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공포를 가진 존재를 향한 인간의 알 수 없는 용기와 도전
중요한 것은 고래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 경이롭고 신비로운 괴물이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래가 섬처럼 거대한 덩치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 거칠고 먼 바다와, 고래가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위험들과, 파타고니아에서 고래를 보고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수많은 목격담에 따른 경이로움, 이런 것들이 바다를 향한 열망 쪽으로 나아가도록 나를 부추겼다.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힘차고 용기 있는 긴장감 넘치는 고래잡이 항해만을 기대했던 나에게 설명이 가득 찬 백과사전식 서사는 그야말로 이 책에 손을 뻗기 두렵게 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고래의 신체구조가 어떻고, 포경선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관습이 있고 와 같은 기타 등등의 TMI는 고래잡이 내지는 어업, 어류 관련 연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무지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거기에 무릎 꿇어 무려 25일이나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얼마나 읽기 어렵고 힘들었는지는 각설하고 (이미 다 읽었으니까), 그런 고역 속에서도 역시나 울림을 주는 부분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나, 위험하면 더 하고 싶은 인간의 청개구리식 행동 방식이 이 항해에서 극단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그것이다. 최악의 향유고래로 정평이 난 모비딕을 어떻게든 사냥하고 말겠다는 피쿼드 호의 열망은 인간 내면의 도전 정신과 용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그 용기는 복수심, 호기심, 물욕 등 다양한 욕구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하나의 집합체다.
또한, 선장 에이해브와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갈등도 인상 깊은 부분이다. 오직 복수심에만 불타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감성적인 에이해브와 항해의 목적과 위험성 등을 고려하는 이성적인 스타벅의 충돌이 항해 후반부에 갈수록 자주 등장하는데, 선장과 항해사의 지위 차이와 더불어, 도전과 항해는 이성적 영역보다는 감성적 영역에 더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기에, 에이해브의 의견이 스타벅의 의견보다 더 힘을 받지만, 이런 충돌 속에서 깊게 형성된 그들의 신뢰 관계가 꽤 가슴 깊이 남는다.
피쿼드 호의 용맹한 항해가 더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아마도 그 항해의 결말이 불행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항해하다 침몰하는 것이 아닌,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그런 위험을 야망, 열망, 호기심 등의 인간 본유 감정으로 상쇄시켜 용기로 치환한 그들의 험난하고 위대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자 후기를 보니 많은 정치적, 철학적 함의점들이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애초에 작품 특유의 설명적 서사 구조로 인해 그런 관점으로 이야기를 흡수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