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는 우리나라 MMORPG 시장을 만들어낸 게임회사다. '리니지'를 시작으로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까지...PC 온라인게임 시절부터 'MMORPG=엔씨소프트'라는 공식을 증명해왔다. 다른 게임사들도 MMORPG를 개발했지만, 엔씨소프트만큼의 흥행을 일궈내진 못했다.
모바일게임으로 시장이 전환된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리니지M과 리니지2M이 모바일게임 시장을 평정했다. 업계에서는 흔히 '엔씨니까' '그래도 엔씨인데'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만큼 엔씨소프트가 주는 무게감은 게임업계에서 남달랐다.
엔씨소프트가 신작 MMORPG를 출시할때마다 엔씨소프트 주가는 크게 뛰었다. '아이온'을 내놓을때도, 블레이드앤소울을 내놓을때도, 리니지 모바일게임을 내놓을때도...엔씨소프트의 신작출시는 곧 주가 상승이라는 얘기는 마치 '공식'과도 같았다.
그런데, 2008년 아이온 출시때부터 무려 13년을 이어왔던 공식이 이번에 깨졌다. 그것도 리니지 이후 첫번째 넘버링 타이틀임을 내세웠던 '블레이드앤소울2'가 무너졌다. '명가' 엔씨소프트의 자존심에도 큰 생채기가 났다.
여러 분석들이 나온다. '오딘'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점, 과도한 과금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높았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올 상반기 출시된 '트릭스터M'에 대한 혹평이 그 조짐이었다. 당시에도 게이머들은 리니지류 과금모델에 대해 혹평을 날렸다.
그래도 아마 엔씨소프트는 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에도 엔씨소프트 게임에 대해 그런 비판들이 많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럼에도 엔씨소프트 게임을 선택했다. 다른 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비판은 받겠지만, 그럼에도 게이머들이 '블소2'를 선택해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매출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일테다. 그 달콤함이 독약일줄은 몰랐을 것이다. '블소2'가 출시된 날, 게임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유튜브를 들어가봤다. 게임에 대한 리뷰가 올라와야 할 시점인데, 유튜브에는 다른 콘텐츠들이 즐비했다. '블소2'의 게임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금모델을 먼저 살펴보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역시 엔씨소프트가 만들면 다르다'라는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이젠, '역시, 엔씨소프트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이 나와버렸다. 그리고 엔씨소프트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용자들에게 호되게 매를 맞은 엔씨소프트는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많이 비판을 받은 '영기 시스템'부터 수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엔씨소프트가 이처럼 빠르게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움직였던 적이 있나 싶다. 그만큼 회사에서도 심각하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블소2'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과금모델 전면 재검토를 위한 서비스 잠정 중단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충격적인 처방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게이머들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특히 과금체계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W를 봐야 한다. 연내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출격하는 '리니지W'에도 '블소2'와 같은 안일한 대응이 나와서는 안된다. 이미 이용자들이 엔씨표 과금모델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다면, 이번엔 확실히 눈으로 확인했다.
'리니지W'는 김택진 대표가 '마지막 리니지'라는 심정으로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했다. 전세계 인들이 한 서버에서 펼치는 전투,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를 위한 실시간 통역 시스템 등 우수한 기술력이 모두 담길 '리니지W'다. 그런 게임이 과금 때문에 몰락해서야 되겠나.
지금이야 게이머들이 과금으로 비난을 가하고 있지만, 엔씨소프트가 우리나라 MMORPG 시장을 선도했다는 것에 이견을 내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젠 그 저력을 다시 보여줄때다. 엔씨소프트가 검증된(?) 과금모델이 아닌 새로운, 엔씨소프트라는 이름에 걸맞는 과금모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누구나 알고도 실수를 한다. 과금에 대한 비난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 과금모델 그대로 '블소2'를 출시한 것은 실수다. 한번은 실수지만, 두번은 아니다.
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