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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히 Jun 23. 2023

너, 프랑켄슈타인?

둘째가 대학교 밴드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밴드 쪽 악기는 전혀 다룰 줄 몰랐다. 인터뷰도 했다는데 들어간 게 용하다. 악기보다 말을 더 잘 다뤘나 보다.


드럼을 맡았다고 했다. 드럼 스틱도 사고, 연습용 드럼패드도 샀다. 집 근처 음악학원에 등록도 했다. 공연이 있다며 시도 때도 없이 두드렸다. 이불 두드리고, 방석도 두드렸다. 공연이 가까워지면서 두드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음악학원에서 드럼 연습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제 갓 3개월쯤 된 것 같은데, 제법 폼이 다. 필인이라고 일정한 리듬으로 가다가 중간에 두구두구하면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데, 와우, 제법이었다.


밴드부원이면 누구나 공연에 참여한단다. 공연 끝난 후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약간 서툴기는 했지만 공연 같았다. 우리 가족들 모두 연신 우와, 우와, 감탄사를 내뿜었다. 두구두구할 때마다 감탄사는 커졌다. 그렇게 두드리더니 효과는 확실했다.


최근에 모임이 있었다. 예전 대학 학회 모임이었다. 한 선배가 민화를 그린다 했다. 코로나 기간, MBTI 상 전형적인 E였던 선배, 밖에 나다닐 수 없으니 좀이 쑤실 대로 쑤셨나 보다. 그때부터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상도 받았다고 한다. 단톡방에 올려준 민화 그림이, 민화 까막눈에는 완전 프로의 그림이었다. 그림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그저 부러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딸도 그렇고 선배도 그렇고, 어찌어찌 시작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걸 보니, 야 너두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시작의 문제고, 꾸준함의 문제지, 재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달인까지는 아니어도 준 달인 수준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이 화제가 됐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1만 시간은 쏟아부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만 시간을 얼추 계산해 보면 하루 3시간 이상 10년 정도의 기간이 나온다.


다시 그림 얘기로 돌아가서, 위 그림은 첫 스케치 후 2주 정도 지나 그린 그림이다. 첫 번째 그림의 말상(말처럼 긴 얼굴상)을 벗어나긴 했으나, 눈에 마스카라가 넘 많이 들어간 것 같다. 얼핏 프랑켄슈타인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역시 이 그림 속 주인공이 이 그림을 본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라도 할 터겠다.


아무래도 아무런 구속이 없다 보니 10분 스케치는 고사하고, 매일 그림 끄적여 보겠다는 초반의 다짐이 너무 무색하기만 하다.


렇다고 지금부터라도 마음 다 잡고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말은 솔직히 못 하겠다. 그런데 정말 마음만은 쓱쓱쓱쓱 몇 번의 터치로 테가 살아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뭐 지금 생각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 같다. 그런 날을 맞기 위해 지금 내가 추구해야 할 건 그림의 달인이 아니라, ‘끈기의 달인’, ‘꾸준함의 달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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