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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29. 2024

7. 너의 잘못이 아니야,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거야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

누구나 지금 당장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특히 나이가 열일곱이라면.          

헤이즐은 채식주의자로 갑상선암을 앓고 있다. 산소통을 항상 달고 다니며 주기적으로 폐의 물을 빼야 한다. 워낙 어릴때부터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면서 살아왔기에 삶에 대한 의욕도 희망도 없는 우울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녀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고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나이에 산소통을 들고 다녀야만 살수 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헤이즐은 암환자 지원단체에 또래모임을 가기 싫어했다. 암환자모임에 간다고 병이 낫는것도 아니고 병이 없어지는것도 아니니까. 천만다행으로 골육종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났다.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매끈한 근육질의 훈남이다. 함께 암스테르담에 가게 되고 장엄의 고뇌 작가 피터를 만나게 된다. 유머스럽고 헤이즐을 위해서 마지막 소원들어주는 재단에 헤이즐의 소원을 의뢰할만큼 따듯한 마음을 가졌다.     

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에서 여주인공 헤이즐은 남주인공 거스와 친구 아이작과 함께 사전장례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헤이즐이 코에 산소통 호스를 끼우고 담담하게 고해성사처럼 뱉어내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나의 뼈에 하나하나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헤이즐이 0과 1사이에 무한대를 경험하게 해준 어거스트에게 눈물로 진심어린 추모사를 읽어간다.     

“어떤 무한대의 숫자는 다른 무한대보다 크죠.     

전 제게 주어진 숫자보다 더 큰 숫자를 갖고 싶어요.     

그리고 어거스터스도 더 큰 숫자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거스 내 사랑, 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우리에게 주어졌던 작은 무한대가...     

넌 내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함을 줬어.     

그런 네게 난 영원토록 고마워 할 거야. 너무 너무 사랑해”          

죽은 사람은 정작 자신의 추모사를 들을 수 없다. 나의 장례식에서 누가 추모사를 읽었으면 좋을까? 어떤 분위기의 장례식이면 좋을까? 매일 학교를 가지만 자퇴를 꿈꾸고, 죽어라고 공부를 하지만 성적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주말에도 쉴 수 없는 대한민국의 십대들.     

어른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픈 청춘을 보내고 대기업에 입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서 집 한 채를 사고 십대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고 경제위기를 넘겼지만 결국 OECD 국가 중 13년째 부동의 청소년 자살률 1위나라의 부모일 뿐이다.     

우리의 십대가 커서 또 그렇고 그런 40대 부모가 되는 것이다. 끔찍한 악순환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말 한 달만 살 수 있다면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학교, 학원 안가고 신나게 놀고 싶어요.”     

“하루 종일 자고 싶어요.”     

“죽을 만큼 아프면, 아프면 학교 안가도 되잖아요. 헤헤”          

철부지 아이들의 말이라 가볍게 여기기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웃프다.               

“물론 다 낫고 나면 학원 보충가야지?”     

집에서 엄마에게 늘 듣던 말이다.          

“무단결석은 입시에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진단서 받아오고”     

하지만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들을수 있는 말이다. 이런 건 답축에도 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정답”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안녕, 헤이즐>은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호주 등 총 18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원작은 2012년 출간된 청소년 로맨스소설 중 가장 인기 많은 책이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하는 대사를 이용한 것이다. 별은 운명에 대한 비유다. “잘못은 우리들이 한 게 아니라 그저 운명일 뿐이다. 운명에도 많은 잘못이 있다”정도로 보면 된다.                                        

이 작품은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소재의 주인공은 에스더 그레이스 얼(Esther Grace Earl)이라는 소녀로 작품이 온전히 에스더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헤이즐이 진단 받은 병과, 늘상 산소통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점, 그리고 에스더의 성격이 헤이즐에게 반영되었다. 에스더는 12살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으나, 오랜 투병 생활에도 활기차고 밝은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그의 부모님은 'This Star Won't Go Out'이라는 재단을 결성해 소아암 환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작가인 존 그린과는 2009년에 해리 포터 콘퍼런스에서 만났다. 그린은 그 시기에 이미 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러브 스토리는 아니었고. 소아암 병동에서 환자들과 지내고 인터뷰를 하면서 점점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에스더를 만났고, 죽음과 나란히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그의 태도에 새로이 영감을 얻었고. 에스더가 죽은 이후 지금과 같은 러브 스토리로 작품을 완성시켰다.

안타깝게도 소재의 주인공인 에스더 그레이스 얼은 기나긴 투병생활 끝에 2010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유명인의 말처럼, 내일 죽어도 오늘 나의 일상을 쉬지 않고 하겠다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옆친구가 경쟁자가 되고, 점수 1,2점에 좌절하고 키 몇cm에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다가 지하 수백미터 밑으로 가라앉는 우리의 해맑은 십대들.

강남의 아이들의 최대 라이벌은 자신들의 부모라는 웃지못할 말이 있다.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적으로 지금 부모보다 좋은 집과 차, 안정된 직장을 누릴수 없는 구조적 환경에 대한 넋두리 섞인 말이다.     

“상처 받는 걸 선택할 순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 받을진 선택할 수 있죠. 전 제 선택이 좋아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 중 어거스터의 대사     

어거스터의 말대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의 운명까지도 내 선택의 몫이다.우리 모두는 내 몫의 삶을 감당해내고 있다.     

Present는 “지금”이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영화 속 헤이즐이 어거스트가 그렇게 애타게 원했던 “생명”이라는 선물을 지금 우리는 누리고 있다. 남의 운명을 살 듯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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