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스닥 대장주 애플 시가총액은 지난 8일(현지시간) 기준 2조8720억달러(약 3375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 3조달러 달성을 향해 가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을 위시한 강력한 모바일 생태계와 더불어 가상현실(VR), 애플카 등의 차세대 먹거리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오미크론' 장세를 뚫고 연일 주가가 상승 중이다.
반면 코스닥 대장주 삼성전자는 '10만전자'를 기대하던 연초와 달리 주가 흐름이 연내 지지부진하며 '7만전자'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반도체 섹터가 강세를 보이며 주가가 회복세에 있으나, 여전히 연초 높았던 기대치를 충족하기엔 쉽지 않은 모습이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반도체, TV, 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왜 애플과 삼성의 주가 흐름은 이렇게 차이가 날까.
나스닥과 코스닥에 상장된 두 기업의 주가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주가의 흐름만 놓고 봤을 때 애플과 삼성의 차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에서 갈린다는 지적이다.
애플은 독자 칩셋, 운영체제(OS), 플랫폼, 하드웨어 등을 완벽히 수직계열화하고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더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런 탄탄한 생태계 덕분에 VR, 자율차 등 애플이 손대는 사업들 모두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 받고 있다.
반면 제조 쪽으로 기울어져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기업을 비롯한 경쟁사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그동안 추구하던 '초격차' 전략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며 점차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대규모 M&A 등이 뚝 끊기며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첨단 기술 분야의 새먹거리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 이후 "냉혹한 현실을 봤다"며 계속해서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오직 삼성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않고는 더 이상 앞서 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증권가는 최근 이뤄진 삼성전자의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전, 모바일 등 3대 사업의 축을 담당하던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하고, 40대 부사장과 30대 상무를 전진 배치하는 등 '파격' 인사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의 변화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가 발표된 날 삼성전자 주가는 나란히 반등했다. 시특히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등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엔지니어 출신들을 중용하면서 기술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당분간 '안정'을 택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은 이번 파격 인사는 이 부회장의 위기감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기존의 성공에 안주할 수 없고, 인재부터 쇄신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사장단 인사에서 주목할 점은 가전과 모바일 세트 부문을 통합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회사의 첨단기술을 상징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만 '스마트'한 시대는 지났다. 삼성은 가전을 비롯한 집 안의 모든 기기가 인공지능(AI)을 갖추고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을 상징하듯 임원인사에선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등 기반 기술 영역과 폴더블폰, 비스포크 가전 등 혁신 제품 개발에 공을 세운 젊은 인재들이 대거 중용됐다. 이들이 '예비 CEO' 후보군으로 지목된 점을 미뤄봤을 때, 이 부회장은 제조보단 '소프트웨어 파워'가 회사를 이끄는 구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그리는 방향은 애플과 비슷하면서도 내용 면에선 차별점이 있다. 베타적인 태도로 철저히 '자신만의 성'을 쌓은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는 '개방'과 '협업'을 무기로 내세웠다. 이 부회장이 지난 미국 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버라이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경영진을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 같은 방향을 강화하기 위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최근 '오픈소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픈소스의 개방성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줬고, 이를 통해 기술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은 오픈소스 역량을 높이는 것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온디바이스 AI, 홈 IoT, 데이터 보안, 자체 운영체제(OS) 등의 플랫폼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각각 '빅스비(Bixby)', '스마트싱스(SmartThings)', '녹스(Nox)', '타이젠(Tizen)'으로 대표되는 플랫폼은 제품 간의 연결을 강화하고 보다 안전하고 스마트한 사용성을 제공해 타사 제품과 확실한 차별점을 만들 삼성 만의 무기다.
예를 들어 거실에서 "영화 보여줘"라고 말하면 TV가 켜지면서 영화 콘텐츠를 보여주고, 조명은 영화를 보기 좋게 조절되며, 스마트폰은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되는 식이다. 이런 맞춤형 루틴이 음성을 통해 심리스하게 작동하는 것이 삼성이 그리는 '스마트 홈'의 미래다. 애플 역시 '홈팟' 등을 통해 스마트 홈 생태계 구축을 노리고 있지만, 이미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춘 삼성에 비해선 앞서나간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개별 제품에 대해선 '소비자 맞춤형'으로 매력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비스포크' 브랜드는 가전 대부분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마트폰에도 적용돼 '갤럭시 Z 플립3 비스포크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폴더블폰은 삼성의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사용자경험(UX)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가 빛을 발한 사례다. 단순히 하드웨어적으로 접히는 스마트폰만 내놨다면 100%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폴더블폰은 OS와 앱 지원과 더불어 폴더블폰 특유의 UX를 제시하며 위화감 없이 바(bar)형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순조롭게 입문시키고 있다.
이번 인사를 단순히 임원들의 나이가 젊어졌기 때문에 '뉴삼성'식 인사라고 보긴 어렵다.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기술은 더 뚜렷해졌고, 몇몇 부분에선 서서히 승산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이 내년부터 주가의 흐름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이런 기술 분야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기 시작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으로 예상해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