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22(월) 아나스타샤, 키예프 천사
키예프 공항에 자정이 넘어 도착한다. 조지아의 트빌리시처럼 국제공항 치고 굉장히 작다. 이 곳에도 공항이 두 개 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공항 즈음되는 곳에 도착한 모양이다.
조지아에서도 그랬지만, 러시아권에서는 특별히 호객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무뚝뚝한 만큼 먼저 와서 아쉬운 소리 하면서 귀찮게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행히 공항 와이파이를 잡았고 아나스타샤와 연락이 닿았다.
아나스타샤와 야수로바는 조이아에서 만난 친군데, 둘이 키예프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대략 20대 초 중반이었고, 그동안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오면 재워줄 수 있다는 말에 행선지를 우크라이나로 잡았다. 사실 여행지에서 만나서는 무슨 얘기인들 못하랴 싶지만 이 친구들은 끝까지 진짜로 오라고 해줘서 오늘 오게 되었고 늦은 비행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착해서 전화하면 일어날 테디 우버를 타고 오라고 했다.
공항 밖에서 와이파이는 더뎠지만 내부에서 차를 호출하고 우버를 잡아타고 밤거리를 헤쳐 아나스타샤의 아파트에 도착한다.
가로등이 없어 굉장히 어둡고, 모든 것들이 낡았다. 어두운 중에도 낡았음이 한눈에 보인다. 아나스타샤의 집은 오볼론이라고 하는 키예프의 북쪽에 위치했고, 세시쯤 돼서 아나스타샤를 집 앞에서 만났다. 반갑게 포옹으로 나를 맞아주는 아나스타샤(이하 나스탸)가 너무 고마웠다. 집안에 들어서니 그의 남자 친구가 있었고 반갑게 인사했다. 굉장히 재밌는 친구였고 시간이 늦다 보니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잠에 들기로 했다.
방은 두 개였는데 들어보니 야수 로바가 나를 위해 방을 비우고 남자 친구 집으로 갔다고 했다. 고마우면서도 재밌는 게 유럽은 독립하는 나이도 빠르고 연인 간의 동거도 확실히 많이 하는 듯했다. 그렇게 야수로바의 방에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고 친구들은 키를 나에게 주고 일을 하러 갔다. 새벽녘에 도착해 친구들이 나갈 때 인사를 하고 나니 잠을 얼마 못 자 상당히 피곤했다. 짐을 풀고 채비를 하고 우크라이나의 다른 친구를 만나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집 밖으로 나온다.
조지아의 지하철도 그랬지만, 소비에트 시절 지어진 방공호들을 이어 지하철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승강장이 땅 속 깊숙이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엄청나게 빠르다. 1회권을 타고 나는 시내로 향했다.
한국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던 그 친구가 추천해준 한식당 집에서 만났다. 리비드 스카라는 역에 위치한 아리랑이라는 곳인데, 종업원이 정말 예쁜 금발의 우크라이나 분이셨고 서빙을 해주신다. 그릇 젓가락 사소한 집기까지 한국 느낌이 물씬 나는 이 곳에서 나는 김치찌개를 먹고 그 친구는 탕수육 덮밥을 먹는다.
외국에서 한식 먹을 때 느끼는 거지만, 현지인 말고 한국인이 오면 따로 오더가 들어가는 느낌인 게 더 맵게 주신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칼칼한 맛을 충분히 즐기며 음식을 비운다. 친구는 한국어는 거의 전혀 못했고 영어가 유창했다. 알 수 없는 분위기의 친구였는데 다 먹고 시내로 이동한다.
키예프 시내 중심이라고 하면 여신 사이 있는 독립 광장인 것 같다. 그곳에 가니 우크라이나는 특이한 것이, 유심 회사들이 서로 유심을 그냥 나눠준다. 경쟁이 과열인 모양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제일 잘된다는 유심을 골라 들고 친구의 통역에 따라 무제한 데이터를 했는데, 5천 원이 안된다. 아, 우크라이나 진짜 천국이 맞다.
오후 서너 시쯤 됐는데, 그간 터키에서도 잠을 좀 편하게 오래 못 자서 이은 지 굉장히 피곤했다. 재밌게 놀고 싶었는데, 빌빌 거리는 전형적인 한국의 만성피로 직장인의 모습을 본 친구는 당황한 눈치였다. 카페를 가서 커피를 조금 마시다 다음을 기약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헤어졌다.
밤이 되어 아타스타샤와 그의 남자 친구 디마까지 돌아왔고 그들이 저녁을 차려주었다. 특이하게 생긴 육포도 있었고 함께 레드와인을 나눠마셨다. 딱 비슷한 정도의 영어실력을 가진 우리는 이렇다 할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즐거웠고 나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우크라이나도 10시 정도가 넘으면 술을 살 수가 없다. 하지만 24시간 영업하는 아파트 단지 내의 정말 작은 구멍가게가 있는데 거기서는 술을 주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맥주가 먹고 싶었던 나는 디마와 함께 나가서 맥주를 사 왔고, 혼자 좀 마시며 사색을 즐기다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