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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Jul 20. 2020

S3#80 카메라 안 잃어버린 걸로 된 날

19.07.24 (수) 우크라이나에서 찾은 카우치서핑 호스트

 어제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이뤘다. 잃어버린 카메라를 구매할 계획도 세우고, 배송해서 한국으로부터 받는다면 받을 주소와 비용까지 생각하다 보니 좀 늦은 시간 잠들었다. 계획적인 편은 아니지만 또 이럴 때 보면, 기존의 계획에서 조금 틀어졌을 때 대미지를 꽤나 받는 편이다. 인도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도 맘이 오래 불편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되려 어떻게 보면 카메라는 너무 충격이 커서인지 실감이 안 나면서도 계속 손에 쥐고 있던 건 아니라 기분이 참 묘했다.

 천장 가득히 별을 붙여놓은 야수로바의 방에서 잠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밖은 벌서 해가 중천에 떠있었고, 아나스타샤의 목소리다.

 "마, 그 매점 아줌마가 전화 주셨는데, 아침에 오신 화장실 관리 인분이 너 카메라를 찾았데! 빨리 와봐!"

 진짜 혹시나 혹시나 했던 일이 일어났다.

 기쁜 마음에 얼른 준비해서 밖으로 나갔다. 정확한 내용을 듣진 못했지만, 사실 아예 물속으로 들어갔으면 못 찾았을 것이고 찾았다는 것은 틈새에 그대로 끼어있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을 확률이 크다. 혹, 되지 않더라도 감사하기로 하고 얼른 아나스타샤의 회사 콘트라트코바 스퀘어로 간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아나스타샤가 나왔고 다시 걸어서 언덕 위 화장실로 도착했다. 

 "스파시바.. 정말 땡큐.. 스파시바 아주머니 진짜 감사합니다.."

 매점 아주머니께서 카메라를 보관하고 계셨다. 너무너무 감사했고 연신 러시아식 영어식 한글로 고마운 맘을 표현했다. 언덕에 오르기 전, 아나스타샤와 우체국에 들러 봉투를 두 개 샀는데, 화장실 관리인 그리고 매점 아주머니께 드릴 사례금 봉투였다. 각각 350 흐리브나 그러니까 18000원을 넣었고, 감사하다고 한글로 쓰고 나스탸가 우크라어로 써서 전해 드렸다.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찾아준 아저씨, 맡아준 아주머니 무엇보다 지금 이 점심시간을 나와 함께 이곳에 와준 아나스타샤와 어젯밤 함께 고생했던 디마도 이 우크라이나가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정말 천국임에 틀림없다.

 어제 목표한 곳까지 가지 못하고 카메라 때문에 가지 못한 곳까지 아나스타샤와 갔다. 어떻게 갚는 게 좋을까 싶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그녀는 가봐야 한다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미하엘 수도원 언덕에서 독립광장 쪽으로 걸어서 내려가 본다. 모든 게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정말 아찔했던 것은, 이곳에 오기 전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연일 미친 듯이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영상을 옮기지 않고 카메라에 있던 것이 후회됐었다. 일단 찾았지만 혹시나 작동을 하지 않을까 봐 카메라 전원을 눌러보지 못하고 혹시 전원은 들어와도 메모리가 날아가진 않았을까, 메모리는 살아도 렌즈가 박살 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됐지만, 실체를 확인할 자신이 없어 일단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한다. 아 그리고 다행히도 물에는 빠지지 않고 틈에 껴있어 이물질 없이 바로 뺄 수 있다고 했으니 위생상으로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휴.. 앞으론 바로바로 백업해야겠어'

 다행히 카메라는 작동했다. 폰과 연결해 화면을 보니 렌즈에도 이상이 없다. 메모리를 빼서 노트북과 연결하니 메모리도 살아있다. '할렐루야'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거의 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무조건적으로다가 영상은 바로바로 넘겨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나스타샤의 집에서 주말에 나가야 하는데 나는 이 키예프가 맘에 들었다. 여행객이 별로 없어 치안도 좋고, 물가는 너무 싼데 유럽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니 분위기 물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래서 열심히 카우치서핑을 찾았는데 호스트를 마침 구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집에서 요양을 하며 편집을 했다.

 저녁을 때우고 밖으로 나가서 만나기로 한 민스카 역으로 간다.

  오션플라자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고 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신기한 것 두 가지는 8월이 다되는데 쌀쌀하다는 것과 밤 9시가 다돼가도록 해가 지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한 시간 뒤에야 택시와 함께 나타났고 나는 택시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주말에 한국으로 갈 예정이야. 이 집은 너 있을 만큼 있어도 돼"

 카우치서핑에 집을 보여달라고 할 권리도, 고를 수 있는 방법도 없지만 그녀는 자기 집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이리로 불렀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의사라고 했고 바빠서 집을 못 치운 게 부끄럽다고 했는데 그럴 만큼 지저분하긴 했다. 원래 아시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중국 물품이 가득했는데, 중국 차를 내어주었고 그 안에는 무슨 알 같은 게 둥둥 떠다니며 묘한 맛을 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와보니 이미 요지에 땅과 건물은 모두 중국인 것이라고 했고 이미 이민 와서 사는 사람도 많고 길거리에서도 상당수 중국인이 보였다. 아마 우크라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딱 봐도 중국인이 상당수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경제 수준이 태국이나 베트남 정도 된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거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슈가 대디나 돈을 빌미로 한 여성으로부터의 유혹 등이 많다. 다만 백인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환상을 가져서 그렇지 사실 카우치서핑 앱을 통해서도 그런 일이 꽤나 있었다. 매춘 같은 것을 암시하는 문구 말이다. 그래서 이 친구도 그냥 그런 것이 탐나서 유러피안 보다 쉬운 아시안에게 스캠을 하는 것인가 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주 케이팝을 좋아하는 그런 부류도 아닌 것 같았다. 의사라는데 사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가진 것들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긴 했고, 집도 너무 좋은 곳에 위치한 깔끔한 원룸 같은 곳이었는데, 잘 사는 느낌은 충분했다. 

 아시아를 동경해서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한국 비자는 몇 번이고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말에 일단 홍콩을 갈 예정이고 그곳에서 대사관을 통해 다시 시도를 해보고 안되면 중국으로 간다고 했다. 생각보다 한국 비자를 거절당하는 경우를 이 번 여행하면서 많이 봤다. 특히 몇몇 나라의 미혼 여성은 더욱더 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아마 잠적해서 유흥업에 종사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좋은 집을 그냥 머무르라는데, 어안이 벙벙하고 이게 진짠가 싶으면서 내가 혹시 뭔가 홀려서 당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맘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아니고 일요일이나 다음 주부터 지낼 거 같다고 말을 하고 일단 헤어졌다.

 이 집은 확실히 역하고는 멀었고 어두운 거리를 10분 조금 넘게 걷는데, 여행하러 다니기는 힘들겠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바로 앞에 이 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24시간 하는데, 외지고 다소 뜬금없는 곳에 왜 있나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사는 건물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걸로도 충분히 이윤이 남는지 그래서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걸으면서 역이 멀어 여행은 못해도 이 집에서 혼자 지내며 힐링하고 남은 영상들을 편집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집으로 돌아와, 다행히 갈 곳을 찾았다는 말을 전하고 맥주를 사 와 몇 병 마시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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