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노모어 서울 (Sleep No More Seoul)> 다녀오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당신만 아는 거예요. 당신에게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가이드가 응원한다는 듯 내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행운이 있길 바란다며, 나를 어둠 속으로 보내줬다.
'여긴 어딜까.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더듬 내저으며 걸었다.
얼굴을 가린 흰색 가면 너머로, 춤을 추는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를 보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갔다. 편지를 읽는 내내 사랑이 느껴지는 눈빛, 보고 싶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움직임, 그러다 상대를 만났을 때 아끼듯 쓰다듬는 손길,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정적인 움직임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 그런데 내가 이걸 봐도 되나?'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엿보는 것 같아서, 가면 뒤로 당황스러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영화 한 장면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면 뒤의 투명인간처럼. 그러나 당황할 새도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덕에 다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그 배우의 시간이 처음 봤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영화를 되감기 한 것처럼. 같은 이야기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아까 뛰어다니며 보지 못했던 장소, 스쳐 지나갔던 인물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제 난 그녀를 떠났다.
혼자 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어떤 인물을 발견했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걸어가는 낯선 길을 따라가자 눈앞에 비밀의 공간이 나타났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의 시선으로 따라간 세상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주인공인 그녀의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제야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번 소름이 끼쳤다. 가이드가 말했던 '이곳에서 나만 아는 일'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내가 어디에 머물기로 선택했느냐,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기로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구나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처음에 믿었던 진실은 다른 방의 문을 여는 순간 흩어지고 사라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었지만 서로가 품고 있는 믿음이 달랐다. 어쩌면 진실이라는 건 하나의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아주 작은 조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세 번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심장이 뛰었던 건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인물보다 이름 모를 인물들을 따라갔을 때였다. 어두컴컴한 곳에 발을 내디뎠고, 거기에 우연히 누군가가 있었고, 그 사람이 건네는 눈빛과 이야기가 내 마음에 일렁거리며 오래 남았다.
가이드가 말한 그 '행운'이라는 건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보지 못한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낯선 우연에 나를 던졌을 때, 나만의 행운을 운 좋게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주 작은 조각일지라도.
호텔 문을 열고 나오며,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가이드의 손길을 다시 떠올렸다.
"당신에게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