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정성을 다해 만든 표지부터 손에 전해지는 적당한 무게감, 사각사각 기분 좋게 넘어가는 종이의 질감까지. 꼭 읽지 않아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책을 소유하는 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책장은 이미 꾸역꾸역 채워져있고, 새로 산 책들은 집 안 여기저기를 뒹굴거린다. 그래서 '아이패드 미니'를 샀다.
집에는 '아이패드 프로'가 있었다. 이 녀석은 한 손에 들기 너무 커서 누워서 뭘 읽기엔 좋지 않다. 스마트폰으로는 기사는 읽지만 책은 읽지 않는다. 글씨가 너무 작고 문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오래 읽기가 어렵다.
아이패드 미니는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이 어디쯤 있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한 손에는 쏙 들어 오고, 큰 태블릿처럼 넓직하진 않지만 스마트폰보다는 영화나 게임을 하기에 화면이 시원하다. 무게도 적당하고 배터리도 넉넉하다.
이전 세대 아이패드 미니는 크기는 비슷하지만 물리 홈버튼이 있어 베젤이 크다. 이번에 새로 산 아이패드 미니 6세대는 홈버튼이 없어져 온전히 스크린에 몰입할 수 있다. 화면 크기는 전세대 7.9인치보다 큰 8.3인치지만, 베젤 두께가 줄어 전체 크기는 유지했다.
개인적으로 아이패드 미니는 책 보기에 가장 좋은 디바이스다. 일단 크기가 단행본이나 만화책과 거의 비슷하다. 비율이 눈에 익숙한 만큼 읽기가 편하다. 특히 화면도 선명해서 만화책을 보기에 너무 좋다. 애가 크면서 만화책 숨길 곳이 없어지고 있는데, 이 기회에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여태까지 책 좀 읽어보겠다고 여러 기기를 사봤다. 교보문고 '샘(sam)'이나 리디북스의 '리디페이퍼' 등의 전자잉크 기반의 e북 리더기를 여러 번 사서 나름 잘 썼다. 전자잉크 제품은 일단 눈이 편하고, 가볍고, 배터리도 오래가서 좋다. 하지만 사양이 낮은 편이라 동작속도가 늦다는 점이 가장 단점이었다. 책을 읽는 것 외에 인터넷 서핑 같은 '딴짓'은 전혀 못한다는 점도 좀 아쉽다.
아이패드 미니는 이런 단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이패드 미니 6세대는 '아이폰13' 시리즈에도 들어간 최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15 바이오닉'을 탑재했다. 이 크기에 이 성능의 태블릿은 아이패드 미니가 거의 유일하다. 고사양의 최신 게임도 발열 스트레스 없이 쌩쌩 돌아간다. 아마도 향후 2~3년은 사양이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무려 2266x1488 해상도의 '리퀴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작은 글씨도 또렷하게 보여준다. 반사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밝기만 잘 조절하면 눈이 아플 정도는 아니다. 다만 120Hz 주사율을 지원하지 않는 점은 좀 아쉽다. 아무래도 요새 120Hz 주사율 제품이 많다보니 눈이 높아졌는지 스크롤시 화면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좀 더 칭찬을 하지만, 충전단자가 'USB-C' 타입인 점도 좋다. 전 세대는 아이폰과 같은 '라이트닝' 방식이었다. USB-C로 바뀐 덕에 더 이상 충전 케이블을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 없이 맥북을 충전하던 케이블을 곧바로 꼽으면 된다. 최근 4년 전에 나온 '아이폰X'를 USB-C 타입으로 개조한 중고품 입찰가가 1억원 넘게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라이트닝 충전 방식이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보여준다.
아이패드 미니를 제대로 즐기려면 셀룰러 모델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어떤 아이패드보다 미니는 '이동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 예약판매에서도 셀룰러 모델부터 '순삭'됐다. 어쩔 수 없이 와이파이 모델을 샀는 데, 아직도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단점은 역시 가격이다. 애플의 고가정책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이번 가격 옵션은 애플팬 입장에서도 좀 괴로웠다. 와이파이 기준으로 64GB 모델이 64만9000원, 256GB 모델이 83만9000원이다. 가격 차이가 큰데, 개인적으로 모바일 기기 용량의 적정선으로 생각하는 128GB 모델은 아예 없어 선택이 어렵다. 셀룰러로 가면 다시 19만원이 올라간다. 256GB 셀룰러 모델은 무려 102만9000원이다. 더 이상 '미니멀' 하지 않은 가격이다.
아이패드 미니를 사자마자 그동안 밀린 만화책부터 엄청난 속도로 해치우고, 편하게 누워 에세이나 소설을 보다 잠들고 있다. 이번 신제품은 '애플펜슬 2세대'도 지원해 책을 읽다 뭔가 생각나면 노트에 사부작사부작 써보기도 한다.
가격 때문에 고심하다가 결국 가장 저렴한 64GB 와이파이 모델을 택했다. 용량도 좀 아쉽고, 셀룰러면 더 좋았겐 단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크기는 똑같다. 아이패드 미니6의 핵심은 크기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이 어딘가 있는 그 크기.
작지도 크지도 않아 어디 들고 다녀도 부담없고, 성능은 앞으로 몇 년을 쓰기에 부족함 없이 파워풀한, 이런 태블릿은 아이패드 미니가 유일하고, 그래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