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킹스 스피치
영화 드라마의 퀄리티는 촬영이 들어가기 전과 들어가고 난 후로 나뉘어 결정된다.
흔히 촬영 전 단계라 부르는 ‘프리 프로덕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대본(시나리오)의 완성도이다. 드라마에서는 대본이 더더욱 중요하다. 거의 성공 지표의 5할을 대본이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다음 3할이 적확한 캐스팅이다. 스타 마케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역할에 적합한 캐스팅을 해야만 대본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
프리 단계가 끝나고 촬영에 들어가고 나면 연출의 비중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이때 물론 감독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작품을 두고 일하는 것이기에 만드는 사람들끼리의 시너지와 같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건강한 리듬감이 있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또 하나,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특히 영화가 그런 음악의 영향력을 더 직격으로 받는 것 같다.
내게 ‘이 영화 참 좋다’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해 준 두 편의 영화를 예시로 들어보려 한다.
첫째는 헬프라는 영화다.
헬프는 원래부터가 훌륭한 시나리오에 화면에 집중하게 하는 연출,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진 아주 좋은 작품이지만, 내게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완전히 각인시켜 준 지점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였다.
주인공 유지니아는 책을 통해 버지니아주에 만연해있던 인종차별을 온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하지만, 남자친구였던 스튜어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 장면 말미부터 유지니아의 주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일련의 시퀀스들까지 밥 딜런의 노래가 이어지는데 그 노래가 들리는 순간, 헬프의 분위기와 감정이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된다.
그때부터 내겐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라는 노래는 곧 헬프 그 자체였다.
킹스 스피치도 마찬가지였다.
내용으로 보나 영상의 색감으로나 자칫 아주 칙칙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음악 효과만으로 오히려 더 특별하게 바꿔 놓는다.
음악 영화가 아닌 이상 그렇게 배경 음악이 두드러지가 결코 쉽지 않은데 그것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 킹스 스피치이다.
음악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 적이 있다.
이야기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매력적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나오는 흥미로운 관계가 있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내가 몰입하고 있는 주인공의 감정선이 클라이맥스를 찍으면서 메시지를 주는, 혹은 감정을 남기면서 끝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이자 이야기와 음악이 내게 가져온 커다란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