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고 있는 곳에서 멀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무 위에 살았고, 땅을 사랑했으며, 하늘로 올라갔노라.
열두 살에 지긋지긋한 땅을 벗어나 나무 위에 정착한 사나이, 코지모 론도. 귀족 가문에 모자랄 것 없는 환경이지만 그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뿐인 그의 가족들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 나아가 귀족 사회 그 자체에 있는 힘껏 대항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바로 비이성이 판치는 이 땅을 떠나 나무 위로 삶의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
그가 살던 현실을 부정해 다른 곳으로 갔지만, 코지모는 비로소 그곳에서야 그가 살던 현실은 물론 현실 그 자체를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인식하게 된다. 멀어지고 나서야 그 속을 알 수 있게 되듯 말이다. 현실 부정에서 촉발된 그의 나무행이 마침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서사의 성장적/극복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전쟁과 약탈이 판치는 혼란스러운 시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코지모를 통해 보여준다. 신분 상승과 재력에 눈이 멀어 상류 계급으로서의 비열한 모습만 보이는 귀족들에게 코지모의 헌신적이고 이성적인 모습과 판단은 필히 본받아야 할 점들이며, 아마도 그 시대에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리라.
나무 위의 짐승부터 신적인 존재까지 타인의 인식에 있어서 동물과 신 사이를 넘나드는 코지모는 마을의 구원자였음이 틀림없다. 높은 곳에서 굽어보면 더 멀리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며 높은 곳에 있음으로써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제공해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어준다. 태생부터 남작이 될 사람이었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작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불타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도 이성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결연히 위기에 맞서고 헤쳐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그 시기의 모범적인 인간상뿐 아니라, 혼란스러운 건 매한가지인 현대에도 코지모와 같은 인간상은 꽤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의 생의 순간순간마다 볼 수 있었던 행동력, 결단력, 지적 탐구욕, 헌신, 배려, 편견 없음 등은 우리가 말하는 바람직한 인간상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