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전공이 뭣이 중헌디?

일본 IT기업에 문과생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는?

by Teddy

포텐셜 채용이 한국 구직자들에게 낯선 이유 중 하나는 '전공'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하드스킬이 필요한 전기, 기계, 화학, 의료, 건축 같은 분야는 당연히 관련 전공이 중요하다. 전기 회로도 못 읽는 사람을 포텐셜 있다고 앉힐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외 직종들은 전공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컴공과의 전유물에 가까운 IT 쪽이 신졸 레벨에서는 상당히 넓게 열려있는 편이다.


2022년 여름, 일본 현지 취업자들끼리 식사 자리가 있었다. 그날 모인 7명이 우연히도 전부 IT기업 근무자들이었다. 프론트엔드, 백엔드, 클라우드, IT컨설턴트, iOS개발자 등 직종도 다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아무도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 그나마 가까운 게 산업공학과였고, 나머지는 조선해양학과, 호텔경영학과, 사회학과, 심지어 의공학 전공자도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서 현업 수행이 가능한 걸까?


그러자 그들은 공통적으로 답했다.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아는지가 중요하다고.

순간 아차 싶었다. IT 국비교육, 부트캠프, 비전공자 스터디, 유튜브.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기초 스킬을 쌓았고, 해커톤이나 케글 같은 대회로 역량을 증명한 친구들도 있었다.

전공이 IT가 아니었을 뿐, 모두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백민상 씨였다.

전형적인 부산 싸나이인 민상 씨는 조선해양공학 전공으로 한국에서 관련 직종에 성실히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인 여자친구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을 목적으로 2020년 하반기에 무작정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본에서 뭘 해 먹고살지?


조선해양 관련 일자리는 일본에서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어도 거의 못하는 상태. 한국에서는 멀쩡히 직장 다니던 사람이 일본에서는 갑자기 막막한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포기하거나, 한국 본사가 있는 회사를 알아보거나,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상 씨는 다른 길을 찾았다. 바로 IT 쪽으로의 전직이었다.

일본에서는 비전공자라도 IT 취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실제 그렇게 해서 일본에 정착하신 분들을 의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민상 씨는 일본어 공부와 IT관련 온라인 교육 과정과 강의의 기초 과정을 있는 대로 섭렵했다. 그리고는 프런트엔드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국인 현직자들이 운영하는 코딩 스터디에 매주 참여하며 기초 스킬 셋과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갔다.

그 결과 이주한 지 1년도 안 돼 이름 있는 IT 스타트업 기업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조선해양공학 전공자가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변신한 것이다.


"한국이었으면 가능했을까요?"

"솔직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나이도 있고, 비전공자고. 한국은 신입은 신입대로, 경력은 경력대로 전공 보잖아요. 근데 일본은 달랐어요. 포트폴리오 보고, 코딩테스트 보고, 면접에서 기술 이야기하고 다 했는데 전공 얘기는 일절 없더라고요. 일본에서 준비해서 다행이죠 정말."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생각했다.


만약 민상 씨가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조선해양공학 전공으로 계속 그 일을 했겠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일본 이주라는 변수가 생겼을 때, 전공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일본어도 못하고, 전공 관련 일자리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IT라는 문이 열려있었다.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아예 차단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SSAFY 같은 비전공자 IT 교육과정이 있고 많은 수료생들이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공자와의 비교에서는 열위에 서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미 다른 분야 경력이 있는 사람이 IT로 전향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문이 열려있다'. 전공이 없어도 실력을 증명하면 기회를 주는 문화. 학위보다 포트폴리오를, 이력서보다 실제 능력을 보는 시스템.

민상 씨는 그 문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민상 씨뿐 아니라 오늘 만난 7명 모두 자신의 전공을 '버린' 게 아니라 '넘어선' 사람들이었다. 조선해양공학에서 프런트엔드로, 사회학에서 IT컨설턴트로, 산업공학에서 클라우드 엔지니어로.

그리고 그들이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일본의 채용 시스템이 그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살짝 모자라 맥주를 한 캔 더 땄다. 유난히 맥주가 달았다.



*이 창작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저자가 2018년부터 일본 취업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며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조언의 내용과 인사이트는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얻은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학교, 회사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변경하거나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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