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신중함이 낳은 월급에 대한 오해
2019년은 지금 돌이켜봐도 일본취업이 가장 활성화된 시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이벤트가 열렸고, 기업들이 내한했으며, 전국의 대학에서 설명회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대외환경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과 노노재팬 운동으로 반일 감정이 들끓었다. 하반기 예정이었던 글로벌 채용 박람회가 취소되었고, 내가 담당하던 면접회도 존폐 위기에 놓였다.
재미있는 점은 기업과 학생 모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은 한국 학생들이 지금 상황에 일본 근무를 꺼려할까 걱정했고, 학생들은 기업들이 한국인 채용을 망설일까 걱정했다.
상부를 설득한 끝에 소규모 면접회 개최가 결정되었다. 2019년 8월, 총 5개 기업이 참가했고 헤드라이너 기업으로는 당시 일본 넘버 2 자동차 메이커 '닛산자동차'가 참가했다.
주요 대학 캠퍼스 리쿠르팅을 다니며 이공계 졸업 예정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직무 전문성은 문제없었지만 일본어와 일본 근무 의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다가도 이내 발길을 돌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월 급여 22만 엔.
대충 10을 곱해봐도 원화로 세전 220만 원 수준. 당시 한국 최저시급 만근이 175만 원쯤 되던 시기였다. 주변에 현대차나 삼성전자 가는 선배들이 최소 5~6천은 받는다는데, 22만 엔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숫자였다.
나 또한 이런 캠퍼스 리쿠르팅이 처음이었기에 '나름 탑티어라면서 직원 급여에 박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부스를 지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전 세계가 인재 전쟁을 벌이는 시기에, 저런 급여 수준으로 인재 유치가 되는 걸까? 당시 면접회를 공동개최하는 파트너사의 일본 현지 담당자였던 김세라 씨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세라 씨, 닛산 월급 22만 엔 맞아요? 이거 너무 낮은 거 아니에요?"
"아차, 말씀 안 드렸네요. 학찬상, 월 급여는 맞는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네?"
"상여금이 있어요. 대기업은 보통 월급의 5~6개월분을 1년에 두 번 나눠서 줘요. 닛산도 마찬가지고요."
순간 머릿속의 계산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2만 엔 × 12개월 = 264만 엔. 여기에 상여금 5개월분이면... 최소 370만 엔?
"그럼 첫해 연봉이 400만 엔 가까이 되는 거네요?"
"네, 거기에 주택수당이나 각종 복리후생까지 더하면 실제로는 더 받는 거죠. 근데 구인공고에는 절대 그거 안 써요."
순간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었다.
"그걸 안 쓰면 영업이 돼요?"
"저도 그게 참 답답한데 1%라도 틀릴 가능성이 있으면 안 쓰는 게 일본 기업 문화예요. 상여금은 경영 성과에 연동되니까 위기 상황에서 줄어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확실한 월급만 적는 거예요."
의문점이 깨달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상여금의 존재감. 일본인들이나 일본 취업시장에 빠삭한 사람들에게는 기본 상식인데, 외국인에게는 전혀 알 수 없는 정보. 그리고 그 정보의 유무가 "이 회사 패스"와 "이 회사 지원"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다음 캠퍼스 리쿠르팅부터는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했다.
"22만 엔이 다가 아니에요. 상여금 포함하면 첫해 연봉 400만 엔 가까이 돼요. 절대 오해하시면 안 돼요!"
그렇게 열심히 영업한 덕분인지 닛산자동차에서만 총 3명의 합격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나조차 세라 씨에게 전화하지 않았다면 닛산자동차를 그저 "급여 낮은 회사"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쪽 업계에 있는 나도 이런데, 처음 일본 취업을 알아보는 학생들은 오죽할까.
결국 일본 취업 컨설팅이란 자기분석, 이력서 첨삭, 면접 연습만이 다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풀어주고, 숨겨진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정보의 유무가 기회의 차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속 맥주를 집어 들고 벌컥벌컥 몸속으로 주입했다. 유난히도 탄산이 잘 느껴졌다.
*이 창작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저자가 2018년부터 일본 취업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며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조언의 내용과 인사이트는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얻은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학교, 회사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변경하거나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