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dy Jul 20. 2020

S3#79 키예프, 카메라 잃어버린 날

19.07.23 (화) 우크라이나 천사 아나스타샤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들은 출근한 후라 비어있다. 유럽에서부터는 여행을 하면서 요리를 해 먹으면 좋다. 일단 호스텔에 기본적으로 취사 시설이 잘 마련되어있고 외식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뭐든지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살아보니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림 그리기와 요리다. 그래도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열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검색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고추장찌개에 고추장만 넣는다고 생각하는, 요리에 있어 응용이나 뭔가 확장해서 생각을 전혀 못해내는 사람인데 검색을 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종합해보니 최소한의 조미료나 양념이 들어가는 것을 골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미원, 조청, 물엿, 국간장 등등 검색하다 보니 들어가는 것들이 다양한데 외국에서 구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간장, 후추, 고춧가루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추려보니 제육과 닭볶음탕, 찜닭 정도가 만만해 보인다. 짐을 챙겨 집 바로 옆 마트로 간다.

 가기 전에 길 건너 맥도널드에서 배를 채우고 마트로 갔다.

 마트는 상당히 깔끔했다. 지하에 식료품점이 있는데, 정말 마트 물가는 한국 빼고는 다 저렴하다. 가능한 한 물건들을 찍어보았는데 저기에 곱하기 5를 하면 되니까 대략 물가가 절반 정도 되는 느낌이다. 특이한 것은 치즈와 훈제 고기나 소시지 종류가 참 많다. 그리고 주류 코너가 정말 크고 맥주 종류가 다양하다.


 외국에 나가면 요리를 잘해도 부위별 고기를 사기가 참 어렵고, 정육점에서 커팅을 기본적으로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서비스가 있더라도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덩어리째 주는 경우가 많다. 나름 삼겹살 같은 부위를 골라서 구입을 해본다. 간장 같은 경우는 일식이나 중식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있는 것 같다. 만두나 여러 가지 음식에도 현지인들이 찍어먹기 때문인데 보통 일 본 거는 비싸고 현지 제품은 좀 저렴하다.

 후추 고춧가루 간장 소금 설탕 등등 과 며칠간 마실 맥주와 와인 고기까지 다 사도 만 오천 원이 안 넘었다. 이건 마치 장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훔쳐가는 마음이 들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집에 와서 시간을 보니, 아나스타샤와 저녁 약속한 시간과 멀지 않아 재료는 그대로 두고 쉬다가 저녁에 집을 나선다. 아나스타샤 일 마친 후에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해서 약속한 장소로 간다. 나스탸의 집은 나름 역세권이라 이동하기가 참 편하다. 

 일을 마친 나스탸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가서 피시 앤 칩스를 시키고 맥주를 시킨다. 나스탸는 참 예쁘고 똑똑한 친구다. IT계열에 종사하는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의 평균 임금이 300불 정도라고 하는데 꽤 고소득의 직업이라고 한다.

아나스타샤.. 그저 빛..

 콘트라코바 스퀘어라는 역에서 만나서 식사 후 우리는 보딜 이라는 지역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길거리를 다니는 지상의 트램이 유럽의 느낌을 더한다. 큰 대관람차가 있고 차가 다니지 않는 포딜의 어떤 길은 , 버스킹이 한창이고 백인들 특유의 그 아무데서나 몸을 흔드는 흥과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앉아서 기대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모습이, 사대주의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딱 유럽에 온 것 같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 그리고 뭔가 모를 낭만적이 분위기에 취해간다. 나스탸는 열심히 이것저것 설명하며 성 미하이 황금 돔 수도원이 있는 언덕을 올랐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친구였고, 여행객이 우크라이나 자체에 많이 없지만 이 쪽 부근에는 영어를 쓰며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꽤 있고 투어사들이 있는 거 보니 여행자 거리쯤 되는 곳인었다. 체르노빌 투어사도 있었는데 나스탸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카메라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다니다 빗발이 조금 세지길래 셔츠의 바깥 주머니에 넣어놨다. 그러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 커버를 여는 순간 카메라가 떨어졌고 카메라는 변기는 아니지만 변기 밑부분의 어느 틈새로 들어갔다. 나중에 보니 그 밑은 그냥 정화조였고 그 속을 열어볼 수는 없지만 첨벙하는 소리가 나지 않은 걸로 봐서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는 것 같았다. 딱딱한 철로 만들어진 그 틈새는, 묘사하긴 어렵지만 손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그 틈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유료 화장실이었는데 10분이 지나면 굉음을 내며 계속 문이 닫히려고 한다.

 정말 앞이 캄캄했고 패닉이 온 상황에 비까지 오고 말도 통하지 않고 집까지 머물게 해 준 아나스타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나스타샤는 상황을 듣더니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그 안에 손까지 집어넣으며 같이 찾아준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계속 닫히려는 문을 붙잡고서 나뭇가지 등등을 가지고 와서 난리를 친다. 나 같았으면 물에 빠졌을 거고 빠졌다면 찾아도 못쓸 텐데 가자고 했을 텐데, 물에 빠지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빈약한 추측을 믿어주고 그곳까지 손을 넣어 찾아주는 그녀가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도저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기다려보라는 그녀는 근처 술집으로 갔다. 그러더니 어떤 아저씨를 데리고 왔는데, 여기서는 이런 경우가 있는 듯싶었다. 수술 장갑 같은 걸 끼고 온 아저씨는, 원래 그런 일을 하시는지 조금은 전문적인 장비들이 있으셨고 낑낑 애를 쓰셨지만 결국 도움이 되지는 못하셨다. 사례로 그분에게 5천 원쯤 되는 돈을 드렸다. 사실 찾으셨다면 더 드릴 수도 있었다.

 30분을 넘게 머물렀던 것 같고 비는 더 거세졌다. 정말 상황은 최악이었고 나는 카메라를 포기하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체념해가고 있었다. 되려 나스탸가 더 열정적으로 찾아주었고 급기야 그녀의 남자 친구 디마도 퇴근 후 그곳으로 왔다. 정말 정말 착한 친구들이었고 , 보아하니 부분 부분 조립식으로 되어있는 화장실을 분리할 수 있어야 꺼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대공사가 될 것 같아 천상 철거할 때나 찾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화장실 앞에 있는 매점에다가 나스탸가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했고, 아침마다 돈을 수거하러 나오시는 분이 있으니 물어보겠다고 해주셔서 매점에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갔다.

 마음은 착잡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들의 친절함에 조금 나아졌다. 집에 가는 길부터 새 카메라를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로 배송하는 비용도 계산해보고 있었다. 유쾌한 디마와 아나스타샤는 계속 나를 위로해줬고, 더 이상 하는 건 너무 미안한 것 같아서 나도 잊었다며 그냥 돌아가서 소니를 위해 묵념을 하고 자자고 농담을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니 12시가 되었고, 비에 쫄딱 젖었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귀찮거나 언짢은 표정을 1도 보이지 않았다. 되려 디마는  우크라이나식 인스턴트 만두를 따뜻하게 만들어 내어 주었고 함께 와인을 마시며 오늘 운명한 소니를 위해서 위로를 나눴다.

 그동안 모든 게 참 감사하게도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여행하다 보면 도난이나 분실로 한 번씩은 큰 지출과 멘털에 큰 대미지를 입는데, 어쩐지 지금껏 너무 순탄했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나도 경험하는구나 싶다. 속이 쓰리지만, 빨리 가다듬고 여기서 사는 게 싼 지 사서 발송하는 게 저렴한지 꼼꼼히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S3#78 우크라이나 도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