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글쓰기에서 공적 글쓰기로의 전환
월드컵이 끝난 2003년에 교사가 되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시험을 쳤다. 기술과 TO가 많다는 것이 전부였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발령받아 1학년 담임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시험 준비 덕에 아는 것도 많았고, 에너지도 넘쳤다. 그러나 그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 시절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임용 준비로 쌓은 이론적 지식은 50분 수업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과목의 한계도 컸다. 수능 과목이 아니라는 프레임은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23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이것은 핑계에 가깝다. 당시 나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던 나에게 지인이 추천한 한국교원대 석사 파견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고, 그 선택은 내 삶을 바꾸었다.
2년간의 대학원 시절은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 시간이었다. 그전까지의 공부는 노동과 같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임용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했던 공부였다. 배움의 즐거움보다 버텨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석사 과정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순수하게 ‘내가 가르치는 교과’를 알고 싶었다. 교육학도 알고 싶었다. 기술교육학회지와 여러 교육학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누가 읽으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너무 몰라서 읽다 보니, 조금씩 알아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왔다. 서울대 교육학과 이홍우 교수님이 쓰신 교육학 서적을 만난 것이었다.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공부의 방향이 한 곳으로 모였다. 시간만 나면 읽었다. 그 어떤 책 보다 재미있었다. 그림 하나 없는 책, 누구나 보면 답답해 보일 그 책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정교한 글의 구조, 빈틈없는 논리, 독자의 심리를 꿰뚫어 예상되는 반응을 미리 짚는 전개 방식, 그리고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통찰력.
감히 나 같은 초보자는 이런 표현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만큼 그분은 교육학의 대가였다. 내 공부는 그분의 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읽고 또 읽는 것이 전부였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으면 혼자 끙끙대며 고민했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가며 교수님의 생각과 씨름했다. 표현 하나,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었기에, 다시 읽다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하며 그 치밀함에 놀라곤 했다.
그런데 읽기 능력이 향상되는 것과 달리, 내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교수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었다. 글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대가의 글을 읽었다면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기본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한 문장을 쓰고도 문장 간의 관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조화를 따지다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졌다. 석사 학위 논문은 겨우 썼지만, 박사 과정에서는 아티클은커녕 일상의 글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못 쓴단 말인가.’ 중고등학교 때 글쓰기 연습이라도 좀 해둘 걸 하는 후회가 수시로 들었다.
이런 글쓰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글쓰기 책을 사서 읽는 것이었다. 글쓰기 관련 책을 검색해 평이 좋은 책을 하나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문장강화』, 『논리의 기술』 등 글쓰기와 논리에 관한 책들이 그 시기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는다고 지도교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지금은 논문을 써야 할 시기인데, 왜 쓸데없는 책을 읽느냐’는 것이었다. 성격에 맞지 않는 책을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글을 ‘써야’ 느는 법인데, 나는 또다시 글을 읽고만 있었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나의 글쓰기 실력이 폭발적으로 는 때는 박사 논문을 쓸 때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2009년 박사 과정에 입학하고, 2011년 코스웍을 마친 뒤에도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해 오랫동안 끙끙댔다. 그러다 2014년 ‘기술 교사의 실천적 지식’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현장 연구와 논문 쓰기를 시작했다. 2015년에는 학교를 옮기고 고1 담임을 맡으면서 학위 논문을 쓰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계획서를 발표한 뒤, 지인의 빈집에 머물며 주말마다 하루 8시간 이상 논문을 쓰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쪽, 몸 상태가 좋을 때는 서너 쪽을 쓰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저렇게 쓰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괴로움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냥 적당히 쓰자’는 나약함과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논문을 쓰자’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국 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그동안의 글쓰기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렇게 박사 논문을 끝냈다. (논문이 완성되면 대부분 사람은 다시는 자기 논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데, 나는 졸업 후에도 두세 번은 다시 읽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논문에 지친 탓인지 추가적인 아티클은 쓰지 않았다. 사실 대학으로 가려면 학위 이후의 글쓰기가 더 중요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미련한 선택이었다. 대신 현장 글쓰기를 시작했다. 박사 논문이 수업을 관찰하고 교사의 지식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연구였던 만큼, 이후 관심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모였다. 학교에서 수업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마음이 맞는 동료 교사들과 수업 모임을 만들어 수업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정리하며 현장 글쓰기 실력을 키워갔다.
한 차시의 수업을 보면, 말로 의견을 전하는 것보다 글로 써서 드리는 것이 어렵게 수업을 공개한 선생님께 예의를 표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관찰 내용과 내 의견을 담은 수업 관찰록을 써서 드렸다. 이런 관찰록을 처음 받아본다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분도 있었고, 커피 한 잔을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는 분도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내 글에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은 수업을 열어준 그 선생님들이야말로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었다.
일상의 글쓰기도 이어졌다. 책 읽기는 일상이 되었고, 나는 한글 파일을 나만의 표준화된 스타일로 만들어 ‘독서노트’라는 이름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했다. 또 에버노트나 워크플로위 같은 생산성 도구를 활용해 듬성듬성 생각을 기록했다. 누구에게 공개하거나 소통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롯이 내 공부를 위해 내 방식대로 정리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일이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2021년 10월부터 노션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글쓰기는 완전히 습관이 되었다. 매일의 일상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일기 쓰듯 하루하루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해가 거듭되면서 내가 쓴 글들은 점점 쌓여갔다. 컴퓨터 폴더 여기저기, 에버노트와 노션 등 여러 온라인 공간에 글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것들은 철저히 혼자만의 글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양이 많아졌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내가 쓴 글인지조차 모르겠는 경우가 많았다. 내 글은 고여 있었고, 쓴 주인에게조차 외면받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언제든지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한편으로 느껴지는 허전함과 답답함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글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남아 있었고, 그 결과 글쓰기 실력은 어느 지점에서 멈춰있었다.
올해 10일간의 긴 추석 연휴를 보내며 나를 정비했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매일 쓰던 노션 시스템을 정리하고, 그동안 썼던 글을 열어보며 나를 돌아봤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공개’와 ‘소통’이었다. 이제는 공적 글쓰기를 하자. 매일 샌드백만 치던 것에서 벗어나, 링 위에 오르자. 외면을 받든, 관심을 받든, 글로 소통하자. 이제는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자.
작가 신청을 위해 세 편의 글을 썼다. 늦어지면 의지가 꺾일 것 같아, 이미 써둔 글을 공개용으로 다듬었다. 심사를 위한 글이다 보니 평소처럼 술술 풀리지 않았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다시금 글쓰기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한 편을 끝내고 또 한 편을 끝내니 점점 익숙해졌다. 세 편을 마치고 즉시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승인 메일이 왔다. ‘됐구나. 통과했구나.’
이제 시작이다. 작심삼일이어도 좋다. 중간에 멈춰도 좋다. 노션 일기 쓰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될 때도 그랬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내 것이 되었다. 브런치도 그럴 것이다.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공적 글쓰기가 숨 쉬는 것처럼 편한 날이 분명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