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새벽 5시가 다돼서 잤기때문에 또 늦잠을 잤다. 이어 플러그와 안대를 가지고 다니면, 호스텔이건 도미토리 건 소음이나 빛에 대비할 수 있어 좋다.
물가가 너무 싸서 마트에 갈 때마다 항상 재료를 너무 많이 사곤 했는데, 나갈 날이 되고 보니 야채 등이 꽤나 남았다. 있는 것들을 다 때려 넣고 밥을 한다. 맛이 없지만 이제 맛없음도 익숙하다.
굳이 말하자면, 원래 얘기해줬던 것보다는 하루빨리 나가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다행히 카우치서핑도 구해져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여자 둘이 사는 집에 남자가 지내개 해준 점도, 와서 보니 마땅한 공간이 없었는데도 한 명이 왔다 갔다 하면서까지 나를 지내게 해 준 점도 참 고마웠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집에 있던 야수 로바와 인사를 나누고 짐을 들고 나왔다. 항상 집 앞에서 보던 마피아라는 식당에서 초밥을 먹어보러 들어갔다.
꽤나 근사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초밥을 주문했는데, 정말 먹을 수 없을 만큼 비렸다. 두 조각을 억지로 먹다가 도저히 이건 배탈이 날 것만 같아서 그만 먹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니 라면이 있어서 시켰는데, 라면 또한 정말 최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새로운 호스트는 내일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늘은 여러 가지 볼 일을 보느라 바쁘다고 했고, 아파트로 가면 경비실에 키를 맡겼으니 가지고 올라가서 먼저 있으라고 했다. 우버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경비 아저씨가 전달받지 못한 눈치였는지 아니면 아시아인이 와서 달라고 못 미더워서 안 주신 건지, 한참을 고생 끝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녁이 돼서 그녀가 돌아왔고, 나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 싶어서 기다렸는데 그녀는 너무너무 바빴다. 참 자기 집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내어주다니 신기하면서도 신기하고 참.. 신기했다. 카우치서핑, 내일 유학, 그리고 집 제공.. 이게 웬 횡재인지 나는 잠자코 그녀의 짐 싸기를 도왔다.
그녀가 홍콩에 가서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가기를 바랐지만, 사실 이후에 연락을 해도 감감무소식이라 알 수가 없었다. 집도 내주고 하더니 연락도 없고 정말 쿨한 그녀였다.
화장실의 나머지 부분은 사진으로 못 남겼는데, 정말 발을 디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욕조 주변은 초로 가득했는데, 좀 있다 보니 마지막 목욕을 즐긴다면서 노래를 틀고 불을 끄고 초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었다.
좌식문화가 아닌 곳들의 거실 소파는 대부분 침대로 쓸 수가 있었다. 아나스타샤의 방도 사실 거실인데 소파를 침대처럼 쓰는 형식이었는데, 이 곳의 거실 소파도 침대로 쓸 수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잠을 청했고, 그녀는 마치 호스텔에서 서양인들이 신경 안 쓰고 샤워 후 속옷만 입고 나오듯이 목욕을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잘 자라며 나는 내일 떠난다며 신난 목소리로 굿나잇을 외치고 들어가 잠에 들었다.
고마워서 밥이라도 가기 전에 사던지 사질 못해도 같이 먹고 싶었는데 그런 과정도 생략하고 이런 집에서 맘대로 머물 수 있다니 참 가슴이 설레고, 한켠으로는 빨리 내일이 와서 맘대로 쓸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