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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May 17. 2019

S3#10 주타 트레킹

19.05.14 그림 속으로

  생각보다 방이 춥지 않아서 따뜻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8시 반쯤 주방으로 가서 아침을 먹으로 내려갔다. 주인집 아내가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요리를 하려고 하니 굉장히 불편했다. 뭔가 취직 못하고 집에 얹혀사는 삼촌이 느지막이 부엌에 아침 먹으러 온 느낌이었다. 그녀 역시도 집을 숙박업소로 쓰고 있지만 주방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만 보니 9시에 맞춰 그녀는 출근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녀가 나간 뒤 조금 더 편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10시까지 가야 하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니 거의 9시 15분 조금 늦을 것 같았다.

 부리나케 준비해서 나갔다. 어제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객이 아침부터 많았다. 그 스테판츠민다의 광장을 그냥 지나가게 두질 않는다. 휴지와 물을 하나 사고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독일인 부부 파키스탄 부부 그리고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출발 전 센터 여직원이 영어로 뭔가 드롭 포인트와 시간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주었는데, 나와 그 한국인만 알아듣지 못한 눈치다. 뭐 그래도 밴에 올라서 경치를 구경하며 가는데, 금세 어떤 포인트에 내려준다. 첫 번째 내린 곳은 이스트섬에 고인돌 같은 것들이 있는 곳,

첫 번째 드롭 포인트. 일부러 만든 건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어떤 마을인데 코쉬 키가 있는 곳, 그리고 세 번째 어떤 마을을 내려서 통과한다. 의례적으로 들르지만 뭐 해설이 없으니 의미가 없다. 그냥 내리라는 데로 내려서 사진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두 번째 포인트




  졸아서 시간은 기억 안 나지만, 30분도 안 가는 정도에서 마을이 나오고 시작 포인트였다. 내려서 말이 안 통하는 조지아 기사와 몇 시 픽업인지를 얘기하다가 구글 번역기가 동원되고 나서야 오후 3시 30분인걸 알게 되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가져온 음식이 모자를 까 봐 걱정이 됐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식당과 레스토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일행들은 먼저 오른쪽 길로 올라갔다. 보기에 왼쪽 차도가 있지만, 트레킹 코스는 그곳이 아니라 마을 쪽으로 가는 오른쪽이다. 초반이 진짜 힘들다.



이 길로 가면 된다

 직관적으로 여기가 길이 겠거니 하는 곳으로 오르면 되는데 나는 그 판단에 실패해 살짝 돌아갔는데, 어차피 제타 캠핑장을 지나 가는 거라 길이 어렵지는 않다. 정말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예술이지만, 주타트 레킹 코스는 더욱더 예술이었다. 초반이 정말 힘든데, 그 이후는 그래도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Fifth house였나 그곳까지 가서 파키스탄 부부는 방수가 안 되는 신발로 무리라고 느꼈는지, 진행을 멈추었고 나이가 좀 있었던 독일 부부도 그곳에서 간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다른 한국분은 먼저 저만치 갔는데 전혀 트레킹 준비가 안되어있어도 잘만 간다. 막 눈이 녹기 시작할 때라 땅이 많이 질고 방수 화가 필수이긴 하지만 가끔 트레킹 하다 보면 그런 상식을 깨고 쪼리와 샌들로 잘 해내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과인 것 같다. 혹은 젊은 패기 이거나. 잠깐 멈출까 고민하다가 나도 그냥 더 전진하기로 했다. 구글 맵에도 나오는 주타트 레킹의 정석길은 골 사이에 개울을 따라가는 것 같은데, 그쪽은 수량도 많고 눈이 많아서 걸을 수 없다. 애매한 비탈길을 발목이 젖혀진 상태로 걷는달까 굉장히 불편하고 녹다 말다 한 부분들이 있어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긴 하다. 그래도 우리가 이곳의 유일한 팀은 아닌지라 저 멀찌감치 먼저 가있는 어떤 사람들을 지표 삼아 길을 만들어 쭉 걸어간다. 이번 여행, 특히 이 조지아에서의 트레킹을 위해 산 고어텍스 나의 무려 20만 원짜리 블랙야크가 힘을 발휘한다. 눈이나 물이 있는 곳을 더 일부러 밟아본다. 방수가 되니 뿌듯하다. 여하튼 경치가 예술이다. 스위스를 가본 적은 없지만 보급형 스위스라는 이 조지아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동화 속에 와있는 느낌이고 정말 황홀하다. 다만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고 잠깐만 걸음을 멈추고 머물러도 칼바람이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도 계속 걷고 걸었다. 독일인 부부와 앞치락 뒤치락 챙기면서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그 이상은 눈이 와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지만, 현지 가이드와 말을 대동한 어떤 서양팀들은 그 길을 갔다 오는 것을 보긴 보았다. 주타트 레킹은 정말 환상적이고 눈이 왔을 때나 푸른 여름에 하나 언제나 환상적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무가 거의 없고 쫙 펼쳐진 초지라 사실 여름에 싱그러운 초록빛이 돌 때도 예술이라는데, 나는 만년설 덮인 지금의 모습만 보고 가도 후회가 없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일단 가져온 빵과 과자로 기력을 보충한다. 눈과 머리에 꼭꼭 담기 위해 시간을 다 채우고 돌아가려고 천천히 후퇴한다. 한국인 동행과 같이 사진도 찍어주면서 찍는 족족 감탄한다. 야속한 시간은 흘러 3시 30분이 되고 독일인 부부와 우리까지 4명만 탔는데 듣자 하니 파키스탄 부부는 먼저 돌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에 도착하고 good food라는 카즈베기 맛집이자 스테판츠민다의 실속 있는 식당으로 가서 포크 바비큐를 먹었다. 사장님이 한국에 관심이 있는지 감사합니다도 할 줄 아시고 파이팅이 있으시다. 8라리에 돼지고기로 기력을 보충했는데 육즙이 줄줄 흐르고 양도 많고 진짜 맛있다.



 간단히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갔다. 숙소를 너무 깨끗하게 치우셨는데, 침대 위에 있는 내 짐 까지 다 내려놓으신 걸 보고 너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어제 맡긴 빨래를 치우고 있던 게 오후 5시쯤이었는데, 주인을 만났다. 오늘은 풀 부킹이라고 한다.

그래서 깔끔히 수건까지 치워놨었나 보다 하고 벌려놨던 짐을 부리나케 부리나케 쌌다. 졸지에 갑자기 쫓겨난 것처럼 가방을 메고 나가서 어디로 가야 하나 부킹닷컴을 열심히 찾다 조금 더 센터와 가까운 곳에 다행히 숙소를 구했다. Lost inn이었는데 결제를 하지 않고 그냥 가서 얼만지 물었더니 20라리였던 것을 15라리에 주인이 해줬다. 약간 눅눅한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만족.

그냥 찍어도 예술 Lost inn입구
약간 허름

 널찍한 주방이 있어 찍은 사진들을 옮기며 시간을 보내고 남아있던 계란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신기하게 도시락 라면이 이곳 조지아에도 있다. 회사명이 도시락인 거 보니 그 회사가 각 나라의 입맛에 맞게 하는 거 같았다. 한국 라면처럼 매운맛은 없지만, 면이 역시 한국면 답게 탱탱하고 맛있어서 먹을 만하다. 숙소가 갑자기 옮겨진 맥 빠진 기운과 일기예보를 종합해 급으로 기차표를 예매해서 내일 주 그 디디를 거쳐 메스티아로 가기로 한다. 조지아 기차 예매는 생각보다 엄청 쉬웠다. 가입도 쉽고 인도 기차에 비할 것이 못됐다. 밀린 브런치이자 블로그이자 일기를 쓰고 남아있던 와인을 끝내고 방에 돌아갔다. 나이 가 아주 연로하신 영어를 쓰시는 할아버지와 둘이 방을 쓴다. 완전 양반이시다. 탁상시계로 알람을 맞추시고 책으로 정보를 찾으시며 진짜 조그마한 콤팩트 디카로 만지작 거리며 계속 보신다. 그렇게 내일 사메바 성당을 가기로 하고 잠이 든다.


면이 확실히 탱탱하고 맛있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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