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이상적인 공공기관에서 느낀 괴리
승진자리를 쫓아온 해외취업센터였지만 사실 내가 우선적으로 희망했던 자리는 아니었다.
원래는 승진에 더욱 유리한 자리로 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입사 당시 회사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JLPT N1 자격증이 마침 인사팀 눈에 띄는 바람에 갑자기 자리가 변경되었다는 후문이었다.
당시에는 속이 좀 쓰렸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하나의 우연이 나의 인생의 큰 항로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매사에 신중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외취업센터는 뭐랄까 관할 지역의 국내 사업만 전담하는 지방사무소와 다르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고유의 역할에 집중하기에도 충분히 바쁜 부서였다. 약 10개국 이상의 국가를 특성과 시차에 맞춰 업무를 해야 했으며 업무량 또한 기존에 탱자탱자 놀며 업무 했던 했던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업무량은 시간을 투여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시간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전문성의 부재였다. 다들 티는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전문가라면서 별로 아는 게 없네?', '도대체 여기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뭐지?' 등의 눈치가 보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한계점을 내부 교육으로 양성해 줄 만큼의 역량 또한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주무부처(예 : 고용노동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등)의 사업계획에 따라서 조직과 인력을 재배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비슷한 결의 사업이 신설되는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해외취업지원사업은 내가 다녔던 기관을 기준으로는 정말 완전히 다른 특성의 사업이었고, 이에 필요한 전문성에 부합하는 인력을 새로 채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남는 자리는 적당한 내부 직원을 욱여넣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그리고 욱여넣어진 이들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거나 새롭게 무언가를 추진하기보다는 다음 인사이동으로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 문제없이 지내면 된다는 마인드가 훨씬 일반적이었다.
물론 이해가 되는 부분은 공공기관 대부분의 구성원은 행정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특정 직종을 타깃 하기보다는 기관 소속의 제너럴리스트로써의 삶을 꿈꾸며 입사한 경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이곳과 내가 어긋나 있음을 느꼈다. 입사 당시에는 당장 편한 일자리가 우선이었고 입사 후 2년간은 단순히 일상의 안온함에 빠져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의 길. 하지만 문득 위화감을 느꼈던 포인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관장쯤 되시는 분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 보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나는 이 사업도 저 사업도 다 해봐서 모르는 사업이 없지"라는 자랑 섞인 대사이다. 물론 조직이 원하는 제너럴리스트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기관장이라는 조직 내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분들이 퇴직할 시기쯤 되면 "내 전문분야가 없어서 나가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나는 이 서사의 결말을 절대 그렇게 맺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무작정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하여 국내외 여러 기사들과 자료들을 찾아보고 사례들을 확인했으며, 일과 후에는 당일에 있었던 상담객 혹은 외부 고객들과 이야기 나눈 내용들을 정리하고 내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했는지 꾸준히 체크해 나가며 셀프 피드백을 진행했다.
그렇게 1년 여를 보낸 결과 전문성은 더 이상 내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 기관들과 고객들에게도 점점 인정받게 된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이 과정을 통해 해외취업사업이 나랑 잘 맞는 업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2020년 1월, 당시 업무와 관련하여 조금 더 딥다이브 할 수 있는 본부 조직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전 그토록 본부행을 원해왔던 그때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무언가 석연치 않는 점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