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26 (금) 아나스타야 커플과의 저녁식사
아침 일찍 워킹투어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당일에 오후로 바꾸기로 했고 오래된 건물들을 둘러보는 2시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날씨가 참 좋았고 시간에 맞춰 독립광장으로 갔다. 와보니 3시에 시작하는 거라서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큰 스피커와 함께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는 소녀들이 눈에 띈다.
보통 어느 나라를 가도 여행지의 인종은 백인의 비율이 월등해서, 혼자 아시안이었을 때 말도 안 통하고 위축되고 가이드나 투어사에서도 잘 안 챙겨주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분의 후기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재밌었다는 말을 믿고 갔다.
3시 조금 전부터 노란 우산을 활짝 펴 보이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었는데 오늘의 투어 가이드였다. 굉장히 허스키한 보이스로 사람들을 맞이했는데, 4~5명일 줄 알았던 참여인원은 거의 10명이 넘었다. 다들 영어로 유창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냥 갈까 싶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각자 한 명씩 소개를 하고 출발한다.
그녀는 정말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긴 했다. 능숙해 보였고, 이런 소득이 적은 나라에서는 관광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고소득인 경우가 많다. 이게 프리 워킹투어라고 하지만 마지막에 팁으로 챙겨가는 돈은 상당하다.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투어가 진행되는데 나는 점점 대열의 뒤로 밀려나며 의욕을 상실한다. 솔직히 중간에 그냥 나가서 나 혼자 커피나 마실까도 싶었지만 꾹 참고 걸어 다닌다. 그 와중에 또 한 대여섯 명은 일행이었는데 유럽 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라 열정이 상당했고 여러 가지로 나는 아싸로 전락하고 있었다. 나이 든 백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있었고 각각 혼자 오신 분들이었고, 아저씨는 아시안계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아주머니는 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내가 그 절은 아시안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필리핀 계고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라서 일하는 친구였다. 한국 음식을 자주 먹는다면서 잠깐 이야기를 섞는다.
체르노빌 투어를 갔다 왔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한다. 방사능 측정기를 나눠줘서 목에 걸고서는 방사능이 심한 지역은 절대 가지 않으니 안심하라는데 내가 만난 현지인들은 다 여행사의 상술이라며 현지인들은 절대 안 간다고 가지 말랬으니 난 안 가기로 마음먹는다.
열심히 둘러보고 헤어진다. 50흐리브나를 팁으로 줬다. 원래 같았으면 100을 줬을 텐데, 소외감으로 50을 차감했다.
우크라이나는 여행하시는 분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카톡방이 있었는데 마침 키예프에 계신 분이 있어 독립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딱히 할 게 없었던 우리는 광장에 그냥 걸터앉았다. 5시부터 앉았는데, 우리는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아 우크라이나의 풍경을 감상한다. 눈이 돌아가느라 바쁘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우리 서로의 얼굴은 기억 못 하겠다고 한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의 발트 3국부터 벨라루스, 그리고 리비우 지역을 거쳐왔다는 그는 우크라이나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한다. 강한 동의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훌쩍 7시가 되어서 헤어졌고, 나는 아나스타샤를 만나러 간다.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같아 금요일 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그녀가 회사 근처에 있는 한식당을 가자고 했고 도착한 식당은 진짜 한식당이었지만, 고려인이 운영하시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꽤 많았다.
만두와 김치찌개 등을 시켰는데, 김치찌개가 정말 매웠다. 아무래도 한식당들은 한국인들이 오면 스페셜 오더가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맥주를 시켰는데 친구들이 소주를 먹어보고 싶다고 한다. 한 병이 거의 3만 원에 육박했고 한잔이 5천 원이었는데, 나는 보드카와 진배없으니 비싸다고 만류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잔 소주를 시켰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찌개는 정말 매웠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 디마는 눈물 콧물 흘려가며 끝까지 먹었다. 그러다가 야수로바까지 와서 네 명이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맥주를 더 마시기로 자리를 옮긴다.
야수로바는 다른 곳을 가봐야 한다고 했고,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나에게 모델이 되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봐서 흔쾌히 그러기로 하고 헤어진다.
지하에서 주문을 하고 테라스에 앉을 수 있는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까 만났던 한국인을 불렀다. 그녀와 디마는 일찍 집으로 가기로 했고 나는 한국인 분과 남아서 금요일 밤의 우크라이나의 불금을 즐기기로 했다.
테라스에 앉아서 마시다 한국 인분이 오셨고, 취업이 돼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급하게 여행을 오셨다는 그분은 정말 불행하게도 가게 바로 앞에서 턱을 못 보고 발을 접질리셨다. 근데 생각보다 심했는지 금방 부어올랐고 디마가 얼음을 가져다줘서 찜질을 하고 있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뿐인 여행인데 금요일 밤을 놀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는 아나스타샤와 디마와 헤어지고 근처 펍으로 향한다.
아나스타샤와 디마가 짚어준 곳들을 돌아봤는데, 사실 이런 유럽권은 클럽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엄청 어두운 조명과 엄청 큰 음악이라기보다는, 바깥은 분위기에 적당히 말이 들릴 정도의 음악과 조명이다. 시선 때문에 자유롭지 못해서 그냥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게 하는 한국 클럽 하고는 조금 달라서 다들 술잔을 들고 왓다갔다 하면서 마시는데 우리는 밖에서 꿈뻑꿈뻑 쳐다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적당히 여행객도 섞이고 그러면 좋은데 여기는 너무 현지인들 밖에 없어서 소심해진 우리는 둘러보다 절뚝거리는 일행과 함께 다른 포터라는 술집으로 향한다. 서빙해주는데도 맥주가 3천 원 정도밖에 안 해서 신나게 마신다.
어느 정도 마시고선 지도의 클럽으로 향했는데 새벽 2시쯤 되니 아나스타샤가 짚어준 지하의 클럽은 영업이 끝났단다. 사람들이 막 나오는 참이었고 우리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 무작정 구글맵에 클럽을 검색한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고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일행이 걱정됐지만 그는 결심한 듯 절뚝거리며 가보자고 한다. 걷고 걸었지만 어째 점점 으슥하고 조용해지더니 클럽이 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포기하고 그냥 밤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버를 나눠 타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