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의 투쟁적 상승 욕구와 귀족의 허영
마침내 나는, 가난한 농군인 나는, 귀부인의 사랑의 고백을 얻어냈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주체할 길 없어 그는 별안간 이렇게 소리쳤다.
2권, 103p
태생부터 귀족이 될 수 없는 농가 출신의 하층민 쥘리엥 소렐. 그는 그 누구보다 투쟁적이고 열정적으로 귀족 사회로의 진출을 바라고, 그 목표만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한다. 큰 맥락에서 사랑을 이용해 그 사회적 계단을 밟아나갔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 있으나,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재능을 활용해 목적 달성을 하고자 했다. 뛰어난 암기 실력으로 성경을 외워 교권이 강하던 그 시기에 사제의 총애를 받고, 수려한 외모와 개성 있는 성격으로 무릇 고위층 여성들을 사로잡는다. 그의 목표 앞에 어떠한 윤리적 잣대도 무의미해지는 듯하다.
그렇게 올라간 귀족 계급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는가? 허영과 허상뿐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그들의 모습을 저자는 쥘리엥을 통해 보여주기보다는, 각자의 인물을 통해 직접 독자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쥘리엥이 높은 계급으로 가면서 귀족의 모습을 보며 한탄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의 목표는 꺾이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나 본인들의 안위만 걱정하든 귀족들의 모습에, 돈과 명예만이 중요해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살롱을 여는 상류층의 모습에 독자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상류층과 하층민의 차이는 출신과 출생,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다른 게 다른 게 아니라 오직 그뿐이었다.
이 책을 논하면서 하층민과 상류층의 대립적 구도 외에도 쥘리엥을 주축으로 한 연애 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은 가벼운 사랑을 제외하고는 총 두 번의 열정적 사랑을 경험하는데, 이게 뭐랄까 참 현실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이 있다. 시장 부인과 바람이 나고, 구혼자가 줄 서 있는 귀족의 딸과 연애해 한 가문의 명예를 박살 내는 등 꽤 순탄치 않은 사랑을 한다. 전자의 연애는 꽤 순수한 측면이 있으나, 후자의 연애는 본능적인 부분이 있다. 멀어질수록 사랑이 커지고, 가까워질수록 사랑이 식는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나한테 잘해주면 괜히 못되게 굴고 싶고, 되려 나한테 못되게 굴면 거기에 더 끌리는 그런. 쥘리엥과 마틸드의 사랑 놀이를 보고 있자면 '이것들이 장난하나'라는 마음속 외침이 자연스레 나올 것이다.
순수한 사랑이든 본능적 사랑이든 그 진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괴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종장은 결국 쥘리엥이 자기 삶의 종점을 계급과 명예에서 탈피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다. 출세만을 위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는, 최후의 순간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의 이상이, 마침내 고개를 돌리니 저 앞에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사랑 속에 떠날 수 있었던 쥘리엥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상류층마저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어쩌면 모든 인간이 바라는 그런 목표를 달성한 게 아닐까? 돈과 명예로 살 수 없는 그런 진실한 사랑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