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와 바다의교토 4박5일
오후의 인천국제공항은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한풀 꺾여 있었다.
쫓기듯 탑승구를 향해 뛰어가던 과거의 숱한 출장길과 달리,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는 발걸음이 한결 느긋하다. 오후의 여유로운 비행. 출발부터 서두르지 않는 이 편안한 리듬이, 예순을 넘겨 나만의 템포로 운전대를 잡는 렌터카 여행의 진짜 묘미일지도 모른다.
규모가 아담한 고베 공항에 도착하니, 붐비지 않아 입국 수속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났다. 거대한 대형 공항에서는 누릴 수 없는 지방도시 공항만의 쾌적함이다. 여유롭게 렌터카를 수령하고, 익숙하게 차머리를 도심으로 돌렸다. 해가 저물고 고베 시내에 어둠이 깔릴 무렵, 첫 목적지인 메리켄 파크에 닿았다.
차에서 내려 바닷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걷는다. 붉게 빛나는 고베 포트 타워와 해양 박물관의 기하학적인 조명, 그리고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의 불빛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베 메리켄 파크의 야경은 변함없이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현해탄을 건너며 하이엔드 식자재의 물길을 터온 무역인의 감각이, 150여 년 전 서양의 낯선 문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번영을 이룩한 이 개항 도시의 묵직한 박동과 묘하게 공명하는 듯했다.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고베 뒷골목의 조용한 장어구이(우나기) 식당의 문을 열었다.
숯불 위에서 뭉근하게 구워낸 장어와 수십 년의 세월이 응축된 깊고 진한 타레(간장 소스)의 조화. 질 좋은 원물이 훌륭한 조리법과 정통의 소스를 만났을 때 폭발하는 그 완벽한 미식의 균형은, 언제 맛보아도 경이롭다.
부드러운 장어 한 점에 차가운 생맥주를 곁들이며 순식간에 끝났던 입국 수속의 경쾌함과 찬란했던 항구의 야경을 천천히 반추한다. 내일이면 화려한 고베 도심을 벗어나, 거친 동해를 마주한 북쪽 끝 '바다의 교토'로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바다를 잇는 이번 렌터카 여정의 첫날밤이, 깊고 진한 타레의 향기 속에서 기분 좋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턱시도의 여행수첩 : 고베(神戸)항과 메리켄 파크]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인 고베는 1868년 개항 이래 서양의 문물과 문화가 일본으로 들어오는 핵심 관문이었습니다. '메리켄 파크'라는 이름 역시 근처에 미국(American) 영사관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항구 전체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놀라운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서 현재의 아름다운 수변 공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화려한 야경 이면에는 자연의 거대한 위력을 견뎌내고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어낸 고베 시민들의 강인한 인내와 역사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