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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준경 Sep 02. 2017

‘공범자들’의 마지막 축하연

2015년, 2016년, 그리고 2017년 방송의날 행사

한국 고유의 '지상파방송 전파'를 쏜 것을 기념하는 방송의날 축하연 취재는 올해가 세 번째입니다. 행사장인 63빌딩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거리가 멉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취재를 마치고 그 긴 길을 걸으며 허무함, 허탈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방송의날 축하연은 성대한 행사입니다. 만찬이 차려한 '고급진' 분위기의 행사장 안에는 얼굴 보기 힘든 지상파 방송사 사장단과 경영진, 국무총리와 장관, 여야 대표, 국회의장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공범자들'은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기 바빴습니다. 지난해, 그리고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에서 지상파 방송의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명품 콘텐츠의 생산기지이자 한류 전초기지"(2016년)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이끄는 선도자가 돼야 한다"(2015년)


두 해 모두 축사를 한 국무총리는 물론 방송통신위원장의 입에서도 '공공성' '공정성'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반성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고대영 KBS 사장(한국방송협회장)은 “지상파가 한류산업을 일으켰다”고 자평했습니다. 2015년 안광한 당시 MBC 사장(방송협회장)은 “(지상파가) 세계산업에서 앞서갈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2015년 방송의날 축하연 대통령 영상메시지
2016년 방송의날 축하연 대통령 영상메시지




       

박근혜 정부 내내 공영방송의 흉기 같은 보도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백남기 농민 유가족, 노동자들을 공격했는데. 이런 방송을 만들지 않겠다며 저항한 누군가는 또 징계 당하고, 또 전보당하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은 또 또  난도질당하고 있는데. 정치권력이 보도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는데. 정치권력과 언론을 망가뜨린 ‘공범자들’이 높은 단상에 올라 덕담을 나누고 격려하고, 웃고, 건배를 하고 그런 모습이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2015년에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안광한 사장을 따라가 공영방송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연히 경호원이 제지했고 안 사장은 묵묵부답인 채 빠져나갔습니다. 2016년에는 행사에 나온 '말'만 기사에 쓰고 돌아왔습니다. "취재해도 대답도 안나올텐데, 뭐가 바뀔까"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죠.


올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취재를 하기 위해 63빌딩에 들어서자마자 행사장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 싼 두 방송사의 구성원들이 피켓팅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김장겸 사장은 MBC 구성원들의 '비판'을 들으며 힘겹게 입장했습니다. 고대영 사장은 공영방송 구성원들을 피해 쪽문으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렇게들 힘겹게 진입한 시상식(사전행사)에서 상을 받은 박영훈 목포MBC기자는 김장겸 사장 면전에서 수건을 펼쳤습니다.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박영훈 목포MBC 기자. (사진=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사전행사에서 축사를 한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창조경제와 한류 메시지만 가득했던 이전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해도 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지난 몇 년 이 중요한 사실을 방송인 스스로 외면하지 않았나 성찰해야 한다."


시상식 내내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곁눈질을 하던 두 공영방송 사장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압권은 사전 행사 막바지 체포영장이 청구된 김장겸 사장의 도주였습니다. 행사를 마친 직후 다른 기자들과 저는 김장겸 사장에게 다가가 "체포영장 발부된 사실 알고 있느냐, 입장을 달라"고 물었지만 경호원들이 팔뚝으로 밀치며 길을 만들었습니다. 김 사장을 따라가는 기자의 목덜미까지 잡으며 시간을 버는 사이 김 사장은 화물 엘레베이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행사장으로 돌아와 보니 어떤 문 앞에 기자들이 가득했습니다. 고대영 사장이 김장겸 사장에 이목이 쏠리는 틈을 타 대기실에 ‘셀프감금’한 것입니다. KBS 구성원들이 고대영 사장이 대기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구성원들은 고대영 사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방송행사 주최측의 수장이었던 그가 셀프감금을 한 탓에 본 행사가 늦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행사가 지연되자 초대를 받은 방송사 원로들이 행사가 끝나고 먹어야 할 뷔페 음식을 먹기 시작해 이를 제지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고대영 사장은 경찰을 동원해 겨우겨우 본행사 장에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주최측 인사인 김장겸 사장의 '실종'됐고 관례적으로 참석해온 국무총리, 국회의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여야 대표가 불참해 행사는 썰렁했습니다. 고대영 사장의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본 행사에 축사를 하려는 순간 “고대영은 물러나라” 구호가 장내에 퍼졌습니다. 보통 1시간 가량 진행되던 행사는 불과 10여분만에 끝났습니다. 



노트북을 덮고, 선배와 밥을 먹고 지하철역까지 길어가는 길에 김장겸 사장 수사, 공영방송 총파업 등 향후 정세를 이야기하며 스스로가 들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범자들'의 방송의날이 이제는 끝났다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내년 방송의날에는 '전파값'을 하는 주최측이 됐으면, 구성원들이 행사장 밖에서 절규하는대신 현장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축하연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이 대독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공범자들'은 탄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부의 의지와 철학은 확고하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겠다. 국민 외의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겠다."

 

고대영 한국방송협회장(왼쪽)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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