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고초보 Mar 24. 2023

1. 공고에 발령받던 날


**공업고등학교.


2월 초의 어느 날 저녁. 내 이름과 그 옆에 쓰여진 학교 이름을 보는 순간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멎었다. 여기가 어디지? 심장의 불안한 두근거림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성화고.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겪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 곳에 내가 가야 한다. 당장, 2주 후부터.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일찍 재우고 미친듯이 검색을 시작했다.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년에 발행된 가정통신문과 각종 평가계획, 진도표, 수행평가 내용을 모두 꼼꼼히 읽어봤다. 아, 이건 아니야. 고등학교 2학년한테 아임 프롬 코리아를 가르친다고? 나는 이 애들하고 무슨 수업을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수능 출제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바로 작년까지도 고2, 고3들에게 수능특강, 수능완성, 수능 기출 문제들을 풀이했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발령을 확인했기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행정실무사님이 전화를 받아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이 모두 부재중이라며 전화를 기다려달라고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싱크대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설거지를 했다. 덜그럭거리는 그릇 소리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이윽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다시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그래도 학교에 보이는 첫인상이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려 애썼다.


"네, 여보세요."

"*** 선생님이시죠. **공고 교감입니다."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


교감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하더니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 발령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네에, 고맙습니다, 하고 여전히 꾸며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 속에 짜증과 화가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공고에 발령받은 걸 고마워 하라고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처음부터 미친 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계속 있고 싶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겼다. 임지 희망서에 고등학교 발령 희망이라고 써서 냈기 때문에, 90% 이상은 고등학교에 갈 거라고 확신했다. (최근의 교육청은 교사의 임지 희망을 들어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10년간 인문계 고교에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다. 당시 모두가 싫어하던 고3 담임(지금은 많이들 선호한다. 인문계 고교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해보겠다.)도 좋았다. 아이들의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다. 내 아이를 낳은 후 야근을 할 수 없어 고3 담임을 3년 쉬었지만, 이제 학교를 옮기면 고3 담임을 희망한다고 희망원에 써서 내려 했다. 새 학교가 공부를 잘하는 학교라면 잘하는 대로, 못하는 학교라면 못하는 대로 내가 쓰일 곳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2월이 되고 언제 발령이 날지 매일 기다렸다. 머리도 하고 옷도 사고 교재 연구도 하고, 작은 중고 차도 한대 사서 운전 연습도 했다.


그랬는데. 공고라니.

발령을 기다리던 두 달동안 기대했던 내 마음 속 모든 것이 깨져 버린 기분이었다. 설렘에 쓴 내 시간이 아까워 눈물이 났다. 옷들을 다 찢어 버리고 머리도 빡빡 밀어 버리고 싶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 바닥에서 몇 년 차인데 특성화고의 존재도 생각 못하다니. 이럴 거면 중학교에 간다고 할 것을.


교감선생님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내가 교감들 회의에서 선생님을 직접 모셨다, 선생님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가 우리 학교서 다니기 편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이 양반 때문에 내가 팔자에 없던 공고에 가게 된거군. 인내심이 바닥을 향할 때쯤 통화는 끝났다. 설거지가 끝난 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교무부장 선생님이었다. 부장님은 전직원 출근일이 2월 20, 21, 22일이며, 2월 7일에 학교에 한번 방문하여 업무분장 희망원을 쓰라는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공고라 선생님들 다 도망갈까봐 이렇게 친절한건가? 이렇게 모든 것을 꼬아서 생각할 정도로 내 머릿속은 뒤틀려 있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가 2월 7일이 되었다. 신경써서 정장으로 갖추어 입고 학교에 갔다. 다른 전입 선생님들과 함께 뻘쭘하게 앉아 있었더니 교무부장님이 오셔서 업무분장 희망원을 돌렸다. 희망원에는 알 수 없는 학과들, 알 수 없는 부서들이 가득했다. 뭘 알아야 여기를 희망한다고 쓸텐데,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특성화고의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음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나 자신도 인문계 고교를 졸업했고, 인문계 고교에만 근무했으므로.) 다시 신규가 된 것 같았다. 받아든 종이에서는 단순히 몇 학년 담임을 희망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학과의 몇 학년을 희망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예시에는 기계과, 컴퓨터과, 전기과가 순서대로 쓰여 있었다. 고민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예시에 적혀 있는 대로 기계과 2학년, 컴퓨터과 2학년, 전기과 2학년을 순서대로 적어서 냈다. 2학년을 희망한 이유는 단순했다. 망나니 날라리 아이들은 1학년 때 이미 자퇴했을 것 같았고,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3학년 담임은 전문교과 담당이라 이미 내 자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전입교사와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과의 면담 시간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전입교사 한 명 한 명에게 생활근거지와 이전 근무지에 관해 물었다. 대부분 기계나 전기 전공으로 비슷한 공고에서 오신 선생님들이었으나 나와 다른 선생님 한 분만 인문계 고교에서 발령을 받아 왔다. 교장선생님은 내 이전 근무지(**고등학교)에 대해 듣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유, 많이 힘드시겠네. 여기는 그런 학교 아니에요. 마음 많이 내려놓고 오셔야겠네요. 수업 그냥 대충 하셔도 돼요. 아무도 그런 걸로 민원 안 넣으니까."


반쯤 농담조가 섞인 말이었으나 의미는 명확했다. 그 자리의 모두, 심지어 나까지도 웃음이 터졌다. 그 말에 약간은 긴장이 풀렸다. 학교의 수장에게서 이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인정하는 발언을 들으니, 오히려 불안감이 조금 가셨다. 이어 교감선생님께서 발령장을 주셨다. 나는 (사실 **공업고등학교라는 단어를 찢어 버리고 싶었으나 정말 미친 년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서로를 향해 몇 마디씩 의미 없는 칭찬이 이어진 후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 한 시간의 출근이었는데도 마음은 녹초가 되었다. 나는 남은 며칠 간 바쁘게 집안을 대청소하며 전교사 출근일(20일)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전교사 출근일이 되었다.


*


안녕하세요. 공고초보입니다.

저는 공고생활도 초보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려보는 건 더 초보인 사람입니다. 특성화고라는 낯설고 어려운 공간에서 살아보겠다고 고군분투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첫 발령 순간부터 겪은 일들을 소설처럼 써 보려고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는데, 덜컥 되어버렸습니다. 단 한 번도, 인터넷에 제 흔적을 남긴 적이 없는 사람인데(댓글 하나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용기(?)를 낼 정도면, 제 스스로도 3월 한 달이 많이 힘들었던가 보다 싶습니다. 그래도, 글에서라도 풀어내니 후련합니다. 아직 발행하지 못한 더 적나라한 글이 많이 저장되어 있는데, 그 글들이 빛을 못보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래서 사람들이 글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다만, **공고, 기계과나 컴퓨터과 같은, 학교나 학과에 관련된 이름들(특히 앞으로 간혹 나올 학생들의 이름)은 전혀 저희 학교와 관련이 없습니다. 너무 저라는 사람이나 저희 학교가 특정될 것 같아 일부러 학교와 가장 먼 이름들을 생각했어요. 이건 앞으로 나오는 모든 상황에서 그럴 것이구요.

그래도 제가 특성화고에서 근무하는건 사실입니다. 제가 담임하는 아이들이 공업계열인 것도 맞구요. 앞으로 발행될 글들을 보시면, 이 사람 진짜 특성화고 내부자(?)가 맞구나, 하실 겁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공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공감하지 않으시더라도) 종종 댓글 남겨주세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글쓴이 드림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