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편>

새로운 세계관을 따라 지옥으로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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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26p, 3곡 9




나에게 단테의 신곡은 대학교 동아리 형한테 읽으라고 추천받아서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요즘책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단테의 신곡을 설민석 강사님이 강독하는 걸 보고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신곡의 독파 욕구가 깨어났다. 강독 영상 자체도 흥미롭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작이니 이 시점에 내가 읽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작품이었다.



KakaoTalk_20200106_223230004.jpg <신곡 : 지옥편>의 지옥의 그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지옥 1단계 : 세례 받지 못한 자들

지옥 2단계 : 색욕의 지옥

지옥 3단계 : 탐식의 지옥

지옥 4단계 : 탐욕의 지옥

지옥 5단계 : 분노의 지옥

지옥 6단계 : 이단의 지옥

지옥 7단계 : 폭력의 지옥 (폭행, 자살, 신성모독)

지옥 8단계 : 사기의 지옥

지옥 9단계 : 배신의 지옥




일단 이 책은 어렵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왜 어려운지는 이 책의 전개 방식부터 설명해야겠다. <신곡 : 지옥편>은 단테가 35세에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을 경험? 시찰?하는 내용이다. 지옥은 총 9단계로 영혼들은 생전에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1단계에서 9단계로 가게 된다. 1단계부터 차례대로 9단계로 가는 단테의 여정에는 몇백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다. 각 단계의 죄를 생전에 그 죄를 저지른 인물들로 인해서 설명해준다. 가령, 세례 받지 못한 자들이 가는 1단계에는 기원전 사람인 소크라테스가 있다거나 색욕의 죄를 묻는 2단계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있는 경우들이다. 매우 쉬운 예를 들었는데, 이 책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모르는 인물이다. 엄청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에, 주석을 뒤로 따로 빼버린 데다가 무려 그 양이 50페이지나 된다. 때문에 수시로 앞뒤를 왔다 갔다 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인물뿐만이 아니라,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주석에 친절하게 다 설명을 해준다) 그것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읽기에 어렵다는 내 의견이 타당성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밌다. 죄다 모르는 인물, 지명, 상징투성이임에도 단테의 여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사건 사고가 많은 지옥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같은 형식을 공유하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교해 봤을 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파우스트>는 자기만의 깊은 사색 혹은 독백이 지나치게 많은 반면 <신곡>은 독백이 거의 없고 스토리가 막힘없이 전개된다.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이 단테의 신곡이라는 작품이 위대하게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가 천국과 지옥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대단히 창의적이고 도달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단테 본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옥을 이렇게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게 지옥이야?'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아닌 '지옥이라면 이런 곳이겠구나..' 하며 인정하게 만드는 그의 형상화에 수많은 문인들이 칭송한 게 아닐까 싶다.




지옥의 단계가 깊어짐과 동시에 묻는 죄가 달라지는 것에서 단테가 구축한 세계관에서 (하느님 아래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지옥의 왕 루키페르의 입에 물려 있는 게 그 유명한 유다인 것을 보아, 신을 배신한 것을 가장 엄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를 비롯해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힐수록 더 높은 단계의 지옥에 떨어지게 되고,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여기는 도덕을 어기는 것에 역시 엄중함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기독교인이 아닌 혹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신'을 최우선 가치로 표방하는 이 책을 거부감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는 것과 서사시 속 단테가 '피렌체인'으로서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는 무슨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정치적 활동을 해서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는데, 그것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와 단테의 행적을 보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는 것 자체에 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분명 예전의 나였으면 지루해하거나 정말 억지로 꾸역꾸역 읽어나갔을 텐데.. 단테가 지옥 밑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내가 거기에 몰입할수록 성장한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알게 모를 희열을 느꼈다. 신곡에 대한 여러 글들을 보면 <신곡 : 연옥편>부터 엄청 지루해서 읽기 힘들다는데, 지옥편이 너무 재밌어서 기대가 되기도 하는 한편 저런 글이 꽤 많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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