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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Jun 29. 2019

S3#42 이스파한 떠나는 날

19.06.16 또 한 번의 초대

 소페산보다 좋은 리프트가 있다고 아란 양이 알려주어서 아침 일찍 가기로 했다. 이런 더운 나라들은 오전에 얼른 할 일을 끝내는 게 좋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가방까지 다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 베싸의 방에 내가 묶었는데, 에어컨도 나오는 방이라  정말 편하게 잘 머물렀었다.

머물렀던 방과 너무 사랑스러운 막내동생


 소페산보다 훨씬 좋다고 하도 단언을 해서 기대하고 나섰는데, 가보니 일주일간 수리를 한다고 한다. 이란이 이렇다. 사실 잠도 많이 부족하고 짐까지 싸느라 녹초가 됐었는데, 아란 양을 탓할 순 없다. 모든 게 예측불가다. 그렇다고 비단 이 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안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하는데 나는 그냥 이 곳 그늘 의자에 앉아서 쉬자고 했다.

 누울 수 있으면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못하고 벤치에 앉아 아란 양은 책을 읽고 나는 멍하니 앉아서 쉬었다. 인터넷도 느리고 참 불편한 것이 많은 나라다.


이스파한에 어딘가였는데, 잘 모르겠다

 2시에 나는 어제 만난 한 친구의 집으로 가기로 돼있고, 아란 양은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이 곳이 영업을 안 하는 바람에 아란 양이 친구랑 조금 일찍 만나기로 했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초대받은 집으로 가기로 했다.

 맛있는 치킨집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한 조각 먹다가 그만 약속을 취소하고 다 먹을 뻔했다. 너무 맛있는 치킨집이었다.

 엊그제 아란 양 집 파티에 왔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돼서 스냅을 잡아타고 구글 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략 1시쯤 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확인 문자를 하고 할 법한데 전혀 연락이 없다. 나이가 16살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조금 난감했다. 전화도 무슨 이유인지 충전을 해도 걸리지 않는 터라 확인할 길이 없는데, 이란 가족 특성상 손님이 오면 온 가족이 출동해서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가보기로 했다.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로 어제 구글맵에 찍어준 장소에 도착했다. 아란 양과 그 가족은 사실 그 나름대로 걱정이 돼서 구글맵에 위치를 보면서 썩 좋은 곳은 아닌데 불안하면 가지 말라고 했었다. 도착하니 보이는 곳들이 심상치 않아 조금 불안해하던 차에 연락이 닿아 그 친구가 마중을 나오고 만날 수 있었다.


 집에 가보니 진수성찬이 준비돼있고, 어제 만났던 친구들도 4명이 와있었다. 어제 묻기로는 다들 시험이 있고 직장을 다녀서 생각해본다고 했었는데 다 온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역시나 온 가족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원래 보통 저녁에 초대하는 것을 나 때문에 점심에 준비 중이었고 그나마도 아버지가 떙볕에 케밥을 숯불에 굽느라 너무 고생하고 계셨다.

 맛있게 밥을 먹고  같이 보드게임을 했다. 쿼리도 같은 게임이었는데 재밌었다. 원래는 4시에 나가서 어제 못 본 궁전을 보려고 했는데, 이게 또 사람이라는 것이 먹고 얘기하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 만사를 제쳐둔 친구들이 있는데 나만 쏙 빠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퇴근하고 다른 친구까지 합세해서 어제 왔던 다섯 친구가 다 모였고 윙크 게임도 했다. 그러다가 사람이 많은 김에 마피아를 제안했는데 이 친구들도 다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남동생까지 합세해서 같이 게임을 하다가 6시쯤 집을 나섰다.


기념사진

 이스파한의 명물 시오세 다리와 카주 다리를 보러 갔다. 아란 양이 함께 해주기로 했는데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앉아있는 할 일 없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지나갈 때 많은 개소리를 쏟아낸다. 어떤 여자들은 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왜 쳐다보냐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밀어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카주 다리 가는 길에 카페가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오늘은 아란 양 할머니 댁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라 시간이 사실 빠듯했다. 6시 30분에 만나서 9시까지 다리들을 구경하며 노을을 보고 할머니 댁 가서 저녁을 10시에 먹고 12시 30분 버스를 타고 시라즈를 가야 했다.


 대략 시간에 맞춰 카페로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문 앞에 잠깐 대기하던 중 어떤 어린 꼬마 친구 둘이 돌을 던지는데 '하나 둘 셋' 하며 던지는 것이었다. 아란 양과 둘이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다가 다시 그 친구들이 돌을 던지는데 또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인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쳤는데 초등학생쯤 되는 어린 친구였는데 유창하게 영어로 한국사람인지 물어보고 사진을 찍자고 청한다. BTS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동생에게 한국어를 주입하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카페에 가서 차를 한 잔 하고 카주 다리로 향했다.

 해지는 이스파한은 너무 멋있었다. 왜 다들 이스파한 하는지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파서 그랬지만 나흘을 누워만 있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다리 밑에서는 알 수는 없지만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이 모여서 논다. 그 모습도 참 이색적이고 보기 좋았다.

 이스파한은 별 거 안 해도 밤에 다리 보고 이 곳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딱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도 좋을 그런 곳이었는데, 아쉽게도 할머니 댁에 가야 해서 자리를 옮겼다. 역시나 정말 넓은 집이었는데, 거의 10명 되는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함께했다. 이런 자리에 낯선 이방인이 와도 전혀 어려움이나 불편함 없는 이런 문화가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맛있던 식사와 내 사랑 베싸..안녕


맛있게 밥을 먹고 집으로 가서 짐을 들고 스냅을 잡아타고 터미널로 갔다. 스냅 기사님이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멍하니 있다가 플랫폼이 터미널을 기준으로 앞뒤로 있는 것을 모르고 놓칠 뻔했다가 겨우 차에 올랐다.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차에 타고 장거리를 대비해 곤히 잠들 채비를 하고 막 잠에 들었다가 갑자기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아직 이스파한 시내를 벗어나기 전이었는데 '시라즈 시라즈'하면서 손짓하는 바람에 갑자기 자리에 풀어놨던 짐을 들고 버스를 내리려 앞으로 갔다. 장거리 버스에는 대략 기사 두 명과 버스 내부를 관리하는 사람이 타는데 그냥 버스 내부를 관리하는 차장 같은 분이 나를 불러 앞으로 향했다. 어떤 여성분이 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내 자리로 가는 것이었다.

 버스는 1인석 그리고 2인석이 1열에 있어 3 좌석씩 있는데, 맨 뒤 1인석에 있던 나를 맨 앞 2인석 자리로 바꾼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게 앉아 있다 보니 버스는 출발했는데 입에서 신발이 절로 나온다. 바로 앞에 그 차장 같은 사람이 앉아있는데 뒤통수에 대고 계속 강렬한 된소리를 속삭였다. 찬찬히 왜 바꿨냐고 이야기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길래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이지만 아는 이란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참 고마운 게 이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는 흥분하며 꼭 해결을 봐준다. 내가 불편할까 봐 바꿨줬다는데 맞냐고 내 이란친구가 물어본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아니 신발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여차저차 해서 다시 자리를 바꿨다. 다시 맨뒤로 가면서 보니 이란 사람들이 1인석에 쭉 들어앉아있다. 그냥 강아지 호구로 본 게 분명했다.

 여하튼 신발 차는 시라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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