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라더니 진짜였네요?
2020년 1월, 우리 사업부는 연초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2019년 역대 최다를 찍은 일본취업 실적이 시장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채 1월이 끝나기도 전에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서서히 잠식했다. 당시만 해도 '신종플루' 정도로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2020년 3월 9일 일본으로 넘어가는 하늘길이 완전히 닫혔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일본은 신졸사원 입사와 대학 개강이 모두 4월 1일에 시작한다. 내정받은 학생들은 보통 3월에 일본으로 넘어가는데, 갑자기 입국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Q&A 게시판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대한 불안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들은 재택근무나 한국 지사 근무로 대응했지만, 많은 기업들이 입사일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심지어 내정을 취소했다. 내정자들은 차도가 있겠지 하며 버텼지만, 하반기부터는 속된 말로 자기 살길 찾아가는 케이스가 늘었다. 일본 취업을 준비하던 구직자들도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 시기에 나를 찾아온 사람이 김훈종 씨였다. 2020년 4월의 일이었다.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에 교환학생, 워홀 등 다양한 해외 경험이 있는 친구였다. 굳이 기약 없는 일본을 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저 일본 가고 싶어요."
"지금요? 언제 입국 풀릴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포기해야 할까요?"
훈종 씨는 대학 시절 미국, 유럽, 호주, 일본을 다녀보며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려니 이게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당시에는 명확히 답을 줄 수 없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기업들이 채용을 계속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훈종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모르겠어요.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해요."
"뭔데요?"
"기업들이 채용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을 거예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거고요. 그때 준비된 사람이 유리하겠죠."
"그럼 지금 준비하는 게 맞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봐요. 근데 쉽지 않을 거예요. 주변에서 '왜 지금 일본이냐'라고 할 거고, 결과도 당장은 안 나올 거예요. 그래도 할 건가요?"
훈종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선 상반기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일본어 실력을 더 쌓으면서, 기업들의 채용 동향을 관찰하자고. 당장 결과가 안 나와도 초조해하지 말고.
그리고 여름에 접어들며 흥미로운 신호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채용 수요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물론 2019년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년 혹은 그 이후 입사해도 되니 미리 우수한 학생 채용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훈종 씨에게 연락했다.
"훈종 씨, 기회가 왔어요."
"네? 근데 아직 입국도 못 하는데요?"
"그게 오히려 기회예요. 지금 경쟁자가 거의 없어요. 작년 같았으면 수백 명이 지원했을 회사에 지금은 열 명도 안 지원해요. 훈종 씨 같은 케이스면 충분히 눈에 띌 거예요."
"그래도 입국을 못 하면..."
"기업들도 그거 알아요. 지금 뽑는 건 내년을 위한 거예요. 냉정하게 보면 속된 말로 지금이 일본 대기업 저가매수 기회예요."
훈종 씨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근데 만약에 계속 안 풀리면요?"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돼요.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결과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준비는 컨트롤할 수 있잖아요."
다행히 2021년에 가까워질수록 기존의 오프라인 이벤트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열리기 시작했다. 훈종 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본을 대표하는 인프라 대기업의 내정을 받았다.
물론 입사는 2022년 4월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전화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훈종 씨가 말했다.
"진짜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부모님도 '코로나 시국에 무슨 일본이냐'라고 하셨고, 친구들은 '오버하지 말고 한국에서 취업해라'라고 했어요. 솔직히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근데 안 포기했네요."
"처음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일단 했어요. 그런데 진짜 하니까 어떻게든 되네요. 헤헤."
2020년은 '희망-절망-무기력'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나도, 구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위기가 지나고 나니 포기한 사람과 준비한 사람의 결과가 확연히 달랐다는 점.
훈종 씨는 엄연한 후자였다. 모두가 떠났을 때 남았고, 모두가 포기할 때 준비했고 그 결과는 달콤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거창하지 않았다. 시장을 냉정하게 읽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말해주는 것. 그게 전부였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기술이나 능력보다는 멘탈이 더 중요하구나라는 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맥주를 한 캔 땄다. 쓰면서도 개운한 맛이었다.
*이 창작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저자가 2018년부터 일본 취업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며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조언의 내용과 인사이트는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얻은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학교, 회사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변경하거나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