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죽음은 나의 죽음의 거울
호스피스 자원봉사교육을 마치고 맨 처음 환우의 임종을 지키면서 찬송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를 포함해 함께 둘러서서 떨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눈물, 콧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진정어린 노래를 불렀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보호자도 없이 외로이 죽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사람을 생각하니 저절로 인간적인 연민 호르몬이 작동하였다. 고단한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영혼이나마 자유롭기를 빌고 또 비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임종을 확인하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을 우리는 자리를 지키며 슬픈, 때로는 희망의 찬송가를 불렀었다. 사람이 죽어도 얼마간은 귀는 열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뼈가 앙상한 몸이었지만 죽은 자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만큼 임종음악은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 소중하다.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3년 전 영어선생님으로 17년을 근무했던 후배의 병상을 지킨 적이 있다. 임종 하루 전날 병실에서 3명이서 몇시간을 찬송을 부른 적이 있다. 후배는 의식도 없고 다만 가끔씩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목을 가누는 정도의 반응을 할뿐이었지만 한분의 인도하에 눈물의 찬송은 계속되었다. 다음날 임종 역시 마치 예배하는 분위기였다. 좁은 병실을 세겹으로 에워싼 친구, 학생, 지인들의 찬송소리는 너무나 비장헀다. 몇시간동안 찬송이 끊이지 않았다.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불렀다. 평소 극성스런 엄마의 ‘크리스챤스러움’에 못마땅해했던 아들이 그날은 눈물을 멈추질 못헀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 후배의 삶은 아름다웠다고. 죽음의 순간이 그토록 진실되고 평화로웠으니 말이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떠올려 보곤 한다. 나의 임종은 어떤 분위기일까?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악의 효과 여부를 떠나 나의 임종과 장례식장은 노래소리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나의 죽음을 통해 서로 친구가 되고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면 좋겠다.
완화적 치료에서 음악은 통증과 불안, 공포를 감소는 물론이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회고할 수 있게 한다. 회고는 인생확인과 자존심의 원천이 될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평가하는 수단, 개인의 힘에 의지하는 방법이다. 음악이 개인적 기억과 연관된 자극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음악은 비언언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김은정, 김경숙(2014)의 연구를 통해 암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가족의 심리적인 치료를 포함하는 많은 음악치료적인 접근들이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이지현, 김남초(2006)의 연구에서도 조혈모세포이식 전 전신 방사선 조사 시 불안, 오심과 구토를 감소시키는 음악요법은 적용이 간편하고 부작용이 없고, 비용 효과적인 간호중재방법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