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혁신] (18)
지난해 10월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부부처들은 앞다퉈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는 '탄소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기술혁신을 통한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실현'을 견인하기 위해 10대 핵심기술 개발 전략을 제시했으며, 각 부처는 관련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탄소감축 효과가 큰 혁신적인 기초·원천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탄소감축 및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도전적 원천기술을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된다.
과기정통부는 탄소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에서 제시된 10대 핵심기술과 기술혁신 목표를 바탕으로 중장기 집중지원이 필요한 혁신적인 기초·원천기술 선별 작업을 진행하며, '초고성능 달성'과 '차세대 원천기술 개발'이라는 투트랙 방식으로 접근할 방침이다.
우선 10대 핵심기술 중 하나인 '디지털화' 분야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 20%를 저감하고 2040년까지 인공지능(AI) 기반 차세대 계통운영시스템을 적용한다는 두가지 목표를 설정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디지털화 기술 분야 만큼은 정보통신기술(ICT)의 특성을 살려 타 핵심기술 분야 개발을 위한 기본적 인프라 기술이자 융복합 기술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ICT를 제외한 9대 핵심기술에 공통적으로 ICT를 활용하는 융합연구도 활발히 이뤄져야 에너지 저감이나 효율화 추진에 기여할 수 있다. 제조 분야에서는 공장자동화 또는 신공정 관련 기술 개발 시 디지털 기술의 강점을 살린다면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면서 신산업 창출의 기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통부는 산학연 컨소시엄 형태의 독립된 사업단을 구축해 기술개발을 수행할 예정이며, 오는 2023년 착수를 목표로 올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사업'의 기획을 위해 탄소중립 혁신기술에 대한 공개 수요조사도 실시한다고 밝혔다.
다만 공개 기술수요조사 실시에 앞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기술개발의 큰 틀을 우선 제시하고, 주요 개발 목표간의 역학 관계와 해결 방안을 체계적으로 수립한 후 기술수요조사를 통해 각 분야에 걸친 전문가들의 식견과 지식을 모아보는 접근법이 좀더 유효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4월26일에는 18개 연구기관들이 모여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연구기관 비전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탄소중립 선언 이후 연구기관장들이 한자리에서 뜻을 모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랑스럽게 홍보를 하고 있다. 물론 여러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매우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본다.
단지 각 연구기관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를 단순 나열식으로 종합해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모습으로 비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연구기관별 핵심 역량을 살펴보고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할 분야 또는 연구기관 간 협업을 통한 기술 패키징 또는 융합연구를 추진함으로써 시행착오와 중복 연구를 최소화시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연구기관간의 기술개발 협업도 중요하지만,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산업계와의 협업 연구가 더욱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실험실에서의 기술개발 결과를 이용해 테스트베드 구축이나 실증사업을 추진한다면 기술 개발 결과 검증과 현장 적용을 조기에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협력연구에 참여하는 기업에게는 탄소세를 절감시켜 주는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서비스 제공이나 연구 결과물에 대한 실용화 시 정부에서는 규제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참여 동기 유발을 위해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자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에서는 부처별로 독자적인 탄소중립 실현 계획을 추진하기 보다는 콘트롤타워, 예를 들면 5월 출범할 탄소중립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정부부처들과의 협업을 통한 기획과 기술개발 추진이 이뤄지는 쪽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중복연구도 피하면서 '2050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대명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배문식 초빙연구원은 통신수요예측 및 네트워크 설계 등의 연구를 시작으로 ETRI에서 35년 이상 근무하면서 연구기획 및 기술사업화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중국 북경연구센터장직을 약 7년간 수행하면서 ICT 글로벌사업화 경험을 쌓기도 했으며, 2019년 사업화부문장 직을 마지막으로 ETRI를 퇴임한 후 현재는 초빙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