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크M May 28. 2021

기후변화와 위험사회, 통섭적 시각으로 바라보자

[탄소중립과 혁신] (24)

송재령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처 선임연구원


도넬라 H. 메도즈 '성장의 한계'


1972년 3월, 미국의 환경과학을 선도한 과학자이자 저술가, 시스템 분석가인 도넬라 H. 메도즈는 '성장의 한계'를 통해 세계 인구증가,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으로 21세기는 '위험'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통상적인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쟁점 관리(issue management)'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에 노출이 된다면, 적절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적극 대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사리 위기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기후위기를 말하고 있다.


'위험'은 사전적인 의미로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재해와 안전사고 같은 것들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그저 자연적인 현상, 심지어 가짜라고 말한다. 현재의 위험이 그저 매스미디어에 의해 생산과 재생산을 거치며 우리에게 무차별적으로 부풀려진 걸까?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주류 학계에서는 위험이 지식 세계의 발달과 비자발적인 위험의 등장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한다. 지식은 불가피하게 일정한 '앎'을 제공하고 그 앎은 다시 또 다른 문제의 단초가 돼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킨다. 결국 하나의 문제가 새로운 문제를 낳는 회귀적 속성을 지녔다는 이야기다. 하나의 학문이 여러 세부 영역으로 쪼개짐에 따라 지식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모르고 살았던 위험에 대해 자세히 다루게 된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은 누구나 갖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특히 2020년 다보스포럼은 이를 크게 주목했다. 포럼은 향후 10년 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으로 ▲급격한 기후변화 ▲기후변화의 대응 실패 ▲인간이 초래한 환경문제 ▲디지털 권력의 집중화 ▲디지털 불평등 ▲사이버 보안사고 등을 꼽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세계에 기후 위험이 내재되고 있으며 향후 글로벌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리하르트 뮌히는 우리가 재해, 부조리, 고통 및 비합리성을 막기 위해 세상에 개입하는 순간 새로운 재해, 부조리, 고통과 비합리성이 계속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2015년 프랑스에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되자 기후변화에 최상책이라며 축하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는 등 예기치 않은 위험도 발생했다. 이와는 별개로 파리협정 그 자체는 구속력이 없는 자발적 감축 목표(INDC)였다. 이것을 상기해 볼 때, 이 '자발적'이라는 용어로 인해 내재적인 위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95개국의 합의로 역사적인 파리 협정이 성사되자 환호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각국 정상들 / 사진=위키피디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기후변화로 촉발될 위험들은 즉각적인 행동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중 의식에서 쇠퇴하지 않을 쟁점이며, 나날이 강력한 글로벌 흐름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글로벌 사회에서 위험을 필수적으로 수반하고 있음에도 이를 단순한 위험 현상만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즉, 기후변화는 글로벌 사회의 충분히 모든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사안이기 때문에 위험사회에 대한 현대 진단으로 논의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시급해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한 더 포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위기로써 기후변화 위험을 고도로 구조화된 것으로, 또한 무작위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인류의 산업화 과정 속에서 발생한 내재적 결함으로 인식해야 한다. 울리히 벡은 시대를 진단하는 개념을 환경과 생태를 넘어 글로벌 사회의 총체적 구조에서 분석했다.


위험사회는 정치적인 논의를 거쳐 선택되거나 거절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은 독립적이고, 결과를 알 수 없으며 위험에 둔감한 근대화 과정 자체의 결과물이다. … 사람들과 제도의 생각과 행동에는 산업사회의 당연한 것들(합의된 진보관, 생태적 결과와 위협, 통제의 낙관성)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위험사회의 상황구조가 생성된다.  


다시 논의의 초점을 기후변화로 맞춰 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후변화는 정치맥락이 아닌 위험에 노출된 개인에서부터 국제기구까지 그 위험 상황을 바로 알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후변화협약은 그 결의문과는 달리 일방적이고 하향식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이다. 물론 UN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기후행동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이런 커뮤니케이션 구조로는 우리가 닥친 위험을 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둘째, 기후변화는 '진보적' 산업사회의 발전상황 속에서 그동안 은폐되었던 부가적 결과물 혹은 근대화 위험으로 인해 우리와 대결하게 됐다. 우리는 자연 생태계를 글로벌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에너지 동력원으로 엄청난 착취를 했다. 그로 인해 부정적 결과들이 위험으로 발전하면서 다시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위험의 일상화와 세계적 평준화인 셈이다.


울리히 벡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위험과 연관된 사안에서 과학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시도 역시 그것을 활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글로벌 위험을 초래한 기후변화는 자연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다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위험은 각 전문 영역에서의 조밀한 경쟁 관계를 만들기에 파편화되고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위험의 재생산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후변화 문제 해결 위한 새로운 공론의 장


글로벌 정치에서 위험은 한 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과도한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돼 해수면이 높아지는 등 이른바 '초국적 위험'이 점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협력, 즉 국가들 간 다자협력이 중요하게 된다.


명백히 탈영토적 문제인 기후변화는 국가의 경계 안에서 글로벌 문제와 정의(justice)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글로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성장으로 이미 국경을 초월한 위험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므로 탈영토적 문제들은 영토국가를 넘어 글로벌 시민들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확장해 기능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위험공동체'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문제에 대한 논의를 국가 수준 이상으로, 즉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려 이익의 수혜뿐 아니라 그것에 무한히 노출된 시민들의 합치된 정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로 촉발된 위험으로 글로벌 '민주공동체'(이것은 다분히 하위 정치적인 면모를 띠는 것이다)를 형성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글로벌 공론의 장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실증연구뿐 아니라 비판연구도 과감하게 다뤄야 함은 필수적이다. 즉,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학문을 하나로 묶는 통섭적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Who is...> 송재령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처 선임연구원


송재령 선임연구원은 기후변화,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포함하는 주제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수준의 정책을 제안하고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국제협력팀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국제과학기술국 및 녹색기술센터에서 국제적 수준에서의 기후변화 대응 R&D 및 혁신 협력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혁신가들의 놀이터, 테크M에서 관련 정보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한정판 굿즈 성지로 거듭난 11번가의 남다른 행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