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침범 그 후! 티티새 다과회 - 중 -

<다른 사람의 컵>을 돌려드립니다

by 팀 티티새

승혜의 컵 <내 마지막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에게>

파인의 티백 <환상과 도착>

제인의 티백 <블루 래빗>




파인: <내 마지막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에게>, 여기에 제인이 쓴 <블루 래빗>, 그리고 제인의 컵에 승혜가 쓴<프리미엄 라이프>에 모두 도서관이 나와요.

제인: 승혜가 쓴 글에서는 도서관이 따뜻하게 등장하는 것 같아요. <쉘 댄>에서 마지막 구립 수영장이 없어지는 건 복지가 사라졌다는 의미인데, 그 자리에 도서관이 생겼다는 건 다정한 제스쳐예요.

승혜: 저는 도서관이 복지의 마지노선 같았거든요. 수영장보다 유지 비용이 적게 들 것 같기도 해서요. 별개로 도서관이 따뜻한 장소이기는 할지도요. <블루 래빗>에서도 책을 찾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어쨌든 도서관에 도착해서 책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따스한 분위기가 나요.


제인: <내마첫독>을 읽으며 생각해봤는데 만약에 저희 엄마가 냉동 된다고 하면 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들은 상호 협의 하에 시카고까지 따라가서 마지막을 지켜줘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반대의 경우를 써보고 싶었나봐요. 마지막 순간도 지켜주지 못하고, 돈도 없고, 모든 게 대척점에 있는 친구를 주인공으로.

냉동 자체도 돈이 많이 들텐데, 혜슬은 굉장히 냉동이 잘 될 것 같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렇다면 음습한, 싼마이로 냉동을 시켜주는 곳도 있지 않을까? 승혜가 잘 만들어놓은 반질반질한 세계관에 불법을 끼얹고 싶었어요.


제인: 제가 윈터레인의 <블루 래빗>이라는 노래를 마음대로 만들었는데 괜찮나요?

승혜: 네. 솔직히 저는 파란 토끼이다보니 뉴진스 생각이 났어요. (웃음) 아이브나 뉴진스 같은 4세대 걸그룹이 윈터레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승혜: 한 작가의 글들을 연이어 읽는 것도 좋은 독법 같아요.

<블루 래빗>에서 제인의 색이 잘 보였어요. ‘라틴 재즈풍 CD’, ‘보사노바 플레이리스트’처럼 단어만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요소가 들어있죠.

제인: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승혜: <쉘 댄>의 냉소가 <블루 래빗>까지 이어지고, 더 나아가면 <원래 사랑하는 애들만이 말을 아낀(닥친)다>까지도 이어져요. 작가의 컵을 기준으로 세 편이 이어지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 작가가 세 가지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들도 세트처럼 이어진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세 개의 원이 균형 있게 겹치는 완벽한 교집합이 만들어진 것 같아서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제인: 룸메이트 y가 그랬는데 제가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긍정형 부정이래요. 예를 들어 한 가지 일이 나쁘게 풀리면 그래도 다른 일들은 괜찮으니까, 이런 식으로 자기 세뇌를 해요. <블루 래빗>을 쓸 때에도 긍정형 부정의 힘을 빌렸어요.

승혜의 컵에서만은 냉소만이 아닌 마지막을 열어두고 싶었어요. 미정도 냉동되어 있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미정이 떠나버린 시간에 갇혀있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때에 성숙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해서, 글의 완성도와는 상관 없이 마지막에 둘이 만나는 부분을 붙였어요.

승혜: 제인을 보면서 느껴요. 제인 식의 온정과 긍정이 있어요.

제인: 비뚤어진 긍정. 때로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강박적으로 긍정적인 면모를 생각하게 돼요.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래도 이때까지 썼으면 하루에 500원 정도 낸 거니까 본전 건진 거야.” 이래요.

파인: 귀여워요. (웃음) 그리고 뭔 지 알 것 같아요. 그런 게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승혜: <블루 래빗>의 첫 문장이 좋아요.

제인: 누구를 이해하기 위해서 쓰거나 읽는다는 거, 제 글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만 승혜 글에도 그대로 있어요. ‘파도의 섬과 메아리 동굴’이라는 동화책을 쓰면서 온이 엄마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행위의 결과물인 동화책인 만큼 이걸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거니.

인물의 행위 동기에 있어서도 승혜 글을 많이 빌려오려고 했어요. 미정이 냉동을 꿈꾸는 것도 윤혜슬의 영향이거나 하는 식으로요.


파인: 윤혜슬은 아마도 미정이 존재하는 줄 모를 텐데 미정은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거네요.

승혜: 스타와 팬의 관계란 그런 거기도 하니까.

파인: 윤혜슬의 스타성이 어마어마하군요.

제인: 제 세계에서는 윤혜슬의 배우자가 우주에서 돌아온 거니까, 얼마나 매스컴에서 띄워줬을까. 자연히 평범한 사람들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했어요.

승혜: 실은 <내마첫독>은 SF적 상상력이 아닌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금기에 가까운 걸그룹 출신의 연예인’ 윤혜슬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동성결혼, 냉동인간 등 선택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이슈를 만들며 살았을까. 작가로서 제인이 윤혜슬에게 영향을 받는 미정이라는 인물을 그려준 게 고마웠어요.


승혜: 그러고 보면 <내마첫독>은 연예인, <블루 래빗>은 대중, <환상과 도착>은 엔터 제작자 이야기네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세계관…

지영: 그러네요. <환상과 도착>을 구상하던 시기에는 복원된 윤혜슬, 다시 돌아온 주세연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했지만, 인간 복원이라는 소재의 딜레마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엔터 제작자 이야기가 되었네요. 정말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거대한 딜레마인가봐요.

승혜: <환상과 도착>에서는 드디어 온의 딸에게도 상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지영: 14개월이었던 딸이 40살까지 컸어요.


승혜: <환상과 도착>에서 둘이 교통사고가 나서 마주 앉았는데 장소가 고급 죽집인 디테일이 웃겼어요. 송로 버섯 죽처럼 죽 같지도 않은 죽 먹고 있을 것 같아서. 드라마 PPL 같다고 할까, 너무 잘 어울려요.

제인: 저는 그런 지점에서 파인 글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잘 맞춰서 진짜 같아요.

승혜: <Fuckboy를 위하여> 하면 감자탕이 떠오르듯이 <환상과 도착> 하면 죽집이 떠오르는 거죠.

옛날에는 죽이 아픈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었다면 요즈음에는 본죽을 시작으로 죽이 엄청 브랜드화 되었잖아요. 죽 그릇과 덜어먹을 접시와 정갈한 반찬과 1인 쟁반으로 해서 그 사람 앞에 딱 놓아준다, 라는 컨셉이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어울려요.

어떤 걸 잘 브랜드화해서 상품화한 느낌, 각자의 쟁반이 있기 때문에 마주 보고 밥을 먹는데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등이 이 둘의 어색한 만남과 잘 어울려요. 조용해보이지만 자본주의적인 속내를 가지고 있는 찬빈이라는 인물과 죽집도 통하고요.


승혜: <환상과 도착> 엔딩에 대해서, 윤혜슬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끝나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찬빈의 말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어요. 욕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파인: 처음부터 윤혜슬의 존치에 대해서 점점 압박하는 느낌을 주고 마지막에 독자에게 답을 꼭 내라고 강요하면서 (웃음) 끝내고 싶었어요. 찬빈의 존재도 믿을 만 하지는 못하지만 온의 입장에서 윤혜슬을 깨워서 주세연의 죽음을 알리기, 기약없이 냉동 상태로 두기 등의 다른 선택지도 끔찍하지 않아요? 다 안 좋으니까 고민의 여지가 있고 그래서 윤주온이 병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환상과 도착>은 부작용 같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 냉동이 되는데, 보통은 잘 되는 미래를 꿈꾸잖아요. 그런데 만에 하나 잘못되면, 의 결정체를 쓴 셈이에요.

제인: 너무 슬픈데요.

파인: 슬픈 상황을 아주 건조하게 쓰고 싶었어요.

승혜: 상황은 너무 슬픈데, 오로지 이윤의 논리로만 이 상황을 바라보는 찬빈의 시선이 개입되면서 건조하게 느껴져요.

파인: 실은 오로지 이윤의 논리라기보다, 찬빈은 도착증이 있는 인물이에요. <환상과 도착>이라는 제목에서 도착은 주세연의 지구로의 도착Arrival도 있지만 찬빈의 이상적인 아이돌에 대한 도착Fetish이기도 해요.


파인: 근데 솔직히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엔터 산업에서는 9살, 10살짜리 어린 아이가 예쁘장하면 실력과 상관 없이 키우잖아요. 어떻게 클 지 기대하면서.

승혜: 노래를 잘하면 땡큐고 못하면 버려, 이런 풍조가 있어요.

파인: 키워봤는데 별로고 역변했네, 이러면 또 버리잖아요. 제작자 입장에서 윤혜슬 같은 아이돌을 만들고 싶었을 때 길거리에 있는 윤혜슬을 닮은 아이를 데려와 성장을 지켜보는 것보다 윤혜슬을 복제하는 게 더 쉬운 길일 것 같아요.

제인: 정말 무섭다!

승혜: 과학 기술이 받쳐준다면 엔터 업계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고도 남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마돈나 DNA라도 뽑아올 인간들이죠. 한국의 아리아나 그란데를 만들고 그럴 것 같아요.


파인: 현실에서도 누구의 딸이라면서 데뷔하는 경우들이 많고, 전 세대 유명 연예인의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망이 분명히 있잖아요.

승혜: 복제인간 욕구랑도 비슷한 것도 같아요. 그 유전자가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면에서.

파인: 잘생긴 사람 있으면 자식을 낳아서 그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는둥.

승혜: 국가가 보관하라는 농담도 하고요.

파인: 크리피하잖아요? 외모나 목소리 같은 매력이 있으니 저 사람은 세상에 보존될 가치가 있고 내 눈에 보여야한다는 욕망이 대중에게 있다는 것이. <환상과 도착>의 윤혜슬 복원 프로젝트는 그런 현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인: 진짜 도착 같아. 우리 사회는 너무 도착적이에요.

승혜: <Fuckboy를 위하여>랑 연결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경우는 다르지만 재생산에 대한 사회의 압박이잖아요.

파인: 제가 재생산에 관심이 많나 봅니다.

승혜: 그러네요. 강제적으로든 교묘하게든 출산을 유도하는 것도, 엔터 산업의 유전자 보존 욕망 같은 것도 기괴하지만 실재하는 현상이에요. 재미 있어요.


승혜: 주세연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환상과 도착>에서는 주세연이 못 돌아왔고 온은 동화책 출판도 못 했겠죠?

파인: 네.

제인: 아악. (괜찮아요?) 저는 꿈 같은 것에서 현실로 뚝 떨어지는 걸 엄청 무서워하는데 이거 진짜 무서워요. 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고통인데 이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고통도 계속 받으면 그건 고통이 아닌가봐요.

승혜: 희망이 있다가 고통이 올 때 진짜 힘들죠. 누군가를 위해서 이야기를 썼는데 그 이야기가 결국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했다는 것도 아프고요.

파인: 그래서 윤주온이 이렇게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인: 아악. 나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고문 당하고 있지.

파인: 그러고 보면 <펑펑>도 기대치가 높았던 선진이 낙하하는 희망을 맛보게 된다는 점에서 닮은 것 같아요.

승혜: 다른 점이 있다면 <환상과 도착은> 잔잔하며 조용하고, <펑펑>은 희망이 선진의 눈앞에서 펑펑 터지죠.

제인: 저는 선진이가 조금만 더 나이 들면 정처럼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정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왜 없었겠어요!) 뜬금 없이 <쉘 댄>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정의 어린 시절 부분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똑똑한 아이처럼 그려졌지만 불안하기도 행복하기도 한 순수한 시절이 있었을 거예요.

승혜: 세상이 나를 이딴 어른으로 만들었다…


승혜: <환상과 도착>에서 결국 주세연이 지구가 아닌 곳으로 항로를 변경한 이유는 나오지 않고 찬빈이 세운 가설들만 나오는데, 결국 어떤 이유였을까 궁금해져요.

파인: 아마도 정의로운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참 잔인한 게 아무리 정의로운 이유로 선택했다고 해도 지구에 남은 가족들 입장에서는 단지 죽은 거잖아요. 항공우주국은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고 항로를 변경하다가 사고가 났다고만 들으면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유를 모른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에요.

제인: 뼈 아파요. 제가 책갈피를 만들다가 뒤집었는데 ‘당신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라고 적혀 있어요. 이건 불법이야.

승혜: 만약에 주세연이 지구에 충돌하려는 소행성에 자기가 부딪히겠다는 희생적 선택으로 항로를 튼 거라면, 이것도 정말 슬픈 게 결국은 윤혜슬을 포함한 사람들을 지켜주려고 그런 거잖아요.

파인: 그게 맞다면 주세연을 마블로.







세계관 침범 그 후! 티티새 다과회 - 하 - 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세계관 침범 그 후! 티티새 다과회  -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