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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Sep 28. 2021

D.P.와 강철부대 사이, 그 어딘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문장을 가장 많이 하는 상황은 언제일까? 또 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성별은 누구일까? 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직업군은 어디일까? 다들 어렴풋이 짐작은 하겠지만 아마 확실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나도 40대라서 '라떼는 말이야'를 꽤 사용하는 것 같아. 뭐 그래서 내 부캐가 '라떼워킹맘'이 됐겠지만 말이야. 일단 통계가 없으니 내 경험을 이야기 해줄게. 내 주변에서 '라떼'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상황과 사람은, 군대를 다녀온 40대 이상의 남자야. 


뭐 매일 집에서 보는 남편만 봐도 알 수 있지. 군대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는 뉴스를 같이 봤을때, 남편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어. 나는 국방부가 북한 간첩을 풀어주는 중대 잘못을 저지른 줄 알았다니까. 엄청 흥분하면서 "요즘 군대 진짜 좋아졌다"고 혀를 끌끌 차더라고. 원래 어떤 일에도 잘 흥분하지 않던 남편이 왜 저렇게까지 반응을 하는 건지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


여자들은 군대 관련 콘텐츠를 보면서 군대를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잖아. 나는 세가지 군대 콘텐츠를 통해 군대라는 조작과 문화 그리고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어. 그리고 백마디의 말보다, 잘만든 콘텐츠 하나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회를 통합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느꼈어. 


여자들의 첫 군대 경험은 예능 '진짜사나이'


사실 여자들이 군대를 직접 경험할 일은 거의 없잖아. 남자친구나 오빠, 남동생, 아빠, 남자 사람 친구(남사친)에게 어깨 너머 듣는 이야기가 다였겠지. 나도 그랬고 말이야. 그나마 나는 상하 복종 관계를 다양하게 경험한 여자이긴 해. 대학교 시절 학생회 소속이었는데 이 집단도 상하 복종이 강하거든. 게다가 기자 생활을 할 때도, '라떼'는 선배가 욕도 하고, 인격 모독하는 이야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등 간접 경험(?)을 할 일이 많았어. 

연예인들이 군부대를 찾아 군인들의 훈련과 일상을 직접 체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진짜사나이 촬영 현장/사진=MBC 공식 홈페이지

내가 이것 때문에 기자 생활 초반에 남사친들을 만나서 하소연을 할 때마다 그들이 나한테 해준 말은 "뭐 그정도 가지고 그러냐"였어. 내가 얼마나 화가 났겠어. 아니 별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육두문자를 쓰면서 욕을 해대니 얼마나 억울해. 그런데도 남사친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좀 '퐈'가 나더라고. 


그리고 군대 체험(?) 예능인 '진짜사나이'가 방영이 됐지. 사실 그 예능이 군대 생활을 모두 대변해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한 정도의 현실이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뭐 저정도 힘든 것 가지고 내가 육두문자로 욕 들은 것을 무시했냐'고 속으로 남사친들을 막 욕했었어.


게다가 내 남사친 중 한명이 해병대를 나왔는데, 너무 자부심이 센거야. 가끔은, 정말 듣기 싫을 정도였어.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저정도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 매번 이야기를 하면 귀를 막고 싶었지만 뭐, 어쩌겠어. 들어줘야지.


강철부대를 보며 '해병대 부심'을 이해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술자리에서 남사친들이 군대 이야기 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군대 콘텐츠는 참 좋아해. 뭔 취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군대 콘텐츠가 그렇게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강철부대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정말 재미있게 봤어.


물론 강철부대도 군대의 모습을 모두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적어도 해병대 출신인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가졌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훈련을, 군대 기간 내내 해야 했던 거잖아.

/사진=공식 홈페이지

사실 '진짜사나이'의 훈련 과정을 보면서 '저 정도의 육체적 고통은 나도 겪어 봤는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강철부대를 보니 군대에서는 진짜 사람이 할 수 없는 훈련들을, 정신력으로 해내고 있더라고. 특수부대이기에 더 힘들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행군'만큼은 모든 군대가 다 하는 훈련이라더라. 정말 그거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더라.


강철부대를 보고 해병대 친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어. 그가 왜 자부심을 가지는지, 그리고 군대 이야기를 왜 그렇게 자주 하는지를 말이야. 물론 가끔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 친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수 있게 됐지.


D.P.를 통해 완성된 군대 간접 체험


최근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모은 오리지널 드라마 'D.P.'는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다 준 군대 콘텐츠야. 지금까지 군대를 간접경험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부를 한꺼번에 무너트렸지. 눈뜨고 볼 수도 없었고, 숨을 제대로 쉬고 볼 수가 없었어. 너무나 화났고, 너무나 분노했고, 너무나 억울했어.

 

내용 자체는 사실 재미있었지. 코믹 요소도 충분했고. 하지만 중심을 잡고 있는 주제와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어. 아니,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2년 반을 있을 수 있는 거야? 지금은 나아졌다지만, 40대 초반인 내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군대는 D.P.에서 나오는 군대와 비슷하거나 더 심했을 것 아니야. 소름이 돋더라고. 


폭력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어. 사실 나 역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언어폭력도 당했고,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이 가하는 신체적인 폭력을 자주 목격했거든. 내가 가장 화가 나고 열이 받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걸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집단이었다는 사실이야. 게다가 아무리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단지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따라야 살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너무 무서웠어. 


특히 D.P.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조일병'은 군대에서는 철저하게 피해자였잖아. 그런데 결국 그는 가해자가 되고 말았어. 군대라는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그냥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그당시 군대 문화인 거잖아. 


각색? 오히려 현실이 더 잔인했다


사실 나는 극적인 연출을 위한 '논픽션'이 아닐가 생각했어. 단지 일병이라는 이유로, 힘이 세지 않다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잖아. 사회에서 저정도까지 상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이 역시 각색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사진=넷플릭스

그런데 D.P.를 함께 시청하던 신랑이 "그래도 많이 순화했네"라고 하는거야. 너무 놀랐어. 신랑이 군대에 있을 때는 냉동만두 30개를 냉동인 채로 먹이는 선임도 있었다더라고. 그게 훈련소를 마치고 온 '이병 신고식'이었다는 거야. D.P.가 극적인 연출이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어.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적어도 나는, 불합리한 세상을 이미 한번 경험하고 사회에 나온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야. 과연 나라면 D.P. 조일병과 같은 상황에서 과연 제정신일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어.


강철부대와 D.P. 사이 어딘가


사실은 상식이 통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승리하지만, 패배자들도 조명해주는 강철부대와 진짜사나이 사이 어딘가에 우리 사회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조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국은 노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그런 사회 말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강철부대와 D.P. 사이 그 어딘가에, 결국은 우리 사회가 있는 것 같아. 감동적인 뉴스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보는 현실은 '무전 유죄, 유전 무죄'이기도 하고, 글을 읽기도 힘든 뉴스들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잖아.


하나 더, 앞으로는 군대 생활을 무사하게 잘 마친 남자들을 조금 더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부조리한 현실을 다 견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아도 될 듯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콘텐츠가 가진 통합의 힘이 아닐까.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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