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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29. 2024

3. 왜 공부하는가?

-교사는 행복메이커, 통찰메이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행동하고, 행동하는만큼 변화하고 변화하는 만큼 행복하다.”

나는 공부를 선택하기 쉽지 않은 나이, 50이 넘어 대학원에 입학했다. 특히 생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라고는 1년간 청소년웰다잉교육 책을 집필하면서 다급하게 읽어들인 게 전부였다.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웰다잉에 관한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전해서는 안되겠기에 선택한 늦깍이공부였다. 잘하고 싶은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교육이 일방적인 가르침이던 시대는 지났다. 학습자중심 교육 서비스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뀐지 오래다. 하지만 교육은 웬지 시험과 경쟁, 비교와 같은 우열을 가르는 이미지를 떨칠수가 없었다.

“왜 공부하는가?” 교수님의 질문이 생뚱맞게 느껴졌다.

‘거창하고 원대한 뜻을 품고 들어왔지.’ 학우들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대답을 망설이는 눈치였다.

“주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소신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는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미소 띤 교수님의 어투는 작은 소리였지만 강단있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죠. 그런 의미에서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옳은 선택을 해야하는 삶은 바로 교육인거죠.”

유레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공부를 왜 하다니.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자격을 갖추고, 남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당연히 해야하는 게 공부였다. 그런데,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내용은 신선했다.

“제가 말하는 것만 다 맞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 내가 아는 게 다 진리라는 생각은 교사로서 위험해요.”

아니 이건 또 뭔가? 내가 아는 상식에서는 항상 가르치는 분의 말이 답이었다. 앵무새처럼 외우거나 따라가야 하는 게 맞는 거였다.

“함께 공부하는 여러분의 생각을 같이 나눠보자구요.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게 중요해요. 내 생각도 맞고 네 생각도 맞다. 단지 다를뿐이다.” 강의실 분위기가 삶의 지혜로 가득해지는 순간이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세요?” “ 여러분, 행복하세요?”

“교수님, 질문이 무겁습니다.” 강의실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무거운 질문이지만 꼭 답을 해야할 필요도 없고, 막상 정해진 답도 없었지만 우리는 항상 진지하게 경청하고 작은 부분도 의견을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수업을 거듭할수록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서서히 조금씩 성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은 만들수가 있어요. H=S(50%)+C(10%)+V(40%)”

행복에도 공식이 있었구나.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이다. 행복하려거든 비교하지 말라.”

수업시간이 거듭될 때마다 내 인생의 굵직한 질문들이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이제 진짜 공부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생명교육세미나 수업을 한학기 듣는 동안 가장 많이 기억나는 단어는 “대체불가능한 존재”,“치대기는 관계맺기다”이다.

고유한 존재유전자를 가진 대체불가능한 개인이 관계로 확장되며 관계맺기를 잘 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관점을 바꾸고, 거리를 두며, 기대치를 낮추고, 나의 단점을 인정하라 그러면 타인의 단점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그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다. 통찰력의 샘이 가득가득해지는 순간이다.

“치대기”는 일부러 배운 내용을 곰곰이 되뇌이고 곱씹는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럴때야말로 비로소 공부의 내용에 깊이 융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치대기를 하는 나만의 휴식법이 있는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은 백지장과 같았다. 강의준비와 수업을 듣고 가족을 돌보는 숨가뿐 나의 일상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휴식은 사치였다. 치대기는커녕 인스턴트같은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었던가. 짧지만 깊은 반성을 하지 않을수 없는 순간이었다.

“관계맺기”의 동력을 교육사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열심히 관계맺기에 참여하다보면 그 의미를 발견하고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항존주의와 본질주의는 말한다. 반대로 진보주의는 억지로 관계맺기를 유도하지 말고 아동의 흥미를 존중한다면 관계맺기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한다.

“관계맺기의 갈등상황에서 나는 노력하는 자를 차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 갈등상황에서 나는 주로 회피하는 성향이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는 쪽이었다. 대화하고, 때로는 경청하고, 화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관계맺기는 중심보다 치우치지 않고 제대로 볼수 있는 힘이다. 다양한 관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나와 같은 생각과 관점을 가진 사람과만 관계를 맺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사회는 몇 명을 거치지 않아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호존중의 태도로 공감하고, 경청하고, 역지사지하고, 신뢰하며, 치대기의 시간을 들인다면 자연스럽게 갈등해결이라는 결과를 가져 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갈등의 순간을 함께 뛰어넘은 관계는 그렇지 않은 관계보다 끈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인간관계다.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유튜브 75년간 하버드에서 연구한 행복의 비밀-잭스파이어는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첫째, 사회적 연결은 유익하되 고독은 해롭다.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연결이 사회적으로 더 긴밀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며 연결이 부족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은 매우 유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덜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둘째,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헌신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는 것이다.

셋째, 좋은 관계는 육체뿐만아니라 뇌도 보호해준다.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가 건강과 행복에 이롭다. 자신이 의지할 가족, 친구,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산다.

75년간 700명 이상의 사람을 연구한 그들의 끈기와 학문적 열정에 먼저 존경을 보낸다. 그만큼 행복한 삶이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은 교육학 개론에서 사회에서 교육의 위치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에밀 뒤르켐은 1897년부터 교육과 국가가 ‘도덕 사회화’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덕사회화란 그 사회가 지켜야 할 도덕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시키는 기능을 담당해야한다는 것이다. 전적 공감한다. 수업시간에 청소년의 사회문제 참여에 대해 토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레타툰베리와 말랄라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경문제와 인권문제는 청소년이 참여하기에 좋은 주제라고 학우들이 공감해주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나의 ‘생명존중교육기반 책쓰기 수업’에서도 청소년들의 사회문제참여 및 개입 부분은 계속적으로 중심 화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가장 훌륭한 학습자는 교사다. 가르치기위해 공부해야 하고 가르치면서 배운다. 문제사태를 전체적으로 분석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인지구조가 변화하는 것이 통찰(insight)이다. 통찰은 리더의 덕목 중의 하나이다. 형태주의 학파의 대표적 인물 볼프강 쾰러도 챔팬지의 문제해결능력실험을 통해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결이 아니라 전체적 해결이 이루어 지는 것이 통찰(insight)이라고 했다. 이런 통찰학습의 관점에 큰 공감이 갔다. 교육을 마치 처음 가보는 길을 네비게이션으로 여기는 문제가 있다. 시행착오를 겪음으로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나에게 교육이란 “대체불가능한 존재의 통찰을 통해 행복한 삶을 관계 안에서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부와 성공과 명예와 목표달성을 위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고민하면서 의미를 찾느라 현재 내 앞의 삶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는 경향이 있지는 않는가? 특히 타인과의 비교로 지나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지금 여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적어도 이번 생에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만남, 좋은 시간, 좋은 장소는 늘 내옆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나와 관계 맺는 모든 이들은 대체불가능하고 유일한 개별 존재자이다. 교사만큼 한 개인의 통찰에 가까이에서 깊이 개입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돌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일이다. 행복한 개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볼 때 교사는 “행복메이커”라고 부를수 있겠다. 더불어 “통찰메이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귀한 통찰을 얻게 해준 교수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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