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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열정사이(1) :
공공기관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졸업 후 여러 기업들을 헤매다 공공기관에 정착하기까지

by Teddy

Prologue

2016년 7월 1일, 울산 중구 어느 공공기관의 2층 대강당은 꿈과 열정이 가득한 100여 명의 신입사원들이 임명장 수여식과 더불어 앞으로 펼쳐질 신입사원 연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사실 졸업 후 이 회사 저회사를 옮겨 다니다 들어온 중고신입이었기 때문에 설렘보다는 이 회사에서는 진득하니 잘 다녀야 할 텐데라는 일말의 걱정이 더 앞섰지만, 동기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은 채 그들의 분위기에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리고 약 9년이 지난 2025년 3월, 당시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잠깐의 방황

지금도 최악의 채용 한파라는 수식어가 매스컴을 뒤덮고 있지만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2014년도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선은 취업 컨설턴트가 추천해 주는 대로 나의 전공과 스펙에 기반하여 약 50여 개의 기업에 지원했고 그중 감사하게도 약 2~3개의 최종합격이 이루어져서 그중 가장 '연봉'이 높은 모 식품기업의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는 그 자체가 당시에는 큰 자랑거리였기에 나와 같이 조기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은 서바이벌의 생존자처럼 들떠있었고, 그 후 얼마 안 있어 열린 졸업식에는 미처 생존자가 되지 못한 친구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학생티도 다 벗지 못한 25살의 신입사원에게 식품 대리점 사장님과의 영업활동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수준도 되지 않는 노잼 경기였고, 본사의 실적 압박에 치이고 대리점 사장님에 치이던 나는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결국 GG를 선언했다.

다만, 퇴사를 하며 나보다 먼저 퇴사를 한 동기형이 소비재 관련 그룹사에 입사를 하여 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의 회사에 추천서를 써줄 테니 넘어오라고 하여 그 추천서 하나 믿고 미련 없이 첫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당시 운이 따랐는지 퇴사 직후 열린 전형에서 해당 기업에 채용전환형 인턴으로 자연스럽게 소속을 옮길 수 있었다.


새 회사의 직종은 'In-house Counsulant'(자사 프로덕트 및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별동대 느낌)였는데 학생들에게 컨설턴트라는 타이틀은 너무나도 매혹적이고 뽕에 차기 좋은 타이틀이었지만 이는 마치 호메로스에 나오는 바다 위 세이렌의 목소리에 홀린 선원들과 같은 잔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보다 더 한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하는 컨설턴트였지만 나는 그저 옷 쇼핑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패션사업부의 컨설팅을 담당했는데, 그 결과 저성과자로써 갖은 피드백과 상급자 상담을 수차례 진행한 후 상호 합의 이혼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굳게 결심했다. '연봉 조금 더 받는 거 보단 일 덜하고 편한 곳으로 가야겠다!'


자리 잡기

그리고 당시에 나오는 여러 구인공고들 중에 마침 전공 시험(경영, 경제 등의 과목) 이 없는 공고를 발견하여 전형을 진행하게 되었고 큰 공백기 없이 이 조직의 경기권역 지방사무소에 입사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안락했다. 기존에 120%를 해도 언제나 부족했던 과거에 비해 내가 가진 역량의 70% 정도만 노력해도 에이스 취급을 받았으며, 급여도 물론 기존에 비해 줄었지만 12개월로 나누어서 막상 받아보니 그렇게까지 차이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공공기관 채용을 확대하여 실업률을 낮추려던 시기였기 때문에 매년 무수히 많은 후배들이 입사했고 그들과의 친목활동으로 매일매일이 대학생활 시즌2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를 공고히 한 이후에는 공공기관의 꽃인 승진 작업에 집중하였다.

아무래도 지방조직보다는 본부가 유리할 수밖에 없기에 어떻게 본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상급자들과 더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좋은 부서로 발령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며 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덕분에 지방사무소로 입사 후 2년 만인 2018년 8월에 조금 더 승진에 유리한 본부 직속 부서인 '서울해외취업센터'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곳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곳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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