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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Nov 07. 2020

[FreeView] 애플이 너무해

#이어폰, 충전기 빼면서 탄소중립?

#명분부터 잘못됐다

#탄소는 안 줄고 애플 지갑만 불려  


2009년 '아이폰3GS'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아이폰만 고집하며 나름 '애플팬'을 자처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아이폰X'부터 시작된 노치 디자인이 싫어 '아이폰8 플러스'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금방 없어질 줄 알았는데 '아이폰12'가 나올 때까지 사라지긴 커녕 크기조차 줄지 않고 있다.


만 3년을 버텼으나 배터리 성능이 시원찮아지면서 아이폰12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졌다. 다행히 아이폰12는 그동안 나온 모델 중 가장 애정했던 '아이폰5'와 꼭 닮은 모습이다. 이 디자인이라면 노치에 눈을 감아줄 차례인가 싶다.


아이폰12 /사진 = 애플 제공


120Hz 주사율을 지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아직 '안본 눈'이니 이해하기로 했다. 옆집 폴더블폰이 탐나지만 사진 4만5000장이 저장된 아이클라우드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맥북, 아이맥,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워치까지 우리 '애플 패밀리'의 가장인 아이폰을 저버릴 수가 없다.


이미 애플에 감금된 신세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환경보호를 빌미로 충전기와 이어폰을 빼버린 애플에 10년 넘게 아이폰을 써 온 팬으로서 분노가 느껴졌다.


친환경 기업은 맞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애플의 아이폰12 공개 이벤트에서 리사 잭슨 애플 환경, 정책 및 사회적 이니셔티브 부사장은 애플파크 옥상에 올라가 애플의 탄소중립 전략을 소개했다.


우주선처럼 생긴 애플파크는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것을 목표로 6만5000㎡의 태양전지판으로 사옥 옥상을 덮어놨다. 전기가 많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변에 바이오연료를 이용한 저탄소 발전소에서 추가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애플 본사 '애플파크' 지붕에 설치된 태양전지판  / 사진 = 애플


2014년 이래 모든 애플의 데이터센터는 100% 재생 가능 에너지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 2018년에는 전 세계 43개국에 있는 리테일 매장과 사무실까지 모두 100% 재생 에너지 전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또 협력업체들도 100% 청정 에너지로 애플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제조 공급 체인과 모든 제품 생애주기를 포함해 판매되는 모든 애플 기기의 소재 선정과 부품 제조, 조립, 배송, 사용, 충전, 소재 재활용까지 100%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고 배워야 할 자세다. 다만 이런 그동안의 노력들을 고작 제품 패키지에서 충전기와 이어폰을 빼기 위한 구실로 이용한 건 자신이 쌓은 '친환경 기업'이란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린 격이다.


저탄소? 결국은 애플만 좋은 일

/ 사진 = 남도영 기자


잭슨 부사장에 따르면 라이트닝 이어폰을 가진 소비자는 7억명이 넘고, 많은 사용자가 에어팟 등 무선 이어폰으로 옮겨가고 있다. 또 전 세계엔 20억개가 넘는 애플 전원 어댑터가 있다. 타 제조사 어댑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이어폰과 어댑터가 세상에 너무 많으니 이제부터 안준다는 얘기다. 다음엔 이미 많이 팔린 아이폰도 넣지 말고 빈박스에 공기만 담아 팔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차라리 아이폰12에서 독자 규격인 라이트닝 단자를 범용인 USB-C 단자로만 바꿨어도 아이폰과 다른 기기를 충전하기 위해 케이블을 여러개 사야하는 부담과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아이폰12 제품 패키지 / 사진 = 애플


아이폰 패키지가 작아져 물류 체인에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애플의 설명도 웃음거리다. 온갖 액세서리를 다 따로 사게 만들어 놓고는 아이폰만 두고 도로에서 매년 45만대의 차가 줄어드는 수준으로 탄소가 절감된다며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 줄어든 차량은 새로 나온 맥세이프와 신형 어댑터, 에어팟을 배송하러 다시 도로로 나와야 할 판이다.


기존 아이폰 사용자는 쓰던 충전기와 이어폰을 쓰면 될까? 그것도 아니다. 이번 아이폰 패키지에 들어간 라이트닝 케이블은 'USB-C' 타입이다. 집에 있던 일반 USB 어댑터에는 끼울 수도 없다. 이어폰은 생각보다 수명이 길지 않다. 지금까지 경험상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 쯤이면 하얗던 이어폰 줄이 회색으로 변하고 슬슬 피복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유능한 액세서리 장사꾼


아이폰7부터 오디오 단자가 사라지면서 유선 이어폰을 꼽기 위해선 젠더가 필요해졌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애플이 이어폰과 충전기를 뺀 건 원가절감과 액세서리 장사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2016년 '아이폰7'에서 이어폰 잭을 없애버린 애플의 장사 스킬을 익히 알고 있다.


그동안 집에 굴러다니던 이어폰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든 애플은 '에어팟'을 내놓으며 사용자들을 반강제로 무선으로 이주시켰다. 덕분에 에어팟은 연간 조단위(한화 기준) 매출을 올리며 애플의 효자 상품이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충전기를 빼면서 '맥세이프'라는 물건을 슬쩍 내놨다. 아이폰12 후면에 자석으로 착 달라붙는 충전기다. 충전을 하지 않을 땐 가죽 지갑도 붙일 수 있다. 처음 봤을 땐 꼭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애플페이가 지원되지 않는 한국 사정상 교통카드나 신용카드 하나쯤 붙이고 다니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 = 애플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이를 위해선 맥세이프 충전기 5만5000원, 케이스 5만9000원, USB-C 전원 어댑터 2만5000원, 지갑 7만5000원 등 총 21만4000원이 든다. 충전할 때마다 지갑을 떼놓아야 한다거나, 지갑이 제자리에 잘 붙어있지 않아 주머니에 넣을 때 빠진다거나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가격부터 애플의 장삿속에 분노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이폰12는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다. 내년부터는 다른 제조사들도 하나 둘 씩 이어폰과 충전기를 뺄 가능성이 크다. 이게 과연 자랑스러워 할 일인가.


리사 잭슨 애플 환경, 정책 및 사회적 이니셔티브 부사장 /사진 = 유튜브 캡처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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