로 한 주요(中予) 지방에서는 도미를 통째로 쌀과 함께 짓는 담백한 '호조 도미밥(北条鯛めし)'을 즐겨 먹고, 남부의 우와지마(宇和島) 지역에서는 신선한 도미 회를 간장 소스, 달걀노른자와 함께 밥에 얹어 먹는 덮밥 형태를 띱니다. 후자는 과거 세토 내해를 누비던 수군(해적)들이 선상에서 밥 위에 갓 잡은 생선을 얹어 먹던 거친 식문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각기 다른 방식 속에 지역의 기후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훌륭한 미식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