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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29. 2024

8. "선생님은 잊을수 없는 임종이 있어요."

-호스피스 자원봉사

“ 호스피스의 뜻을 아는 학생 있나요?”

“ 병원입니다”

“ 그럼 어떤 환자들이 가는 곳일까요?”

“ 그건 모르겠어요.”

“말기암환우, 임종을 2달정도 앞둔 분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요.”     

호스피스(Hospice)라는 말은 라틴어 ‘호스페스(Hospes)'에서 그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손님을 맞아들이는 사람(Host)과 손님(Guest)이라는 두 의미가 이 말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중세 시대에는 성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을 '호스피스'라고 불렀다.

요즘에는 죽어가는 환우들을 마지막 임종할 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돌본다는 개념으로 이 호스피스라는 말이 사용된다.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호스피스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웃사랑, 인간존중’의 운동이다.     

“선생님도 임종을 보신 적이 있나요?”

항상 기둥 옆 자리에 엎드려져 있던 현우가 질문을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이 녀석 잘 걸렸다. 죽음준비수업이 막바지를 향해 가는 동안 번번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현우가 오늘로 왠일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한 것이다.

“선생님은 잊을 수 없는 임종이 있어요.”     

2년전 20년지기 00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13살 딸, 16살 아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좁은 병실 가득 지인들에 둘러싸여 천국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00는 20년간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다. 장례식에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찾아 왔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매년 교사들은 건강검진을 한다. 그런데 그깟 암 하나 발견을 못했다니. 특히 위암은 초기에 발견만 되면 반이상을 절제해도 완치도 가능하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교사가 천직인 00는 방학되면 오히려 살이 빠지고 학교를 나가면 살이 찔 정도로 학교 급식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해오지 않았던가!

00의 지루하고도 처절한 암과의 사투를 가까이에서 지켜 보면서 참 00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대낮에 언니랑 이렇게 국수 삶아 먹고 김밥 싸먹으며 놀수 있다니” 웃는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는 항상 바쁜 사람들이라 00가 비교적 한가한 방학때나 아이들 우루루 데리고 한집에 모여 잠깐 만나고 뿔뿔이 흩어지곤 하는 짧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00는 그야말로 FM인 후배였다. 학교와 집, 교회 밖에 모르는 범생이었다. 스무살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원까지 혼자 벌어 마칠 정도로 똑순이었다.

00의 죽음은 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제일 먼저 집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였다.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 죽을 때 하나도 가져 갈수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00에게는 얼마나 절실했을까를 생각하면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가 없었다.

00는 복직하면 미션스쿨인 학교에서 특송을 할거라며 내앞에서 깡마른 몸을 곧추 세우며 노래를 불렀었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노래 한곡을 채 마치기도 전에 가뿐 숨을 몰아쉬었었다. 이제 영어선생이 아니라 상담선생님으로 아이들과 만나야겠다며 대학원을 입학해야 겠다고도 했었다. 00는 결국 복직은 못했다.          

나는 6년째 샘물호스피스 봉사를 다닌다. 처음에는 부엌에서 양파껍질을 까고, 설거지를 하다가 3년전부터는 여자환우 목욕 봉사를 한다. 산소통을 달고 휠체어에 겨우 몸을 기대고 목욕실로 들어오는 환우는 목욕침대에 올라가는 일이 히말라야 등반수준으로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목욕을 받을수 있는 환우들은 비교적 컨디션이 좋다. 의식없이 주무시는것같은 분들을 목욕시킬때는 그래도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젊고 의식이 있는 분들은 통증을 호소하기 일쑤다.     

‘만약 내가 말기암으로 목욕침대에 누워 목욕을 받는다면 어떨까?’     

많이 자존심 상하고 마음이 아플것 같았다.

서투른 나의 목욕봉사가 이분들에게는 그래도 이세상에서 마지막 목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정성을 다한다. 가끔은 “고맙다”, “천사같은 권사님, 복받으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때면 알게모르게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꽃에게도 배워야 할게 많아요     

샘물호스피스 원주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때마다 나는 왜그렇게 주책맞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어김없이 고장난 수도꼭지가 되고 만다.     

“꽃에게도 배워야 할게 많아요. 꽃은 피고 반드시 시들어요. 하지만 다음해에는 정확하게 다시 꽃을 피우죠. 꽃은 공평해요.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예쁜 모습과 향기를 주지요. 생명이 있는 꽃은 비를 맞을수록 더욱 뿌리가 튼튼해서 싱그럽지요. ”

“꽃만큼만 살자구요” 항상 웃는 얼굴이시다. 설교를 듣는 중에 임종을 하신 환우의 침대가 들어왔다. 예배 도중 모두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분과 가족 위해 기도하기도 여러번 했다.     

 그러나 제일 슬플때는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를 볼 때다.

그 마음이 어떨까?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엄마인 내가 차라리 아이 대신 아프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왕복 6시간 대중교통을 타야하는 호스피스를 갈 때 마다 사실 몸은 쉽질 않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여러 가지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한달에 한번 당연히 엄마가 호스피스 봉사 가는 걸로 안다.     

휠체어에 탄 환우의 어깨를 안마해드린 적이 있었다. 정말 순간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뼈가 그대로 손에 느껴지는게 아닌가! 살이 하나도 없는 마른뼈 느낌이었다. 그런데 환우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롭게 웃고 있었다. 그날 내 손에 남아있는 딱딱한 뼈의 촉감은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날에도 그때의 그 딱딱한 손의 촉감을 기억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호스피스로 향한다.     

00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디 이세상에 다 이해되는 일들만 일어나는가 말이다. 각자의 가진바 소명을 다했다면 삶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한다는 지혜가 생겼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 누구나 죽을듯이 울어 제낀다.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엄마 뱃속이 제일 안락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세상은 세상대로 얼마나 아름답고 ‘다이나믹’한가 말이다. 마치 비온뒤 하늘의 무지개처럼 각각의 색깔이 없다면 무지개라고 부를수가 없는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태어날때와 마찬가지로 죽을때도 그게 끝이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감히 확신한다.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맡은바 사명을 쉼없이 다할 일이다.

그리고 소명을 다했을때 부르시면 ‘천국으로 이사’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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