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 4인의 방학 식생활
파인
저는 친언니와 함께 사는데 언니가 최근 그릭 요거트에 꽂혀서 마켓 컬리에서 그릭 요거트 한 통을 시키더니 자기가 먹을 때마다 저에게도 한 접시 씩 과일을 얹어 덜어주었어요. 사실 저는 그릭 요거트가 뭔지도 몰랐는데 언니한테 물어봤을 때 꾸덕한 요거트야, 하길래 그냥 요거트를 좀 얼려 먹으면 되지 왜 비싸게 주고 사 먹나 의문을 가졌었거든요? 그런데 한 술 뜨니까 다른 걸 알게 됐어요.
진짜 꾸덕해요. 냉동실에 둔 꾸덕한 치즈만큼 떡져 있어서 뜨기가 어려웠어요. 거기다가 아가베 시럽, 초코로 덮인 그래놀라, 아삭 복숭아, 사과 등을 얹어 먹었어요. 이 재료는 모두 언니가 샀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 언니가 본가로 며칠간 내려가서 이제 저 혼자인데요. 냉장고에 언니가 선물이라며 사둔 저만의 그릭 요거트 한 통과 백도 복숭아(아삭인지 몰랑인지 아직 모르는) 하나가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먹으려고요.
저는 요즘 주중에는 번역과 희곡 수정의 업무를 마음에 짊어지고 놀고 있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르바이트는 앞으로 세 번 더 출근하면 그만두기로 해서 앞으로 주말이 허전해질 거예요. 그만두는 이유는 번역 페이로 큰 선금을 받았고, 개강이 다가오고 부전공 첫 학기를 시작하는데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은 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일 안 하는 시간 동안 항상 제 할 일을 해내는 건 아니니까. 지금 하는 카페에서 음료 제조 혹은 멍하게 손님 기다리기 외에 열정을 쏟을만한 일을 하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디퓨저와 핸드크림이 유명한 브랜드 파트타임 면접을 봤는데 15분 지각하는 바람에 탈락했어요. 동네 아르바이트 분위기가 아닌 기업의 세 가지 키워드까지 말하는 제대로 된 면접이었는데 그 면접을 위해서 9시에 일어났지만 12시까지 장소에 도착하기에 실패한 거 있죠?
면접 말미에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며 성실하게 일하겠다고 말했지만 시간 약속 지키기 어려워하는 이런 사람 맞으니까 탈락해도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면접에 늦어본 적은 또 처음이라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이었답니다. 그닥 멍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가끔 실패할 때가 있나 봐요.
미오
여름 내내 입맛이 없었다. 아니, 사실 의욕이 없었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할 의욕이 0에 수렴한다. 덕분에 식비만 왕창 나갔다.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다.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나마 해내고 있는 것은 과일을 사서 씻어먹는 정도이다. 복숭아와 자두, 대저 토마토. 체리는 매번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지 않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식빵을 사 와서 토스트를 해 먹었다. 한창 sns에서 유행하던 때에도 해 먹지 않았던 마약 토스트를 시도해보았다. 식빵에 마요네즈를 두르고 설탕을 뿌린 다음 계란 하나를 깨서 올리고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면 된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앞으로도 종종 해 먹을 것 같다.
예전에는 취미도 정말 많았는데, 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이었다. 재봉도 했고 베이킹도 했었다. 이번 방학 동안은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고, 그렇게 취미생활도 하지 않고 있다. 쉴 수 있을 때 제대로 쉬어 볼 생각이다. 하지만 한 박자 쉬어가는 때에도 놓치면 아쉬운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이 늘어지는 계절에도 제철과일은 놓치지 않아보려고 한다. 친구가 선물해 준 샤인 머스켓이 유난히 달달했다.
재야
귀여운 컵을 사면 음료를 잘 챙겨 마시게 되고 귀여운 밥공기를 사면 밥을 잘 챙겨 먹게 된다는 생각... 그러나 집에서 나 혼자 따로 밥그릇을 마련하는 것은 유별난 일인가.. 싶어서 보류 중. 최근에는 컵이 두 개 늘었습니다. 하나는 메론 머그컵(한쪽에는 메론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반대쪽에는 가타카나로 メロン이라고 적혀있다), 하나는 요괴 버전의 산리오 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마츠리 느낌의 유리컵입니다.
음료를 좋아해서, 원래는 외출했다 오는 길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주스를 사 오는데 요즘엔 티백이지만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오챠즈케를 해 먹고 싶어서 명란과 녹차 티백을 사러 나갔었는데, 명란이 어디에 있는지 안 보여서 그만뒀습니다. 그렇게 녹차 티백만 사 오게 되어, 아침마다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시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로부터 녹차와 머스캣이 섞인 아이스티백을 선물 받았는데, 그건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되어서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조용히 꺼내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서랍에서 발견한 카렐 차펙 루후나. 꽤 예전에 친구가 요즘 좋아하는 차라며 티백 한 개를 챙겨 와 주었던 것인데, 붉은 포장지에는 밀크티가 담긴 커피잔과 그 뒤에서 왕관을 쓰고 귀족 옷을 입은 토끼가 잔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귀엽습니다. 뒷면에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법, 밀크티로 마시는 법이 그림과 함께 일본어로 적혀있습니다. 홍차는 직접 사본 적은 없고 가끔씩 누군가 선물로 받아온 티백 2-3개가 서랍에서 발견되는 정도인데, 밀크티로 만들고 싶었지만 늘 실패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끓인 물을 ‘어.. 양이 적네’ 싶을 정도로 부은 다음 5분을 기다리고, 우유는 ‘아.. 우유가 다 떨어졌잖아’ 싶을 만큼 남아있던 것을 전부 부으면 성공. 설탕을 많이 넣어주면 정말 성공입니다. 저도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제대로 된 홍차 티백 같은 걸 자연스럽게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써머
지나가는 모든 여름이 그랬듯 로투스 크럼블을 뿌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과외를 하는 학생이 코코넛으로 만든 비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보온통에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건 처음 보았다. 코코넛이 혀에서 자꾸 미끄러졌고 먹는 내내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묘하고 소중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예거 마이스터에 핫식스를 타서 먹기도 했다. 심장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지만 맛이 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거에선 감기약 맛이 난다. 향도 꼭 그렇다.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으니 아마 감기 예방은 확실히 해주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예거밤을 마시면 아주 침착해질 수 있다. (나는 밤을 새야 하는 일이 있으면 예거밤을 마신다.)
그 외에는, 내가 밥을 챙겨 먹지 않는 걸 걱정한 엄마가 연어 카르파쵸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보내주었는데, 레몬즙과 소금 후추가 기본이 되는 음식이라는 걸 까먹은 내가 빈속에 먹어버렸다. 먹는 내내 연어가 강한 산성에 녹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먹으며 내 위도 녹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다 먹고 나니 속이 쓰렸다. 사람이 위가 없어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건강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어 부끄럽다. 아니 당당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다. 셀프로 변호하는 것은 또다시 부끄러운 일이니 들키지 않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싶다. 하지만 언성을 높이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냥 모든 것을 공개하고 귀여운 부끄럼쟁이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