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미치와 마쓰야마
오노미치(尾道)의 아침은 투명한 봄볕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갈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장 로프웨이에 몸을 실었다. 천천히 고도를 높여 센코지(千光寺) 전망대에 오르니, 발아래로 벚꽃에 포근하게 감싸인 오노미치 시내와 푸른 세토 내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연분홍 꽃잎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 물결을 보고 있노라니, 10년 전 이곳을 찾았던 치열한 50대의 나와 이제는 한결 여유로워진 60대의 내가 이 높은 곳에서 서로 조우하는 듯한 묘한 감회에 젖어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시마나미 해도(しま나미海道)에 올랐다. 렌터카의 창문을 내리자 바다 냄새 섞인 신선한 봄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든다. 섬과 섬을 잇는 거대한 다리들을 하나씩 건너는 드라이브는 마치 바다 위를 항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타라 대교를 건너 잠시 멈춰 선 곳은 오야마즈미 신사(大山祇神社)였다. 거대한 신목(神木)들이 자아내는 영험한 기운 속에 서서,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고목의 인내를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다시 차를 몰아 구루시마 해협 휴게소에 닿았다. 소용돌이치는 거센 조류를 바라보며 즐기는 점심 식사. 세토 내해의 거친 생명력이 입안 가득 전해지는 듯했다.
오후에는 해안선을 벗어나 에히메(愛媛)의 깊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굽이진 길을 돌 때마다 연분홍빛 산벚꽃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며 만개해 있었다. 도심의 화려한 벚꽃과는 또 다른, 강인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거친 길 위에서도 묵묵히 제 시간을 기다려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순리를 보며,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은 손에 나직이 힘을 주어본다.
여정의 종착지인 마쓰야마의 도고(道後) 온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10년 전, 빗속에서 마주했던 그 3,000년의 온기 속으로 다시 몸을 누였다. 뜨거운 온천물이 피로를 씻어내고 온몸으로 번져나갈 때, 비로소 오늘 하루 내가 건너온 수많은 다리와 산길, 그리고 그 길 위에 피어있던 벚꽃의 잔상이 하나의 풍경으로 갈무리되었다.
[턱시도의 여행수첩 : 시마나미 해도와 오야마즈미 신사]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을 잇는 '시마나미 해도'는 세토 내해의 섬들을 9개의 다리로 연결한 총연장 약 60km의 해상 도로입니다. 세계 최초의 3연속 현수교인 구루시마 해협 대교 등 현대 토목공학의 결정체들이 다도해의 절경과 어우러져 '자전거 여행자의 성지'로도 불립니다. 여정의 중간 지점인 오미시마에 위치한 '오야마즈미 신사'는 일본의 산과 바다, 군사의 신을 모시는 유서 깊은 곳으로, 일본 전역에 있는 야마즈미 신사의 총본산입니다. 신사 경내에는 수령 2,600년이 넘는 거대한 녹나무(신목)가 자리 잡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압도적인 경외감과 함께 시간을 초월한 평안을 안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