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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Jun 17. 2019

작은 숲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자랐나.

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이 소리를 아는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라디오에서 아침 7시 정각이면 경쾌하게 흘러나왔던 이 소리는 SBS 라디오의 개국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숙영의 파워 FM>의 인트로고 나의 기상 알람이었다. (지금은 러브 FM으로 이사 가셨다.) 이 소리가 들리면 우리 집 강아지가 방문을 긁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서 밥 먹으라는 엄마의 우렁차고 매서운 목소리가 방문을 뚫고 귀청을 맴돌곤 했다. 죄송하지만 이때만 해도 나를 강제로 깨워 주시는 이숙영 씨가 너무나도 미웠고 두 눈 뜨고 있기도 힘든 아침에 고막을 때리는 강렬한 사운드도 싫었다. 그러다 간신히 몸을 이끌고 식탁에 앉아 멍하니 저작운동을 하고 있으면 라디오에서는 출근길과 등굣길에 알맞은 경쾌한 신청곡(이를 테면 자자의 ‘버스 안에서’와 같은??)이 나오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아빠는 부스럭대며 신문을 반으로. 또 반으로 접으면서 밥도 먹고 신문도 읽기 위한 최상의 자세를 잡으시고는 했다.


이숙영의 파워 FM.



이 디테일한 아침 일상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면서 막을 내렸고 지금은 라디오도 종이 신문도 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중한 일상들을 일찍이 포기한 것은 아니다. 라디오 청취는 잠들기 전 감성 충전제로,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은 스마트폰으로 접하고 있을 뿐. 새벽녘의 라디오 DJ들이 행여 누군가를 깨울까 조심스럽게 건네는 음악과 사연들은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되고 한 주의 글 감이 되며, 나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슈들은 술상 위의 안주거리가 되고는 한다. 의도치 않게 들었던 아침의 라디오. 의도치 않게 훔쳐본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 무심코 따라 밟았던 것들이 내가 듣는 음악이 되고 글이 됐으며 입 밖으로 내뱉는 것들이 됐다. 두 분의 일상이 나의 어깨 너머를 꾸리고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작은 숲에는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으며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는 사유의 시간도 존재한다. 큰 숲을 탐하느라 이것 저것 기웃댈 때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심어 놓은 것들을 말라 죽지 않게 하는 것만 해도 애를 먹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물을 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은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한다. 영화 한 편 보고 글을 쓰고, 음악 한 곡 듣고 플레이리스트에 담으면서 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지길 바라는 것이 오만함은 아닌지. 내가 보고 듣는 것은 특별하길 바라며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허영과 자만은 아닌지. 사람들에게 각박한 일상 속 찰나의 틈을 선물해주고 싶다던 나의 작은 숲이 본분을 잊고 망각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닌지.


왓챠 플레이 리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숲은 자라고 있다. 아직 조악하고 정제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지만 엄마의 라디오와 아빠의 신문처럼 나의 어깨 너머 있는 작은 숲을 통해 누군가는 또 다른 숲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왓챠에 이런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먼 훗날 나의 자식들이 내 책장에 꽂힌 디비디를 꺼내어 보길 바라는 영화들.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 작명이고 그 미래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 시대에 걸맞은 서사와 관점을 지닌 영화들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도 다양해질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누군가와 그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고 혼자 고독하게 소비하는 것과는 또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누군가 나의 숲에 들어와 디비디를 보려 한다면 기꺼이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숲과 타인의 숲이 이어지고 타인의 숲과 또다른 누군가의 숲이 이어진다면 질 들뢰즈의 말처럼 언젠가 세상이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가 세상이 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이 오늘 본 영화, 오늘 들은 음악, 오늘 쓴 글들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나가면 좋겠다. 당신이 자라온, 가꿔온 숲을 누군가 조용히 찾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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