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상학회, 신인섭 - 『현상학, 현대 철학을 열다』
모든 이론적 지식을 정초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토대를 확보하는 일, 분과 학문 중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학문이 있을까? 이 근본적인 인식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철학뿐이었다. 현상학적 방법론의 모토인 '사태 자체로'나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은 어떤 종류의 가설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명증하고 확실한 것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하이데거를 탐독하며 자연스레 생긴 현상학에의 호기심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현대 철학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은 철학의 역사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위인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스승으로서도 높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더 대단한 건 그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현상학을 필두로 자기만의 철학들을 전개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원천의 현상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시기별로 나눠 소개하고, 후설의 제자이며 현상학을 나름대로 재편한 현상학자가 된 4명의 철학자, 막스 셸러, 에디트 슈타인, 오이겐 핑크, 얀 파토치카 각각의 현상학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철학에 꽤나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현상학은 비인기 철학인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데카르트와 칸트 등과 같은 근대 철학에 많은 관심이 있고, 가장 최근의 거대한 철학인 현상학은 다소 외면받는 것 같다. 시기상 가장 가까움에도 왜 현상학은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선호되지 않는 것일까?
일단 가장 큰 이유로는 철학 그 자체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을 중심으로 했던 중세 철학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한 근대 철학은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기에 거리감이 있는 철학은 아니다. 개개인이 그 자체로 학문에 몰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철학인 현상학은 다르다. 인간의 존재로부터 시작되는 철학, 즉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 철학이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철학이든 다른 학문이든 일단 이해가 돼야 선호가 가능할 것이기에 그런 측면에서 현상학은 다소간 외면받는 게 아닐까 싶다.
현상학의 슈퍼 스타인 하이데거가 철학 역사상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철학자로 많이 꼽힌다는 점에서도 현상학의 비선호를 엿볼 수 있다. 독자는 철저히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너머의 무엇을 사유하는 철학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탐독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렇다.
현상학의 발단 기원과 어떻게 현상학자들이 그들의 철학을 전개했는지를 맛보는 정도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이 책의 내용만 가지고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하는 건 나에게 있어선 기만적인 행위다. 어느 학자들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만의 현상학을 전개했는지만 인식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들의 각각의 현상학을 전개했음에도 그 발원지는 후설의 현상학이었기에 그것부터 천천히 탐독하려 한다.