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축구, 저기도 축구, 또 저기도 축구
#같은 시각, 태권도-체조-역도 경기는 외면당했다
#다른 방송사는 몰라도 'KBS'는 조금 달랐으면...
"3사가 똑같은 방송만 하네...다른 거 보고 싶은 사람은 생각도 안해"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자주 TV 편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셨다. 특히 주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릴때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포츠 중계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하셨던 아버지에게 월드컵은 TV와 멀어지게 만드는 이벤트이지 않았을까...
수십년전부터 이어진 이런 '관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5일 도쿄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한국과 루마니아의 경기가 열리자 KBS와 MBC, SBS는 모두 같은 경기를 중계방송했다. 올림픽이니, 현지 영상을 받아서 중계하기 때문에 당연히 나오는 화면도 똑같다. 해설위원과 캐스터만 달랐다.
방통위 '순차편성' 권고에도...지상파3사는 변하지 않았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중복편성'을 하지 말라고 권고해도 소용없다. 방통위는 올림픽 개막 전부터 개막식, 폐막식, 한국 대표팀이 출전하는 결승전 등만 예외로 하고 다른 경기는 순차편성을 해달라고 방송사들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규제기관의 '령'도 서지 않는다.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경기를 중계하고 싶은 방송사의 마음은 이해한다. 시청률도 중요하고, 이미 판매된 광고도 있을 것이고...방송사의 사정이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올림픽,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한번쯤 돌아봤으면 하는 생각은 너무 감상적인 것일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루마니아와 경기를 펼치고 있던 그 순간, 대한민국 태권도의 간판 이대훈 선수도 경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메달이 걸린 동메달 결정전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 기계체조의 전설 여홍철의 딸로 잘 알려진 여서정 선수와 이윤서 선수가 출전하는 기계체조 예선전도 있었다. 1kg 차이로 4위에 그친 역도 한명목 선수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다양성도 '수신료의 가치' 아니던가...
여기도 축구, 저기도 축구, 또 축구...어떤 채널을 가도 축구만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근 벌어진 수신료 논란이 오버랩됐다. 다른 방송사는 몰라도 수신료까지 받는 KBS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 등 공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수신료의 가치' 아닐까.
KBS가 이번 올림픽에서 축구 중계 대신 태권도나 역도, 체조 경기 중계를 선택했다면, 아니면 축구 중계 도중 잠시 우리 선수들이 나오는 시간만이라도 그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그런 모습이 진짜 공영방송 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KBS 수신료 인상 추진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수신료 덕분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남은 올림픽 기간, 3사가 동일한 경기를 동일한 화면으로 중계하는 모습을 여러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할 것 같다.
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