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훈 Jun 11. 2019

음악 영화.  영화 음악.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Graduate>

영화를 본다. 극장을 나온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추스르고 글로 남긴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 절차들을 거쳐 기록되겠지만 ‘음악’의 장르에 속한, 다시 말해서 사운드 트랙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영화가 끝나고도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 휘발성이 강한 이미지의 빈틈을 사운드가 절묘하게 메꿈으로써 범작이 걸작이 되기도 한다. 물론 토대가 엉망인 작품에 걸출한 사운드 트랙을 얹는다고 해서 졸작이 걸작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좋은 영화에는 좋은 사운드가 뒤따르곤 한다.



1967년 작인 영화 <졸업>. 태어나기 30년 전의 작품에 손이 갔던 것에는 21살 청년 벤자민의 방황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팔 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영화는 수단이고 영화음악은 도구이다.” 짧고 간결한 이 문장은 영화와 음악 간의 상관관계를 냉정하게 표현하고 있다. 줄곧 이 문장을 믿어왔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영화 안에서 부수적인 존재로 머물러야 하며 영화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수 십, 수 백 편의 작품. 특히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영화 음악은 부수적 존재로 머무르기에는 너무나 뚜렷했고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강렬하고 기괴한 음악은 서사의 흐름을 끊거나 잔잔했던 흐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한 멜로디와 노랫말이 극 중 인물의 심경을 대변하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로큰롤’이고 1)클래식, 포크, 블루스 그리고 재즈에만 머물렀던 1950년대의 미국 영화 음악은 1967년 <졸업>에 삽입된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포크록’(로큰롤이라고 하자.) 이후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포크 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졸업>의 사운드 트랙 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것은 <The sound of silence>가 아닐까. “포스트 사춘기의 분노와 걱정을 표현했다.”는 이 노래는 폴 사이먼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지닌 특유의 어두운 특성과 그 곳의 타일 벽들이 주는 공명감으로부터 기인했다고 한다. 작품의 도입부와 말미에 사용된 이 음악은 이미지의 수미상관이 아니라 감정의 수미상관을 이끌어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벤자민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흘러나오는 이 음악은 영화 말미에 결혼식에서 도망쳐 나온 벤자민과 일레인이 버스 맨 뒷자리에 몸을 싣고 떠나는 투샷에서도 사용되며 불안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투영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좌)와 엔딩(우).



이 작품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이 짓는 미소가 너무나도 안쓰럽다는 것을. 애써 지어보는 미소와 함께 유지되는 침묵이 너무나도 시끄럽다는 것을. 그들이 듣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것이 떠나온 길에도 떠나는 길에도 펼쳐져 있다. 침묵의 소리는 페이드 아웃이 되고 나서도 계속 울려 퍼지며 영화 그 자체가 되었다. 음악은 영화가 돼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던 순간이었다.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는 버스.


          


1) 『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 데이비드 파킨슨. Pg. 1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